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광수야, 이 해우소가 얼마나 오래된 건지 알아?"
"몰라"
"120년 전에 만든 거야."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봐라, 저기 안내판에 1882년에 건립되었고 120년 되었다고 씌어 있잖아."
"어, 정말이네. 그럼 아빠보다 나이가 많네."
"할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은 걸."
"우와, 대단하다."
관심이 생기면 반응이 빠른 것이 아이들의 특징이다. 녀석은 해우소에서 얻은 짜증을 까맣게 잊고 해우소 안내판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마디했다.
"아빠, 화장실도 문화재가 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저기 봐. '강원도 문화재 자료 123호'라고 써 있잖아."
"정말이구나. 광수가 대단한 걸 발견했네."
"우와, 그럼 난 문화재에서 오줌 눈 거네."
녀석은 마냥 좋아했다. 국보도 보물도 아닌 지방 문화재 자료에 불과하지만 아이에겐 대단한 의미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해우소에 들어가서 받은 스트레스를 안내판을 읽으면서 간단하게 풀어버렸다.
정말 뜻밖의 수확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근심과 번뇌를 풀어주면서 긴 세월을 우직스럽게 버티고 서 있는 보덕사 해우소의 모습이 어느 순간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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