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품은 정겨운 꽃 '가시엉겅퀴'

내게로 다가온 꽃들(19)

등록 2004.01.28 05:36수정 2004.01.28 16:00
0
원고료로 응원
이선희

가시를 품은 꽃은 일반적으로 예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가시가 있는 이유는 남을 찌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겠지요.

엉겅퀴면 그냥 엉겅퀴인 줄 알았는데 엉겅퀴의 종류도 많고, 비슷한 다른 종류의 꽃들도 부지기수더군요. 바늘엉겅퀴, 큰엉겅퀴, 캐나다엉겅퀴, 도깨비엉겅퀴, 고려엉겅퀴, 지느러미엉겅퀴 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릴 제주에서 만난 '가시엉겅퀴'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공통점은 줄기와 이파리에 가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민수

이파리에 돋아난 가시들을 보십시오. 찔리면 꽤나 아프겠지요?

꽃의 색깔은 진분홍이라고 해야할지 보랏빛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꽃입니다. 한 송이처럼 보이는 꽃은 사실 수많은 통을 닮은 꽃송이가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많은 통 안에 꿀을 잔뜩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한번 엉겅퀴를 찾은 곤충은 그야말로 통마다 들어있는 꿀에 취해서 자리를 뜨질 못하고 빠져듭니다.

곤충들은 아주 예민해서 가까이 가면 훌쩍 도망갑니다.

그런데 간혹 가까이 다가가도 눈치를 못 채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인 경우가 첫째이고, 이렇게 엉겅퀴 같은 꽃들인 경우에 그렇습니다. 꽃마다 꿀을 담고 있는데 한 송이가 아니니 한번 꿀맛을 보면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등골나물, 쥐오줌풀, 피뿌리풀, 엉겅퀴같이 작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를 이룬 꽃에 앉은 나비나 곤충은 쉽게 찍을 수 있답니다.

김민수

그러면 정말인지 한 번 확인을 하실까요? 풍뎅이 한 마리가 아예 엉겅퀴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머리를 박고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꿀맛'에 빠져있습니다.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보이지는 않지만 풍뎅이의 입은 쉴새없이 꿀을 빨고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엉겅퀴를 헤집고 다녔으면 등에도 꽃술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그만큼 엉겅퀴의 꿀맛이 일품이라는 증거겠지요?


김민수

활짝 핀 꽃의 꿀도 맛있지만 이제 막 피어나는 꽃의 꿀맛은 더 신선할 것 같습니다. 꿀맛의 전문가가 막 피어나는 꽃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꽃은 곤충들이 찾아와 함께 노닐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그 이파리마다 성성하게 세운 가시들조차도 부드러워지나 봅니다.


김민수

간혹 이런 장면들을 담아오면 두고두고 행복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을 정지시킨 것이고, 지금은 다 없어진 풍경이지만 나비들이 날고 엉겅퀴가 다시 피어날 무렵에 이런 장면들을 또다시 만나길 소망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입니다.

삶에서 행복했던 순간, 그래서 작은 사진첩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사진들이 있으시죠? 그 사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사진입니다.

김민수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 송이처럼 보이는 꽃에는 수많은 통이 있어서 아무리 많은 손님이 찾아와도 넉넉하게 대접해 줄 수 있답니다. 엉겅퀴의 넓은 마음을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시를 가지고 있으니 쉽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은 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엉겅퀴의 가시뿐만 아니라 자연이 가진 가시는 절대로 먼저 남을 먼저 찌르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키는 데에만 사용을 한답니다. 이런 가시는 아름다운 가시요,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엉겅퀴'라는 이름은 동사 '엉기다'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약효가 출혈을 멈추게 하는데 사용이 된다고 합니다. 출혈이 멈추려면 피가 엉겨야 하니 그 약효에 따라 엉겅퀴가 되었다네요.

이런저런 꽃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그 꽃의 이름이 괜히 붙여진 것은 하나도 없고, 아주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지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꽃의 모양에 따라, 어떤 것은 열매, 어떤 것은 뿌리 등등 각 식물의 특징을 '꼭!' 집어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김민수

서양에도 우리나라의 엉겅퀴와 비슷한 꽃이 있는데 그 꽃에 얽힌 전설이 있다고 하니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듯이 여러분들에게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옛날 어느 외딴 마을에 소녀가 살고 있었데, 소녀는 가난해서 우유를 짜서 항아리에 담아 팔아 생계를 근근히 이어가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우유를 판 돈으로 식구들에게 선물을 사갈 생각을 하다가 그만 엉겅퀴 가시에 다리가 찔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항아리를 놓쳐버린 거야.

그 바람에 항아리는 깨졌지, 우유는 쏟아졌지, 소녀의 꿈도 항아리처럼 산산조각이 났어. 너무 슬퍼하던 소녀는 그만 쓰러져서 목숨을 잃었다나. 그런데 그 소녀가 훗날 소로 태어났다네. 그래서 소로 태어난 소녀는 엉겅퀴를 보기만 하면 다 뜯어먹는다고 하네. 간혹 엉겅퀴 이파리에 흰무늬가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우유가 엎질러진 흔적이라나 어쨌다나….'


그런데 실제로 엉겅퀴는 약간 씁쓰름한 맛이 있어서 초식동물들이 좋아한답니다. 토끼도 쓴 풀을 좋아하는데 엉겅퀴도 아주 잘 먹죠.

김민수

12월 초 한라산을 닮았다는 오름 손자봉에 올랐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세상에 가시엉겅퀴가 지천에 피어있는 것입니다. 그 생명력에 감사를 할 수밖에요.

그러나 이내 이렇게 말라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버스럭 거리는 것에서도 희망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어인 일인가요? 끝이 아니라 잠시 쉼의 시간을 갖는 중이요, 다시 피어날 날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하네요.

가시엉겅퀴.

시골길가에도 흔하게 피어있는 꽃입니다. 살며시 한번 보듬어 보고, 쓰다듬어 주고 싶은 꽃이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꽃, 그래서 자신을 지켜 가는 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기사까지의 기금] 360,000원

덧붙이는 글 이선희 선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주중엔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과 생활하다가 주말은 돋보기 들고 들에 나아가 꽃 관찰하며 이야기 나누고 그러다 화폭에 담아 응접실에 걸어놓고 행복해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색연필로 들꽃을 그린 지 4년째입니다. 예쁜 카드(현재 3집까지 나왔음)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꽃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카드를 팔아 불우한 어린이를 돕고 있습니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은 총 100회를 목표로 시작했으며, 이 기사를 통해 나오는 원고료와 관련 수익금은 전액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기사까지의 기금] 360,000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