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열풍은 연구해봐야 할 문제"

[인터뷰 -2] 실천문학사 '역사인물찾기' 편집장 박문수

등록 2004.01.07 17:58수정 2004.01.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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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8번째 책 <상해의 조선인 영화황제>가 1996년에 출간된 이후 무려 3년간이나 공백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리즈의 속성상 책이 계속 나와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주지 않으면 시리즈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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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는 출판사에 어떤 '재앙'(?)이 있지 않고서는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다. 실천문학사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문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출판사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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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일

"내부사정이지만, 그 때가 출판사가 매우 힘든 때였습니다. 책도 많이 나오지 않았죠. 이어서 대표가 바뀌고 사무실 이전하고 주식회사로 전환하는 등 사정이 있었죠."

박문수 편집장은 "어려운 내부사정"이라고만 하고 더 밝히지 않으려고 했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아니었냐"며 계속 캐물었다.

"물론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외부에 밝히기 부끄러운 일이지만, 경영압박을 받아 직원들이 월급도 제대로 못 받을 정도로 어려워졌죠. 이어서 체제 개편이 이루어졌고 재정적으로 더 어려워서 주식회사로 전환했죠.

저희가 애초 문학 출판사로 시작했는데, 워낙 안 되다 보니까 다른 쪽으로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90년 당시저희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다 어려웠고, 그래서 다른 것을 시도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더 어려워지고 하는 과정이었죠."


실천문학사도 역시 다른 사회과학 출판사들처럼 어려운 과정을 겪었다. 그래도 실천문학사는 90년대 명멸한 많은 사회과학 출판사 중에서 어려운 길을 헤치고 '살아남은' 출판사가 아니던가! 박 편집장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보았다.

"그래도 우리 출판사 강점이 문인들이 한 푼 두 푼 모아서 만든 것 아닙니까? 95년에 너무 힘들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해서 대대적으로 주주를 모아서 주식회사를 설립했거든요. 그 때 초대이사가 당시 편집장이던 이상씨였습니다. 그 때 느낀 것이, '실천문학사에 애정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쓰러진 많은 사회과학 출판사에 비해 실천문학사는 행복한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주들이 그렇게 모여 출판사가 살아갈 길을 열어 주었으니. 그래도 그건 출판사가 그만큼 제대로 했기 때문이 그런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박 편집장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처음 주주를 모집할 때도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의외로 호응을 많이 해주셨죠. 그분들이 바로 실천문학사의 자산입니다. 그 때 그렇지 않았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이런 출판사는 아마도 세계적으로도 드물 겁니다. 문인들이 출자해서 출판사를 살리는 경우는."

그는 지금도 힘들 때면, 출판사를 살린 주주들을 생각해서 초심을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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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일

한편 '역사인물찾기'에서 체 게바라 열풍을 별도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체 게바라 평전>은 한국에서 게바라 열풍을 몰고 왔으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또 '역사인물찾기'의 대부분의 독자가 386세대임에 비해 유독 <체 게바라 평전>만큼은 20대 독자가 많다. 이런 것들과 관련해 박 편집장은 '책의 현장 2003-2003년 출판의 과제와 전망'에서 대담을 통해 "연구해봐야 할 문제"라고 한 적이 있는데 연구가 진척되었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웃으면서 "진척이 안 되었죠"라고 답한다. 이어 "주위의 이야기를 두루두루 들어보면, 게바라 마니아가 생긴 걸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기대심리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못 이룬 것을 누가 이루었을 때 따라가려고 하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연예계 스타들을 동경하듯이 그런 경우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선 게바라는 잘 생겼고, 삶 자체도 드라마틱했고, 인텔리고, 부러울 게 없는 여건인데 혁명 전선에 나섰고, 뭐 그러한 것들이 따르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타깃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죠.

한편으로는 책보다는 게바라의 인물 자체에 끌리는 것이 있지 않았나, 인물자체가 상품이 되었기 때문에 책이 팔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쉽기는 하죠. 물론 그럼으로써 게바라를 알게 된다면 저희로서는 기쁜 일이기는 하지만…. 게바라가 지나치게 상품이 되어 버린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또 그는 "지금도 게바라 브로마이드를 구할 수 없는지 문의가 들어온다"며 아직도 게바라 열풍이 식지 않았다고 한다.

게바라로 일어난 한국 출판계의 평전 바람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찾기'는 평전을 전문으로 하고 있고, 이 곳에서 출간한 <체 게바라 평전>은 한국출판계에 '때 아닌' 평전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주요 대형 서점에서도 별도로 평전 매대를 꾸릴 정도였다.

한국 출판계에 이런 '때 아닌' 평전 붐을 일으킨 장본인은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선 현대는 사람이 살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럼 어디서 위안을 받아야 하는데, 독자들이 평전에서 찾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잘 나갔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돌이켜 보는 시대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바로 평전이 힘들게 사는 이들에게 삶의 지표를 던져주기 않았는가.그래서 평전을 찾게 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일면 위로도 받고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등대 역할도 하고, 어쨌거나 소설은 픽션이지만 평전은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더 감동을 받고 삶의 지표가 되고 대중들이 평정을 찾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역사인물찾기'가 13년의 역사를 지닌 만큼 당시에는 꽤 나간 책이 시대 변화에 따라 지금은 '낡은'(?)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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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일

케테 콜비츠, 그는 현대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독일 판화가이다. 반파시스트 예술가로서 판화의 세계를 독보적인 위치로 끌어올린 '민중 판화운동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1930년대 중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노신(魯迅)이 이끈 목판화운동과 1980년대 한국에서 벌어진 민중판화운동에 자양분이 됨과 동시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는 표현이 강렬하다. 세련과는 거리가 멀고 원초적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간략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밀착과 직접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을 보는 이는 즉각 반발하든가 아니면 그 속에 빨려 들어가 그림과 자신을 강렬하게 일치시킨다.

<케테 콜비츠>의 경우, 출간한 시점이 매우 오래 지났음에도 독자들이 여전히 사랑하는 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다. 사상이 낡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책의 편집이 뒤떨어졌다는 말이다.

이 평전은 미술가의 삶을 다루는 데도 불구하고 화보가 충분히 들어가지 않았다. 특히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희생'이 실리지 않은 것이 큰 아쉬움이다. 또 현재는 흑백인데, 칼라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박 편집장은 <케테 콜비츠>의 경우는 아직도 독자들이 사랑하고 있어 개정판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아쉬움은 '연표'와 '찾아보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책을 활용하기가 어렵다. 이를 지적하자, 박 편집장은 "편집자가 게으른 탓"이라며, "그점은 앞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기자는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를 비롯한 사회과학 서적들을 독자들이 시대가 변했음에도 여전히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저는 독자들을 믿습니다. 시대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사회과학 서적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있는 한 사회과학 서적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박 편집장의 믿음은 확고해 보였다. 그가 한국 사회과학 출판계에서 꾸준히 좋은 책들을 내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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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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