빳빳한 세뱃돈, 얼마나 오래가나요?

화폐 제조비용 연간 1천억원 고스란히 국민 부담

등록 2004.01.26 02:06수정 2004.01.26 16:2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들에게 설날이 기다려지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 좋은 말로 세뱃돈 때문일 것입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신권을 받아든 표정에서 그것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폐의 화폐단위가 그다지 크지 않고 지폐가 풍기는 품위(?) 때문에 세뱃돈에서 주화가 밀려난 지는 오래 전입니다.


설날이 아이들에게 기다려 지는 이유 중 하나는 세뱃돈 받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설날이 아이들에게 기다려 지는 이유 중 하나는 세뱃돈 받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번 설날 적잖게 세뱃돈 지출 또는 수입이 있었을 것입니다. 부지런한 분들은 은행에서 빳빳한 신권을 준비해 조카며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며 덕담을 건넸을 것입니다. 덕담 중에는 "공부 열심히 해라" "부모 말씀 잘 들어라" "새해엔 건강해라" 등이 주종을 이뤘으리라 짐작됩니다. "세뱃돈이 새 돈이니 깨끗이 사용해라"고 하신 분이 있다면 주위의 눈총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돈이 때 아닌 화가 나게 만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거스름돈을 주고받다 보면 받는 이로 하여금 아연실색케 하는 돈(주로 지폐)이 있는데, 다름 아닌 메모지로 전락한 돈이 그것입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5000원을 내고 표를 한 장 산 후 1000원짜리 4장을 거슬러 받았습니다. 그 중 한 장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낙서, 아니 낙서라기보다는 계획적으로 돈을 훼손한 흔적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ADTOP@
스탬프로 얼룩져 심하게 훼손된 천원권 지폐.
스탬프로 얼룩져 심하게 훼손된 천원권 지폐.유성호
고무인(印)을 만들어 스탬프로 지폐의 여백에 종교색이 짙은 문구를 찍어 놨는데, 계획적이라고 단정한 것은 앞면과 뒷면에 각각 다른 문구의 고무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갑 속에는 아직 남은 몇 장의 신권들이 신접살림하는 부부처럼 오붓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 속으로 이 '오염된' 돈을 함께 넣고 싶지 않아서 다른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비단 이뿐 아니라 전화번호가 적힌 지폐를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요즘은 주머니에 수첩 한 권, 메모지 몇 장쯤은 모두 넣고 다닐테고 또한 휴대 전화의 보급으로 급하게 메모할 일도 그리 많지 않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낙서로 얼룩진 지폐를 보면 왠지 서글퍼집니다.

곳곳에 종이가 지천인 요즘에도 지폐에 전화번호 낙서를 하는 죄의식 없는 행동이 만연하고 그것도 모자라 포교 활동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반도덕적인 행위까지 일어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화폐를 찍어 내는 것은 모두 국민의 세금에서 재원이 지출됩니다.


화폐의 일생.
화폐의 일생.한국은행
한국은행에 따르면 새로운 화폐를 찍어 내는 비용만 연간 1000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또 지난해 지폐 폐기 금액만도 470억원에 달했답니다. 우리나라 지폐 수명이 선진국에 비해 짧은 이유에는 돈을 험하게 다루는 좋지 못한 습관이 한몫 하는 듯합니다.

또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수(3종)의 지폐를 사용하다 보니 손을 많이 타서 수명이 짧은 이유도 포함될 것입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7종, 미국, 캐나다 등이 6종입니다. 가까운 일본도 4종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또 최고액권인 1만원짜리가 OECD 국가 최고액권 평균의 18분의 1 수준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저액권이다 보니 지나치게 '돌고 돌아' 쉽게 낡아버리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저액권 유통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표의 수명은 고작 일주일, 발행(용지) 비용은 장당 24원입니다. 제조원가는 1만원권의 70원에 비해 싸지만 발행 비용 대비 수명과 5년간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보관하는 비용 등 제반 비용을 계산하면 장당 수천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고액권 발행이 지폐 수명연장의 대안은 아니지만 고려할 만하다. 그림은 한 네티즌이 가상으로 만들어 본 10만원짜리 지폐. 광개토대왕과 독도가 도안돼 있다.
고액권 발행이 지폐 수명연장의 대안은 아니지만 고려할 만하다. 그림은 한 네티즌이 가상으로 만들어 본 10만원짜리 지폐. 광개토대왕과 독도가 도안돼 있다.
그렇다고 고액권 발행이 지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지폐가 3종'이라도 깨끗하게 돈을 사용하는 것만이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돈을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화폐를 찢거나 훼손하는 것은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찢거나 태워버리는 무욕(無慾)의 현대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낙서 역시 죄를 물을 수 없는 맹점이 있어선지 부지불식간 죄의식 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폐를 깨끗하게 사용하는 것은 죄를 묻고 따지기 이전에 양식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그곳에는 우리네 슬기로운 조상들이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십니다.

덧붙이는 글 | 특정 종교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특정 종교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3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