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서 느끼는 경찰의 보람

경찰 마라톤 동호회 '런캅스' 황흥성 회장

등록 2004.01.31 13:51수정 2004.02.02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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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전 중부경찰서 동부지구대 황흥성 2팀 소장.

대전 중부경찰서 동부지구대 황흥성 2팀 소장. ⓒ 권윤영

달리는 경찰을 본 적이 있는가.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내달리는 것 외에도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달리는 경찰이 있다. 대전 중부경찰서 동부지구대 2팀 황흥성(56) 소장은 업무 중에 받는 힘겨움도 고충도 달리면서 털어버리는 마라톤 마니아다.


"20여 년 전 건강이 좋지 않아서 위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수술 후 꾸준히 등산을 하거나 동네 인근 학교 운동장을 돌며 건강을 회복해 나갔습니다.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부터죠."

그는 지난 2002년 결성된 중부서 마라톤 동호회 '런캅스(runcops)'의 회장이기도 하다. '런캅스'는 말 그대로 달리는 경찰들의 모임. 초기 멤버 20여명으로 출발해 현재 회원은 40여명에 이르는데, 그는 동호회의 결성 준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황 소장은 회원들과 함께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인지도가 있는 춘천국제마라톤대회부터 중앙일보 주최 대회 등 전국에서 수시로 열리는 대회가 활동 무대로 1년에 다섯 차례 가량 참여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5㎞ 코스를 뛰는 것도 힘겨워 하던 회원들이 이제는 10㎞는 식은 죽 먹기다.

a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좋은 성적을 내기도 한다.

각종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좋은 성적을 내기도 한다. ⓒ 권윤영

그는 지난해부터 풀코스 42.195㎞에 도전 중이다. 올해 3월에 열리는 서울동아마라톤 대회는 4시간 30분 이내 기록수립자만 신청을 할 수 있는 대회. 여기에 참가해 3시간 10분 안에 코스를 완주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그의 풀코스 최고 기록은 3시간 20분.

"1㎞를 4분 45초 정도로 꾸준히 뛰어야지 3시간 20분 기록이 나옵니다. 그렇게 뛰다보면 힘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뛰고 난 다음에는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활력소가 돼요. 이번 대회에서는 10분 정도 시간을 단축할 계획이에요. 하지만 저의 최종 목표는 서브쓰리(2시간대 완주)입니다. 올해 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막상 뛸 때는 힘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코스를 완주한 후 성취감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경험해보지 않은 동료들은 마라톤을 하면 피곤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피곤하기보다 오히려 피곤을 모르는 편에 속한다. 이는 야간 근무를 주기적으로 서는 그에게 있어 커다란 장점이다.

파출소의 근무 형태는 12시간씩 3교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연히 야간 근무하는 날도 많을 수밖에 없다. 황 소장은 야간근무가 아닌 날에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선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갑천 둔치. 새벽 공기를 가르며 10㎞ 정도를 달린다.


a 대전 중부서 마라톤 동호회 '런캅스' 회원들.

대전 중부서 마라톤 동호회 '런캅스' 회원들. ⓒ 권윤영

다소 힘든 직업이지만 마라톤 동호회 활동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니 좋을 수밖에 없다. '대전 중부경찰서 runcops'라고 쓰여 진 노란색 유니폼을 맞춰 입고 대회에 참석하면 달리는 경찰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긍정적이다.

동호회를 운영하는 황 소장이 느끼는 아쉬운 점은 다같이 모이기가 힘들다는 것.

"경찰이라는 직업은 같지만 직책도 다르고 근무지도 다릅니다. 파출소에 근무하더라도 조가 다르니까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죠. 때문에 단체 훈련은 받기 어려워 각자 위치에서 연습을 하다가 대회를 앞두고서는 토, 일요일이든 시간을 내서 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마라톤은 그에게 경찰로서의 보람과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기도 했다. 그가 은행동 파출소장으로 재직 중일 때 어린이 유괴사건이 발생했다. 삼천만원을 요구한 유괴범은 아이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대전을 돌며 전화를 걸어왔다. 마침 은행동 인근에서 범인이 전화를 걸어왔고 빨리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a 마라톤 관련 각종 자료와 사진은 그의 보물이다.

마라톤 관련 각종 자료와 사진은 그의 보물이다. ⓒ 권윤영

파출소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 그는 경찰관들을 곳곳에 배치시킨 후 직접 뛰어나갔다. 전화를 막 끝내고 나가는 유괴범을 발견했다. 범인은 달아났고 그는 끊임없이 뒤쫓았다. 무려 2㎞를 달린 끝에 직접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유괴범을 검거한 공로로 경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부모에게 인계할 때는 아이도 울고 부모도 울고 눈물바다를 이뤘습니다. 저희도 사람인데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죠. 경찰로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고 이게 다 꾸준히 마라톤을 했기에 가능한 일 아니겠어요."

건강 때문에 시작한 마라톤은 경찰로서 정의실현을 하는데도 한몫을 해냈다. 힘든 것을 참고 꾸준히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인생살이와도 같은 것일까. 황 소장은 "좋은 일만 있다 보면 좋은 일이 생겨도 몰라요.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가 좋은 일이 생기면 그 기쁨은 배가 되지요"라고 말했다.

지난 74년부터 30여년의 세월 동안 경찰관으로 근무한 그는 내년이면 정년을 앞두고 있다. 정년 후에도 그는 마라톤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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