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83

화벽의 주인 (1)

등록 2004.02.06 14:37수정 2004.02.0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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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철마당에 비룡보다 빠른 말이 있는가? 없는가?”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자네, 내 물음에 대한 답부터 먼저 하게.”
“……?”


이회옥은 단 한번도 철마당 근처를 기웃거리지 않던 무언공자 구호광의 느닷없는 방문에 이어 거두절미(去頭截尾)한 물음에 다소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여 대답을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있는가? 없는가? 왜, 대답하지 않는가? 속일 생각일랑 말고 사실대로 말하게. 있는가? 없는가?”
“이, 있기는 하지만…“

철마당주가 된 이후 이회옥은 마굿간을 돌던 중 어린 시절의 비룡을 연상케 하는 망아지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놈은 이회옥이 선무곡에서 조련하던 질풍과 노도 사이에서 태어난 망아지였다. 웬일인지 이놈은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비쩍 꼴아 있었다. 선무곡 조련사들이 보통 말 다루듯 한 결과였다.

대완구는 무림천자성 철마당 이외에는 존재할 수 없는 말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죽어도 철마당에서 죽어야 한다. 혹시 죽었다하고 다른 곳으로 빼돌릴까 싶어 만들어진 규정이었다.


그렇기에 선무곡에서 본성으로 보내졌는데 워낙 비실비실 하여 며칠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기에 하급 조련사들이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아 당주인 이회옥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대완구치고는 유난히도 유약해 보여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이회옥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 결과 왜 이렇게 꼴아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운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연유로 박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목구멍 깊숙한 곳에 바늘 하나가 꽂힌 채 녹슬어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먹을 수 없어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하도록 말라 있었던 것이다.

바늘을 제거하고 보살피는 동안 어느 누구도 알아볼 수 없던 자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망아지는 제대로 된 조련만 거치면 천하 명마가 될 놈이었던 것이다. 하여 비밀리에 특별 조련 중에 있었다.

“호오! 있다는 말이지? 역시…, 철마당 당주답네. 자넨 무림천자성 역사상 가장 뛰어난 당주가 될 것일세. 핫핫! 오래 전 자네를 처음 본 순간 비범하다 느꼈거늘…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군. 좋아, 그건 그렇고 지금 당장 그 말을 내게 주게.”

“예에? 철마당에 배속된 말들은 성의 재산으로 함부로…”
“자네, 지금 본좌에게 설교하려는 겐가? 설마, 본좌가 누군지 모른다고는 않겠지?”

“헉!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철마당의 말은 사사로이…”
“그래? 그렇다면 말 한 필 얻자고 성주께 허락을 받아 와야 하는가? 아님, 장로회의라도 거쳐 의결을 얻어낼까? 어떤가? 의결정족수를 과반수로 할까? 아님 만장일치로 할까?”

“……!”
“뭐, 장로회의만으로 부족하다면 천하 각지에 흩어진 무천장주들을 몽땅 소집해서 본좌가 말 한 필 갖고 싶다는데 허락할 건지 말 건지를 물어볼까?”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있다. 이대로 있다간 무림의 모든 문파 장문인들을 몽땅 모아놓고 회의를 하자고 할 판이었다. 하여 이회옥은 얼른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아니고…”
“좋아, 그게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지? 흠, 내 정도 신분이면 사사로이 한 필쯤 끌고 가도 그만일 것 같은데 자네의 의견은 어떠한가?”

“그, 그야 공자께서는 성주님의 자제이시니…”
“그럼 되었네. 아주 달라는 것은 아니네. 몇 번 타보고 반납함세. 그러니 어서 말을 내주게. 단 비룡보다 빨라야 하네.”
“……?”

이회옥의 표정을 살핀 무언공자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뜻이 관철될 듯 싶어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아, 왜 비룡 보다 빨라야 하는지는 묻지 말게. 그나저나 자네가 선무곡에 배속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르네. 그런데 이렇게 돌아왔고, 최근 들어 마굿간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네.”
“어찌 그런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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