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가지치기로 겨울이 더 춥다

불필요한 가로수 강전지 작업 재고해야

등록 2004.01.31 01:20수정 2004.01.3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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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가로수의 대명사 버즘나무를 아십니까? 버즘나무라고 하면 생소하게 들릴 수 있으니 흔히 말하는 플라타너스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한 여름 도심에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는 버즘나무는 커다란 잎에 우락부락한 몸통 등 모양새와 달리 인간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고 있습니다. 가을엔 제법 운치 있는 단풍색을 내뿜기도 합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풍요로운 단풍색을 보여주는 버즘나무.
화려하지 않지만 풍요로운 단풍색을 보여주는 버즘나무..
버즘나무는 성장속도가 빠르고 기능이 좋아 세계 각국에서 가로수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가로수는 733노선에 27만357주가 심어져 있습니다. 이중 버즘나무가 10만903주로 전체의 38%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가로수목입니다.

버즘나무 기능은 도심의 가로미관을 향상시키고 은행나무와 같이 대기오염에 견디는 능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소음을 흡수하고 대기에 떠도는 인체에 해로운 유해물질을 흡착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에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이 버즘나무가 겨울만 되면 전기톱날의 수난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가로수의 수형을 바로잡고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기 위할 뿐 아니라 교통표지판, 신호등, 고압선 등에 접촉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가지치기(전지)를 실시하기 때문입니다. 가지치지는 나무의 성장이 거의 정지되는 겨울에 실시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황량한 나뭇가지가 더욱 볼품 없어 집니다.

심하게 가지치기를 당한 버즘나무의 애처러운 모습.
심하게 가지치기를 당한 버즘나무의 애처러운 모습.유성호
어떤 나무는 볼품의 차원을 넘어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뭉텅 잘라내 수목의 생명까지 염려됩니다. 오늘은 혜화동 사거리를 지나다 강전지(강한 가지치기)를 한 버즘나무를 발견했습니다.


나무 인근에는 가려질 만한 교통표지판도, 신호등도, 고압선도 없었습니다. 다만 전깃줄 하나가 나무 상부를 지나고 있었는데, 선이 꼬여있고 어디서 배전되어 어느 곳으로 들어가는 지 분명치 않는 등 사용하지 않는 전선으로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몸통 가까이까지 잘려나간 버즘나무의 앙상한 모습이 겨울거리를 더욱 스산하게 만듭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팬티까지 벗겨 놓은 느낌입니다.


버즘나무는 약전지 할 것을 규정한 울산시 조례.
버즘나무는 약전지 할 것을 규정한 울산시 조례.유성호
가로수 가지치기는 각 지자체마다 별도의 조례를 두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의 경우 도심지 녹지량 확충을 위하여 가로수 가지치기는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고압선 저촉으로 인한 단전우려, 교통표지판 시계장애, 신호등 저촉 등으로 인한 시민생활 불편사항 해소와 하수지, 고사지, 병해지 등 가로수 활력증진을 위해 일정을 잡아 가로수 가지치기 작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남 남해군의 조례를 보면 가지치기를 할 때에는 강전지는 삼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굳이 강전지까지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사람 머리 손질하듯 가볍게 약전지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울산광역시 조례에는 그림까지 그려가며 버즘나무에 대해 약전지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끔 인근 상가 업주들이 상가 앞 가로수 가지치기를 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하곤 했답니다. 상가 간판이 가로수 잎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혹시 요즘도 그런 상가 업주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혜화동 사거리에서 대학로로 한참을 내려 왔습니다. 같은 버즘나무라도 대학로 변에 있는 것들은 온전했습니다. 온전한 버즘나무 가지 위에는 까치들이 쉬고 있었고 새집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가지 잘린 버즘나무도 한때는 새들의 집을 품고 있지는 않았을까.
가지 잘린 버즘나무도 한때는 새들의 집을 품고 있지는 않았을까.유성호
사거리 버즘나무 가지 위에도 혹시 까치집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도한 가지치기 작업, 한번쯤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이듯 인간을 해치지 않고 더불어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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