"금방 왔다 가붕게 겁나게 서운허요”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그리웠습니다

등록 2004.01.05 19:40수정 2004.01.1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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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연동마을 어머니와 아내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연동마을 어머니와 아내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 김도수

“아, 어서 그만 허고 들어와 함께 밥 묵읍시다.”
“예, 다 됐응게 근방 들어갈께요.”
“아가들아, 어서 요 꾼 생선 좀 묵어봐라. 여그 돼아지고기도 볶아놓았응게 묵고… 얹친게 찬찬히 묵어라 잉.”
“집이도 밥 많이 잡솨. 밥솥에 밥 많이 있응게 많이 잡솨야 혀. 밥 남으면 식은밥 되아서 며칠씩 혼자 묵을라면 애묵은당게. 긍게 많이 잡수고 가야야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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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가 내 사위였으면 좋겄소"

곡성 연동마을에 집에 찾아가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던 아내는 생굴 껍질을 씻어 솥에 안치고 있었다. 엊그제 옆집에 사는 아줌마가 여수로 생굴을 사러 간다고 하니 아내는 “수고스럽지만 우리도 좀 사다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옆집 아줌마는 아저씨랑 자가용으로 갔다 왔다며 한 박스를 사 가지고 왔다. 그 생굴을 연동마을 어머니 집에 가지고 갔는데 아내는 밥상을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간 사이 솥에 안치고 있으니 빨리 들어와 함께 밥 먹자고 연동마을 어머니께서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농한기라 겨우내 부산에 사는 아들 딸내미들 집에 계시던 연동마을 어머니께서 며칠 전에 전화가 왔다.

“여그 곡성이요, 설에 떡도 해가고 요것 저것 좀 장만해서 가지고 갈라고 어제 곡성 집으로 다시 왔고만이라우. 그 동안 잘 계싯소. 근디 임실 집에는 언제나 가요?”
“예, 엊그제 김치 가지고 와서 이제는 언제 갈 지 모르겠네요.”

임실 고향 집에 언제 가냐고 물어보는 순간, 전에 들깨가루를 준다고 했는데 틀림없이 그걸 주기 위해 우리 집에 전화를 건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곡성 연동마을은 가까워서 금방 달려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힘들게 농사지어 가꾸어 놓은 곡식들, 친자식도 아닌 내가 날름날름 받아먹을 수는 없어서 언제 갈지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임실 안 가면 그냥 우리 집에 한 번 왔다갔쇼. 묵은 쌀로 손지들 줄라고 엿을 좀 만들어 놓았는디 애기들도 갖다주고, 들깨 갈아 놓은 것 쬐께 싸 놓았는디 좀 갖다 드싯쇼. 미국서 동순이 오면 줄라고 좀 남겨두고 나머지는 집이 좀 줄라고 그러요. 겨울철 시래기 국에 들깨 가루 두어 숟가락 넣고 끓이묵으먼 참 맛싯소. 내가 음력으로 27일이 되면 다시 부산으로 가붕게 그 안에 꼭 한 번 왔다가야허요 잉. 올 때는 애들이랑 부인이랑 함께 데리고 오싯쇼. 글고 저번처럼 음료수 같은 거 사 갖고 오지말고 그냥 빈손으로 오싯쇼. 뭐 사 갖고 댕기먼 서로 부담스러웅게 그냥 빈손으로 와야허요 잉.”
“예, 빈손으로 갈께요. 그리고 음력으로 27일 안에 꼭 시간 내서 한 번 갈께요.”


연동마을 어머니와 생굴이나 함께 까먹으면 좋겠다며 싶어 휴일 날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연동마을에 다녀오려고 생굴 박스를 챙기고 있었다. 옷을 입고 막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저번 가을에 감 가지고 올 때 애들에게 돈 꺼내 주던 그 몸뻬바지 같은 거 하나 사 갖고 갑시다”하며 시장에 잠깐 들려서 가자고 한다.

