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된 한반도, 영월 가면 볼 수 있다

[인터뷰]사진작가 고주서씨, "자연이 만든 한반도 사진만 7만컷 찍었어요"

등록 2004.02.04 11:01수정 2004.02.0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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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산과 물이 맑은 영월

산과 물이 맑은 영월 ⓒ 이종원

영월 북쪽 여행은 늘 기분이 좋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언제나 수려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법흥사에 올라가면 웅장한 사자산의 위용을 볼 수 있고, 주천에 가면 술의 성지인 술샘을 만날 수 있다. 요선정에 올라서면 물과 돌이 연출해낸 비경에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비경이 가득한 영월에서 한반도 모양과 비슷한 지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선암마을을 찾아가게 되었다. 선암마을은 여느 농촌마을과 다름없이 한적한 마을이다. 그러나 한반도를 품에 안고 있는 비범한 마을이기도 하다.

a 동고서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반도 지형

동고서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반도 지형 ⓒ 이종원

아기자기한 소나무 길을 오르면 작은 공터가 나온다. 거기에 한반도의 모양과 너무나도 흡사한 지형이 펼쳐진다. 이 지형의 동쪽에는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서쪽엔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다. 해남반도와 포항의 호미곶 정도로 보이는 것도 있으며, 동쪽 검은 바위는 울릉도와 독도를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 모습만 똑같은 것은 아니다. 한반도 주변 열강인 중국, 러시아, 일본에 해당하는 위치에는 시멘트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열강들이 한반도를 노렸던 구한말 역사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위치에 자리잡은 시멘트 공장은 쉴새없이 연기를 내뿜으로 한반도를 오염시키고 있다. 그 공장 앞으로 한반도 지형을 잇는 철제 다리가 놓여 있다. 바로 압록강 철교와 같은 형상이다.

이 지형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 드넓은 만주 땅도 한반도 땅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 역사를 송두리 채 빼앗을 흉계를 지니고 있는 중국에게 자연은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듯하다.

그 곳에서 쉴새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는 고주서(49)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은 이렇게 살아있는 기인들을 만나는 일이다.

영월토박이인 고주서(49세)씨는 사진작가다. 다시 말하면 영월에 있는 이 한반도 지형을 전문적으로 찍는다. 이 자리에서만 무려 7만컷을 찍었다고 하니 그 노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지형에 대한 고주서씨의 애정은 남다르다. 산에 오를 때, 그는 항상 목욕재개를 한다. 수천 번도 더 올랐지만 한번도 어긴 적이 없다. 비바람이 치거나 눈보라가 몰아쳐도 어김없이 산에 올라 비경을 앵글에 담았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른다.

a 한반도 관통도로는 중단되었다.

한반도 관통도로는 중단되었다. ⓒ 이종원

2001년 겨울, 고씨가 이다지도 신성시 했던 한번도 지형도 하마터면 분단의 아픔을 겪을 뻔했다. 함흥쪽에서 압록강쪽으로 도로가 놓이게 된 것이다. 그는 그 공사를 막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얼마후면 한반도를 가로지를 공사가 시작될 터였다. 고주서씨는 그것을 지켜 봐야하니 가슴이 시커멓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반도 사진 한 장이 문화일보 일면을 장식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한반도 지형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훼손을 막아야할 여론이 형성되었다. 내친 김에 지난 2002년 1월에는 일주일간 국회에서 한반도 지형 사진 전시회까지 열었다.

결국 여론에 밀려 도로 공사는 중단되었고, 이 영월 산골짜기의 또다른 한반도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 그는 '한반도 지형' 알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월의 관광버스와 시내버스는 물론이고 식당 등 대중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뿌린 사진이 무려 8만장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개인 사재를 털어 가며 누구도 '지원하지' 않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a 식당에 걸려 있는 한반도 사진

식당에 걸려 있는 한반도 사진 ⓒ 이종원

- 필름 값이 만만치 않을텐데, 한반도 사진을 많이 찍는 이유는?
"저 곳의 지형을 그저 바라만 봐도 국토사랑과 애국심이 솟아오릅니다. 남북이 하나 되었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을 매일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일생동안 이 곳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남북이 함께 모여 한반도 깃발을 흔드는 것을 보고 빨리 통일이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까? 그 기분을 저는 매일 이곳에서 느낀답니다. 많은 분들이 이 한반도 땅을 보면서 통일을 느끼고 우리 국토를 사랑하겠다는 마음만 가진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 결혼이 늦어진 이유는?
"동강을 살리기 위해 젊음을 바쳤고, 그것이 해결되니까 한반도 살리기 운동에 빠졌습니다. 생업도 포기한 채 사진만 찍으러 다녔더니 주변에서 미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하더군요. 그러나 누군가는 발 벗고 나서야 할 일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제가 총대를 멨습니다. 그렇게 환경운동을 하다보니 결혼할 시기까지 놓쳐 2년 전에 하게 됐습니다."

- 생활은?
"한반도 사진을 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끔 사진을 팔아 생활하고 있지요. 필름 사고 장비 갖추느라고 집에 돈을 가져다 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끝까지 이해하고 성원해준 아내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 언제까지 한반도 알리기 운동을 벌일 생각입니까?
"전망대에 무궁화 꽃을 심었는데 누군가 나무를 베면서 다 꺾어놓았더군요. 어찌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요. 봄이 되면 무궁화 꽃을 가득 심을 예정입니다. 현재 노끈을 길게 이어 난간을 대신했는데, 상당히 위험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위치에서 볼 수 있도록 팔각정을 설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엔 화장실도 없어요. 아직 할 일이 많아요. 저는 이곳이 천연기념물이 될 때까지 알려낼 작정입니다."

- 바람이 있다면?
"한반도 지형은 통일의 상징입니다. 남북 정상이 이 곳을 배경으로 악수를 한다면 통일이 더 빨리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 사진을 찍는 것이 일생의 소망입니다. 우선은 금년에 진도개와 풍산개가 만나는 사진을 찍을 예정입니다.

정말 아끼는 한반도 사진이 있습니다. 청와대에 이 사진을 꼭 걸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통령이 매일 한반도 사진을 보면서 통일을 생각하고 민초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a 한반도 지형에서-고주서씨

한반도 지형에서-고주서씨 ⓒ 이종원

한반도를 휘감고 있는 물이 서강이다. 지금은 얼었지만 이 강은 1급수라서 매자, 모래무지, 메기, 쉬리까지 노닌다. 강 바닥에는 민물조개와 다슬기까지 자라고 있다. 새벽 안개가 슬그머니 피어오를 때면 수달이란 놈이 나타나 물살을 헤칠 정도로 깨끗한 곳이다.

이곳이 이렇게 청정함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은 고주서씨 같은 분들의 숨은 노력 때문이 아닐까?

자연이 만든 한반도 지형을 보려면?
선암마을 가는 방법

1)자가용

중앙고속도로-신림 IC-주천면-서면 신천리 88번국도 (영월방면 15분거리) 우측에 푯말이 있음. 비포장도로를 타고 가면 산길로 오른다. 길가에서 600미터 거리 (도보로 8분)

2) 대중수단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오전 6시10분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원주행 직행버스를 이용.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40분까지 하루 13회 운행하는 영월, 태백행 직행버스를 타고 서면사무소가 있는 신천리에서 하차

3) 민박

서현석씨 (033-372-2469)

덧붙이는 글 | 이종원 기자의 홈페이지:http://cafe.daum.net/monol4

덧붙이는 글 이종원 기자의 홈페이지:http://cafe.daum.net/monol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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