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대학 시절 답사란 이름으로 절을 많이 찾았다. 그런데 그 시절 절은 내게 별다른 느낌으로 다가서질 못했다. 내가 좋아 찾는 절이 아니라 답사를 통해 학점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절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꽤나 많은 절을 찾았으면서도 정작 각각의 절들이 가지고 있는 정취를 제대로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저 자료에 나온 내용을 적당히 짜깁기하고 사진을 찍어 답사 보고서 제출하고 학점을 받았을 뿐이었다. 돌아보면 참 한심한 녀석이었지 싶다.
그래도 그 답사 중에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바로 절 마당에서 솟아나는 샘물 맛이다. 절은 대개 깊은 산중에 많다. 산악 숭배 사상과 불교 사상이 결합되어 깊은 산중에 절을 짓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절 마당에 도착할 무렵이면, 이마와 등줄기엔 땀이 흐르고 입에선 단내가 나면서 갈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찾았던 것이 샘물이었다. 시원하면서 달콤하기까지한 그 물맛은 한마디로 최고였다. 그래서 절에 올때면 꼭 찾아 맛을 보는 게 절 마당 한귀퉁이에 있는 샘물이었다.
이번에 찾은 보덕사는 들어가는 길이 험하지도 가파르지도 않았다. 더구나 한겨울에 찾은 터라 온몸에 찬바람이 무방비로 달려들어 춥기만 했다. 그래도 물맛은 보고 떠나야 하겠기에 샘물을 찾았다. 먼저 아들 녀석에게 물을 마셔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진저리를 치며 한마디 했다.
"추운데 찬물을 어떻게 먹어."
"한번 마셔봐. 생각처럼 차갑진 않을 거야."
"겨울인데 왜 안 차가워?"
"이 물은 얼지도 않고 이렇게 흘러가고 있잖아. 찬물이면 벌써 얼어버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