사실 음료수 한 박스만 사더라도 만 원 정도는 하니 거기에 조금만 더 보태면 시골에서 겨우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몸뻬 바지를 살 수 있다. 그 때문에 몸뻬 하나 사 가지고 가자는 아내의 말에 나는 너무 기뻤다. 시장에 들러 여러 디자인과 색상을 구경하다 빨간색 골덴 몸뻬 바지를 하나 골랐다. 음료수는 마셔 버리면 그 순간 끝이지만 따뜻한 몸뻬 바지를 입고 올 겨울 내내 지내면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실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몸뻬 바지와 생굴

a 친자식이 오는 것처럼  마중나오신 연동마을 어머니

친자식이 오는 것처럼 마중나오신 연동마을 어머니 ⓒ 김도수

연동마을 집 앞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벌써 저녁밥을 해놓고 집 앞 골목에 나와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저녁을 먹으려고 밥상 앞에 빙 둘러앉아 있는데 어머니는 애들을 찬찬히 바라보더니 “애들이 보면 볼수록 비랑도 이쁘게 생겼네. 딸은 아빠를 닮고, 아들은 엄마를 쏙 빼 닮아 부렀구만…” 하시며 몸뻬 바지 주머니 속에 손을 넣더니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둘이 오 천원씩 나눠 가지라고 준다.

“저번 가을에도 주셨는데 자꾸 이러시면 저 이제 안 올랍니다.”
“아, 내 손지 같은 게 주는 것이여. 애들아, 얼릉 받아라.”
아이들이 돈을 받지 않으려고 계속 머뭇거리고 있자 나는 애들에게 할머니께서 주신 돈이니 어서 받으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연동마을 어머니께서 아이들에게 돈을 주자 나는 “어머니께서 애들에게 용돈을 주셨으니 저도 어머니께 뭐 안 사고 빈손으로 온다고 약속을 했는데 뭐 하나 줄라요” 하며 종이 가방에 속에든 몸뻬 바지를 꺼냈다. 그랬더니 “뭐더게 또 옷을 사왔소. 요로케 계속 뭐 사 들고 오면 이제 오라고 허지 못 허겄소. 빈골로 와야 서로 부담이 없는디 자꾸 요로케 사오면 안 되는디…”

밥을 다 드시고 난 뒤, 몸뻬 바지를 입어보신 어머니는 “옷이 내게 딱 맞소. 나는 삘건색을 좋아하는디 어치게 알고 내 맘에 쏙 들게 요런 색을 골라왔소. 참 옷이 보드랍고 좋고만이라우.”

어머니는 계속 몸뻬 바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환하게 웃고 계셨다.

생굴을 몇 개를 까 먹고 있는데 “아이고, 앞 집 겸면떡을 불러서 함께 묵어야 겄다” 며 어머니는 아랫집에 전화를 건다. 전화를 한 뒤 한참 기다려도 겸면떡이 오지 않자 다시 전화를 걸어 손님이 왔다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는지 "아, 나 혼자 있응게 얼릉와. 만난 것 있당게.”

지난 가을, 집에서 기르던 토종 닭을 내게 잡아 줄 때 놀러 오셨던 앞집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놀러 오셔서 생굴에 소주 한 잔씩 드시며 저녁 한 때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앞집 어머니는 “이 집은 딸이 다섯이나 되고 나는 딸이 하나 뿐잉게 앞으로 우리 집 사위 헙시다. 참말로 사람이 여잣허고 풍기는 인상이 비랑도 좋게 생겼고만….”

“음마, 안 되아. 정 그러면 겸면떡이 쬐께만 가지고 가. 아, 이러다가 사위 뺏기게 생겨부렀네”

a 간짓대에 대롱대롱 메달린 메주

간짓대에 대롱대롱 메달린 메주 ⓒ 김도수

매일 밤 텔레비전 소리만 들리던 방안은 오랜만에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요즘 별시런 사람들이 다 있는디 모르는 사람을 어치게 함부로 오라고 허겄소. 허지만 댁은 미국에 사는 내 딸 동순이가 보낸 귀한 내 손님이요. 긍게 자주 오싯쇼. 내가 뭐 사주지는 못하지만 내 손으로 꼬무락거려서 지은 농사, 자식들이 많응게 많이는 못 주지만 쬐께씩 나눠 먹으면 안 좋겄소.”

앞집 아저씨는 우리 가족들이 어떤 인연으로 뒤 집 안방 밥상 앞에 앉아 있는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는 “마음씨가 착해서 누구라도 사위 삼을 만허요. 어따 자주 놀러 오싯쇼. 시골은 늙은 할머니나 우리같이 내외간 둘이서 사는 집이 대부분잉게 심심헝게 자주 놀러오싯쇼. 요즘같이 농한기 철이면 일이 없응게 시골은 더 쓸쓸허제. 요로케 혼자 사는 집에 찾아와서 함께 저녁 밥 묵응게 참 보기 좋고만 그려.”

