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먹었던 고구마는 이보다 훨씬 잘록하고 길었습니다.김규환
생으로 깎아먹는 고구마는 밤고구마는 쳐주지 않는다. 물고구마라야 물기가 핑핑 돌며 서걱서걱 씹는 맛과 물기가 대단하다. 달짝지근하며 입안에 물이 가득 고이는 생고구마 깎아 먹는 재미는 겨울철 보릿고개가 일찍 찾아오는 산동네엔 별미였다.
고구마를 너덧 개 깎아 먹고 나니 우리 집 가보 1호 황소가 거동을 하는 모양이다. "푸푸~" 연거푸 콧바람을 불더니 구유에 얼어붙은 쇠죽을 마저 싹싹 핥아먹는다. 풍경소리는 맑게 방으로 뚫고 들어왔다.
외양간과 벽 하나 사이로 맞닿은 긴 방에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소죽 쑨 지 두세 시간 지났어도 방안엔 연기가 빠질 줄 모르고 외려 연기가 차는 건 고래가 타고 있기 때문이리라. 시렁에 놓인 이불보자기는 온통 연기와 먼지에 쌓여 있다.
이윽고 "가위 바위 보"를 하여 한 사람을 골랐다. 밖에 나가 군고구마를 꺼내올 사람은 병섭이었다.
"야, 13개니께 잘 찾아와라. 여기 공책 갖고 가."
"알았어."
나락이 떨어진 꼴 청엔 늘 쥐새끼들이 우글거린다. 한 알이라도 주워 먹겠다고 야단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쥐약을 놓을 수도 없다. 쏜살같이 도망갔다가 다시 인기척이 없으면 되돌아와 여물을 죄다 뒤집어 놓는다. 낮에는 참새 떼, 밤엔 쥐새끼들이 설치는 작두가 놓인 이곳을 그냥 둘 리 있겠는가?
고구마를 꺼내러 가느라 열린 문으로 차가운 공기가 방안을 덮쳤다.
"아따 시벌놈 뭔 꼬리가 그리 길어."
"무서워서 근다 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