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물의 미덕

등록 2004.01.30 09:26수정 2004.01.3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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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절에서 어떤 맛을 느끼게 될까?


오랜 연륜과 깊은 안목을 갖춘 이들은 절이 가지고 있는 시공간적 아름다움을 눈으로 느끼면서 가슴 가득 담아가지고 갈 것이다. 사월 초파일 절을 찾아 절밥을 먹어본 이들은 담백하고 정갈한 그 맛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초여름 더위에 숨 헐떡이며 올라간 산사에서 타는 목마름을 달래기 위해 산사의 샘물을 먹어본 이들은 그 시원하고 청량한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기원
대학 시절 답사란 이름으로 절을 많이 찾았다. 그런데 그 시절 절은 내게 별다른 느낌으로 다가서질 못했다. 내가 좋아 찾는 절이 아니라 답사를 통해 학점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절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꽤나 많은 절을 찾았으면서도 정작 각각의 절들이 가지고 있는 정취를 제대로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저 자료에 나온 내용을 적당히 짜깁기하고 사진을 찍어 답사 보고서 제출하고 학점을 받았을 뿐이었다. 돌아보면 참 한심한 녀석이었지 싶다.

그래도 그 답사 중에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바로 절 마당에서 솟아나는 샘물 맛이다. 절은 대개 깊은 산중에 많다. 산악 숭배 사상과 불교 사상이 결합되어 깊은 산중에 절을 짓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절 마당에 도착할 무렵이면, 이마와 등줄기엔 땀이 흐르고 입에선 단내가 나면서 갈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찾았던 것이 샘물이었다. 시원하면서 달콤하기까지한 그 물맛은 한마디로 최고였다. 그래서 절에 올때면 꼭 찾아 맛을 보는 게 절 마당 한귀퉁이에 있는 샘물이었다.


이번에 찾은 보덕사는 들어가는 길이 험하지도 가파르지도 않았다. 더구나 한겨울에 찾은 터라 온몸에 찬바람이 무방비로 달려들어 춥기만 했다. 그래도 물맛은 보고 떠나야 하겠기에 샘물을 찾았다. 먼저 아들 녀석에게 물을 마셔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진저리를 치며 한마디 했다.

"추운데 찬물을 어떻게 먹어."
"한번 마셔봐. 생각처럼 차갑진 않을 거야."
"겨울인데 왜 안 차가워?"
"이 물은 얼지도 않고 이렇게 흘러가고 있잖아. 찬물이면 벌써 얼어버렸지."


이기원
몇번을 주저하던 녀석은 마지못해 물을 마셨다. 처음에는 한방울씩 겨우 넘기더니 조금 후에는 꿀꺽대며 마셨다. 다 마신 녀석은 손으로 입술을 쓰윽 닦아내며 한마디 했다.

"정말, 차갑지 않고 미지근하다."

녀석은 겨울에 샘물이 얼지 않은 이유를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나아가 더 나이가 들면 더위 속에서도 시원함을 유지하고, 추위 속에서도 그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샘물의 미덕임을 이 녀석도 깨달을 때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바가지에 샘물을 가득 담아 달게 마시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기원의 사이버스쿨(http://www.giweon.com)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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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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