연동 어머니는 골덴 몸뻬 바지를 입고 앞집 어머니께 자랑을 하자 "아, 긍게 앞으로 우리집 사위 허잔게. 여그는 딸들이 많응게 어따 이 다음에 올 때는 우리 집으로 옷싯쇼 잉.”
“안 되아. 딱 절반만 혀.”
방안은 다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옆 집 돌담을 넘고 있었다.

"다음에 꼭 하룻밤 자고 갈께요"

a 연동마을 어머니의 호미. 잡풀들과 싸우던 호미도 농한기를 맞이하고...

연동마을 어머니의 호미. 잡풀들과 싸우던 호미도 농한기를 맞이하고... ⓒ 김도수

연동마을에 오기 전에 아이들에게 곡성 할머니 집에 놀러 가자고 하니 "저희들은 집에 있을 테니 엄마 아빠 두 분이서 갔다 오세요. 저녁밥은 저희들이 차려 먹을게요” 하며 연동마을 할머니 집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할머니께서 너희들이랑 함께 오라고 했으니 우리들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며 곡성 할머니 집에 가자고 하니 “그럼 따라 갈 테니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과 피자를 사달라”고 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꼭 사주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애들을 달래서 데리고 갔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는데 아들놈은 컴퓨터가 하고 싶은지 엄마를 힐끔힘끔 쳐다보며 빨리 가자며 고개를 슬쩍 내저으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컴퓨터도 없고 가지고 온 책도 없으니 심심해서 아들놈은 집으로 가지고 재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앞집 할머니께서 집에 가자는 아들놈 신호를 언뜻 보았는지 “아들이 빨리 집에 가고 싶은갑소. 그만 우리들도 일어섭시다.”

앞집 어머니가 이제 그만 집에 가야겠다며 일어서려 하자 연동 어머니는 아내와 나를 바라보며 "가운데 방에 불 넣을랑게 하룻밤 자고 갔쇼" 한다.

하룻밤 자고 가고 싶었지만 애들과의 사전 약속 때문에 나는 자고 가는걸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올 때는 꼭 하룻밤 자고 갈께요” 하며 집을 나서는데 마루에는 들깨 한 병과 들깨가루 그리고 엿과 강정 등이 보따리에 곱게 싸져 있었다. 대문 앞에 나오니 “오늘 쌈 싸 먹을라고 씻어 놓은 배추 좀 가져가서 묵을라요? 놔 둬불먼 나 혼자 못다 묵고 걍 시들어 버링게…”

“요로케 금방 왔다 가붕게 겁나게 서운허요. 올 때는 반가운디 혼자 사는 집에 사람들 왔다가 가분 날이면 비랑도 맴이 허전하고 썰렁히 부요. 고론 날이 며칠씩 간당게요.”

“정말 오늘 밤 꼭 자고 가고 싶은데 애들이 가자고 저리 보챙게 할 수 없구만이라우. 다음에 올 때는 꼭 자고 갈께요. 추운게 어서 들어가세요.”
“아니어라우. 도로 가에서 차 불빛이 안 보일 때까지 서 있어야 내 맘이 핀헝게 어서 조심히 운전히서 가싯쇼.”
“예, 설 쇠고 또 올께요.”

인사를 나누고 자동차 조명을 환하게 비추며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는데 컴컴한 골목길에서 다시 집으로 더듬더듬 들어가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방안에서 조금 전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자꾸 자동차 불빛에 어른거려 왔다. 추운 날씨에 골목길에 서서 내 차량 불빛이 마을을 빠져나가 도로 가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서 계실 어머니 생각에 나는 속력을 내서 연동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왁자지껄했던 방안에 홀로 주무실 어머니 생각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잘 도착했다고 안부전화를 드렸다.

“애들 때문에 오늘밤은 못 자고 와서 저도 서운하네요. 다음에 갈 때는 꼭 아내랑 함께 하룻밤 자고 올께요. 떠들썩하게 놀다 우리들이 와붕게 적적하시겠네요. 오늘 밤 날씨도 춥고하니 전기보일러 높게 틀어놓고 푹 주무세요. 심심하게 집에 홀로 계시지 말고 모시레도 가고 그러세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니 벌써 애들은 연동마을 할머니께서 주신 엿과 강정이 싸여진 보자기를 풀어 쩝쩝거리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a 연동마을 입구에 서 있는 마을 표석

연동마을 입구에 서 있는 마을 표석 ⓒ 김도수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에 함께 송고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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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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