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장사 중 올해 최고로 힘든 것 같아"

서울 가락 농수산물 도매시장 조병목씨

등록 2004.01.19 19:52수정 2004.01.2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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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락동 터줏대감인 조병목씨. 그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이 개장한 1985년 부터 가락동에서 장사를 해왔다

가락동 터줏대감인 조병목씨. 그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이 개장한 1985년 부터 가락동에서 장사를 해왔다 ⓒ 김진석

"이곳 사람들은 경기 불황을 가장 먼저 알아요. 30여 년 장사 생활을 통틀어 정말 경기가 '최악' 입니다. 아무리 IMF라 해도 이 정도까지 심하진 않았어요…. 수입 물품에 밀려 국산 농산물은 턱없이 경쟁에서 밀리는데 그래도 농민들은 농사를 져야 하고…."


한국 최대 규모의 농수산물 도매시장. 1985년에 개장해 18년 동안 서울 가락동의 밤을 밝혔던 가락동 도매시장은 설 연휴를 앞두고 여느 해와 다름없는 분주함으로 새벽을 열었다.

가뜩이나 바쁜 19일 월요일 새벽. 일요일에 내린 눈마저 길을 미끄럽게 하자 가락동 시장 곳곳은 각자 살길을 찾아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량리, 용산 농수산물 시장 말단 직원을 거쳐 가락동 시장 계림 상회 사장이 된 조병목(56)씨. 올빼미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30여년이 된 그는 가락시장의 살아있는 역사이다.

"아직도 '신용'으로 거래를 하는 곳이죠. 그저 사람 얼굴만 보고도 아무런 증서 없이 몇 백, 몇 억을 그냥 빌려줘요. 가락시장에서 몇 걸음만 더 나가봐요? 서울에 과연 그런 곳이 어디 있나요?"

살벌한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 하나로 거래가 오가는 곳. 혹은 그 믿음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곳.


"내가 낳은 자식들도 키워보니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요. 내 자식도 그런데 하물며 전혀 다른 사람을 종업원이라고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하나요? 동업자로 믿어주고 서로의 신뢰를 지켜주는 게 최고의 철칙이죠."

a 설을 앞 둔 19일 새벽. 예년에 비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설을 앞 둔 19일 새벽. 예년에 비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 김진석

충청도 서산이 고향인 조씨는 농사는 물론 장사 또한 안 해 본 품목이 없다. 현재 그는 비상장 품목을 취급하며 새로운 유통 흐름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비상장 품목은 경매에 부쳐지지 않는 물품으로 소량, 특이, 계절 물품 등을 말하며 그 중 조씨는 냉이, 달래, 유채 등 생나물을 주로 도매하고 있다.


이젠 시장 한 바퀴만 돌아도 유통의 흐름이 한 눈에 보인다는 조씨. 그는 정보화 경쟁 시대에 맞게 시장도 점차 변하고 있다며 가만히 앉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상품을 모르는 고객이 있으면 직접 찾아다니고,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해 움직이지 않는 한 조씨 또한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경기 불황을 가장 먼저 알아요. 30여년 생활을 통해 정말 말 그대로 경기가 '최악' 입니다. 아무리 IMF라 해도 이 정도까지 피부로 와 닿을만큼 심하진 않았어요. 예년보다 물가 및 인건비도 오르고 경매단계와 유통과정이 늘어 상식적으로 농산물 가격도 같이 올라야 해요. 근데 예전엔 1관에 1만원하던 상추가 이젠 5천원 정도여서 생산 원가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태반이죠."

나이가 들수록 흙과 물이 그리워진다는 조씨. 마음 같아선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싶지만 그는 농민의 아들로서 '대한민국 농민으로 산다는 것' 의 어려움을 이미 알기에 결국 마음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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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게다가 소비자들의 입맛이 바뀌어 우리 먹을거리를 예전처럼 즐겨 찾지도 않는다. 사시사철 불황을 모르던 절임 및 젓갈류 반찬에도 이젠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한때는 가락시장에 '수입농산물' 을 취급하는 상점이 열병처럼 번졌던 적도 있다. IMF시절 고학력을 가진 명예퇴직자들이 '된다' 는 말에 너도나도 과거 경력을 살려 중국산 수입 농산물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중국산 농산물 점은 대부분 참패를 기록했다.

이유인 즉, 사람들이 농산물 장사를 너무 쉽게 봤다는 것이 조씨의 변이다. 요즘 그의 계림상회는 설 대목을 맞아 중국산 도라지가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다. 국내산과 중국산의 가격은 대략 열 배 가량 차이가 나 아예 경쟁도 되지 않는다.

조씨는 이젠 '김치' 까지도 중국 수입 산이 인기를 얻고 있다며 구조적으로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우리 농산물을 생각하며 또 한번 한숨 쉬었다.

"초창기 때는 용산에 있던 상인들이 대부분이었죠. 그 당시 만해도 사람들이 얼마나 못났으면 시장 통에서 일을 하나 했어요. 갈 곳 없고 할 것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직업이 바로 시장 통이었어요."

현재 가락시장은 젊은 세대로 교체 돼 평균 연령층이 50대에서 30대 후반으로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1세대 부모님들의 대를 이은 2세대들이 과거와 달리 건강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새롭게 살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힘들다고 말해요. 하지만 살아보니 아무리 어려워도 주어진 환경에서 견디는 방법은 다 있더라구요. 또 한 우물을 파다 보면 자연스레 오늘보다 내일이 또 내일보다 모레가 서서히 나아지는 '맛' 이 있어요. 그 맛으로 버티며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가락시장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나이 듦이 편하다는 조씨. 그는 아무리 불황이어도 '틈새' 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씨가 그의 뒤를 이어 가락시장을 지켜갈 젊은 세대에게 말한다.

"뚜렷한 삶의 목표와 흔들리지 않는 꿈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희망은 주체적으로 찾지 않은 한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자신도 앞으로 그렇게 살아 갈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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