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욕되게 하는 <조선> 설문조사

[주장] 네티즌, <조선> '안 시장 여론조사' 비판

등록 2004.02.05 12:36수정 2004.02.0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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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조선닷컴>이 인터넷에서 실시하고 있는 '안상영 시장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제목의 여론조사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이 '안 시장을 두 번 욕보이는 행위', '특정 정당을 이롭게 하기 위한 정략이 엿보인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의 인터넷 여론조사는 안내 글과 선택 항목만을 놓고 보았을 때, 대단히 선정적이다. 안 시장의 자살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이 있다는 최병렬 대표의 발언을 소개하는 것으로 여론조사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설문조사 전문은 아래와 같다.

안상영 시장의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간 : 02/04~02/10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4일 안상영 부산시장의 자살에 대해 '권력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최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안 시장이 구속되기 전 내게 '노 대통령이 몇 차례 도와달라며 함께 일하자고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면서 "광역단체장을 무리하게 구속 수사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여러분은 안상영 부산시장의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권력에 의한 살인'이다
2. 부패정치인의 최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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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현직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왜 안 시장이 구속됐는지, 그리고 추가 수뢰 혐의로 서울까지 이송돼 조사를 받은 까닭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신문사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특정한 답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병렬 대표의 '자살 원인이 된 안상영 시장의 구속은 협조를 거부한 데 따른 보복수사 때문'이라는 무책임한 발언만 소개되고 있지 않은가.


<조선닷컴>의 여론조사만 놓고 볼 때, 안상영 시장과 한나라당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노무현 정부에 의해 부당한 탄압을 받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안 시장이 자살하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그의 시장직 사퇴가 부산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2월 2일 열린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부산의 한 의원이 'J기업으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안 시장이 또 다른 뇌물 수수를 시인해 지역 여론이 악화됐다. 안 시장에 대한 사퇴압력이 거세질 것인데 당에서는 이 같은 지역 현실을 도외시한 채 공천을 진행하고 있다'며 안상영 시장의 사퇴를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안 시장이 정권의 부당한 탄압을 받던 중 자살한 것이라면 하루 전까지만 해도 그의 사퇴를 거론했던 같은 당 의원들은 부당한 탄압의 동조자가 되는 셈인가. 정황이 이와 같음에도 조선일보가 최병렬 대표의 말만 인용하면서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그래서 특정 답을 선택하도록 유도한 것은 정략적이란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조선닷컴>은 현재 진행 중인 여론조사의 중간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안 시장 죽음은 권력의 살인 67%"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그러나 그 67%에 포함되지 않은 네티즌들은 조선일보식 '여론조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네티즌들은 '이것이 조선일보식 여론조사의 진수'라면서, ▲ 무죄추정의 원칙상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은 안상영 시장을 가리켜 '부패정치인'이라고 낙인찍은 설문 항목 ▲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주장한 '권력에 의한 살인'은 항목에 있는데, 우리당에서 주장한 '사회적 모멸감에 의한 자살'이 빠진 것 ▲ 최병렬 대표의 발언만 소개해 답변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고인의 자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 정치평론사이트 <서프라이즈>에 관련 글을 기고한 아이디 '기자정신'은 "죽음을 이용해 의도된 방향으로 여론을 호도하려는 조선일보는 언론사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처사다. 결과를 보니 '권력에 의한 살인'은 68%에 달한다. 그 외 나머지는 '부패정치인의 최후 모습이다'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니 기분이 유쾌할 리가 없을 것이다. <조선>은 이 결과가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서 인용하기를 기대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그 이유뿐이라면 망자와 그 유가족을 욕되게 하는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라며 여론조사의 순수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안 시장이 자살을 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유서가 발견됐다. 마지막 그가 남긴 짧은 글에서 자살을 택하게 된 배경을 암시한 대목은 "사회적인 수모를 모두 감내하기가 어려워 오늘의 고통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합니다"이다. '권력', '살인' 등의 뉘앙스를 풍기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안 시장의 자살 동기를 알게 해주는 유서가 공개됐음에도 '권력에 의한 살인'을 유도하는 <조선>의 여론조사는, 그리고 중간결과라면서 '권력에 의한 살인 67%'의 제목을 대문에 크게 보도하고 있는 행위는 "안 시장 죽음은 정권에 의한 살인"이라며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한나라당의 결정과 맞물려 고인을 욕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회적 수모를 견디기 어려워 자살을 선택한 그는 왜 사후에도 자살의 배후,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의해 또 한번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안 시장은 죽어서도 '평안'을 누릴 수 없단 말인가. 그것도 살아 생전 자신의 편이라 믿어 왔던 세력들에 의해서 말이다. 사자(死者)는 지금 묻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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