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검사에서 막가파식 폭로정치인으로

[정치 톺아보기 46] '황비홍'의 전사 홍준표 의원

등록 2004.02.06 18:08수정 2004.02.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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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해 11월 중순 한나라당 의총에서 홍준표 의원이 바바리코트를 입고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한나라당 의총에서 홍준표 의원이 바바리코트를 입고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홍준표 의원의 휴대전화 벨 소리는 영화 <황비홍>의 주제가다. 점잖은 재선의원의 그것 치고는 다소 엽기적이다.

홍 의원은 그 사연을 묻자 "군대에 간 아들이 '이 벨 소리가 울릴 때마다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황비홍을 생각하시라'면서 다운로드 받아준 것"이라고 했다.

그뿐 아니다. 홍 의원의 휴대전화의 컬러링은 카펜터즈의 'Yesterday once more'라는 곡이다. 옛날 여당 시절을 그리워하며, 좋았던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았다나.

홍 의원은 이처럼 '나이브'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는 전사(戰士)다.

대학 근처 은행 근무한 여행원에게 첫눈에 반한 법대생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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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경남 창녕 출신인 홍준표 의원은 어렸을 때부터 밥을 정말 많이 굶었다고 했다. 지금도 겨울이면 몸피에 비해 낡고 헐거워 보이는 허름한 바바리코트를 즐겨 입고 다니지만, 대학 다닐 때 몸무게는 46㎏였다.

자신이 못 먹고 못 입고 자라서 그런지, 고려대 법대생이었던 '촌놈' 홍준표는 학교 근처의 K은행 지점에 갔다가 거기서 몸무게가 55㎏쯤 되는 통통하고 예쁜 여행원에게 첫눈에 반해 4년 동안 물불 안가리는 연애를 하게 된다. 그때부터 거악(巨惡)이라는 이름의 풍차에 물불 안가리고 달겨드는 '돈키호테' 기질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경남 창녕 출신이지만 군생활(방위)을 전북 부안 줄포에서 했다. 그 사연 또한 돈키호테답게 재미있다. 법대생 홍준표의 마음을 빼앗은 여행원은 부안 줄포 출신으로 군산여상을 나와 당시 K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다. 지금은 홍 의원의 장인이 된 이 여행원의 부친은 당시 부안의 수협조합장이었다.

그런 장인의 눈에 비쩍 말라빠진 경상도 남자가 눈에 찰리 없었다. 법대생 홍준표가 장인에게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갔는데 '영감탱이'가 반대했다(홍 의원은 그때의 서운한 감정을 지우지 못해서 지금도 장인을 '영감탱이'라고 부른다). 그뿐이 아니었다. 장인은 딸한테 "그놈이 고시(사법시험)를 합격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까지 '악담'을 했다.


그러나 그 말에 기죽을 홍준표가 아니었다. 마침 군대를 다녀와야 할 형편이었던 법대생 홍준표는 아예 주소지를 부안 줄포로 옮겨 거기에서 방위생활을 했다. 고시 공부하는 처지에 현역 3년은 너무 부담스러웠다. 마침 '처가' 동네는 해안가였기 때문에 방위 T.O가 많았고, 시력이 0.5에 키 169㎝ 몸무게가 46㎏밖에 안되는 '부실남'이었기에 4급(방위) 판정은 무난했다(그에게는 언젠가 사석에서 '굉장히 말랐었네요'라고 하자 "웬걸, 179㎝에 45㎏도 있는데…"라고 받아넘길 만큼 위트가 넘치는 면도 있다).

"집 한 채 사주겠다" 장인 '회유' 거절하고 지하 단칸 셋방에서 시작

정식으로 혼인은 안했지만 당시는 처갓집 말뚝만 봐도 절하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줄포에서의 방위생활은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기였다. 그리고 방위생활을 마친 홍준표는 보란 듯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러자 그렇게 사위를 구박했던 장인은 딸에게 "그동안 내가 홍 서방한테 잘못했다"면서 "집을 한 채 사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장인의 구박이 가슴에 박힌 사법연수원생 홍준표는 장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리고 신림동의 지하 단칸 셋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똥고집'을 묵묵히 따라준 집사람이 지금도 고마울 뿐이다. 법대생 홍준표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때 두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밤 11시 전에 들어오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딴 여자에게 한눈 팔지 않겠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언젠가 사석에서 "내 결혼한 지 24년째인데, 그 약속을 지키며 삽니다"고 은연중에 자신의 '청교도적인 삶'을 자랑했다. 그는 그것이 고시 공부할 때 한 4년간 고생하고, 검사 11년 할 때 10번 이상 이삿짐을 싼 조강지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 마누라는 정윤희하고 거의 빼어 닮았다"고 '팔불출' 아내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

비교적 청빈한 검사였던 홍준표의 검찰 생활 10여년은 드라마 <모래시계>에 잘 녹아 있다. 그가 <모래시계>의 주인공인 '강우석 검사'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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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영삼 정부 사정정국에서 맹활약한 <모래시계> 주인공 홍준표 검사

93년 김영삼 정부 초기에 '개혁사령탑'을 자처한 YS가 질풍노도와 같은 기세로 사정정국을 이끌 때였다. 그때 홍준표 검사는 이른바 '부패와의 전쟁'으로 미화된 사정정국의 최전선에서 부정부패와 싸웠다.

그 때문에 그는 때마침 80년대 이후 급속도로 부패한 이탈리아 정계의 부패 고리를 파헤친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운동의 기수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에 빗대어 '한국판 피에트로 검사'로 통할 정도였다. 모교인 고려대는 세계적인 마라토너 황영조 등과 함께 그에게 '자랑스런 고대인'의 영예를 안겼다.

그러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 했던가. 사냥을 할 때는 신명이 나서 날뛰다가도 사냥감이 죽고 나면 흥미를 잃은 사냥개 신세가 된 홍 검사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토끼 사냥에 흥미를 잃은 홍 검사를 스타덤에 올린 것은 <모래시계>였다.

검사 홍준표는 원래 모래시계를 기획할 때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두세번 검사실에 취재차 왔을 때만 해도 거절했다. 검사라는 것은 다소 신비감 속에 숨어 있어야 되는 직업이고, 한 검사를 영웅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평소의 지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찰의 고위 간부들은 '별로 할 일도 없는' 그에게 검찰이 정의로운 집단으로 긍정적으로 묘사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을 해주라는 권고를 했다. 홍 의원은 <모래시계>에 묘사된 스토리텔링의 절반 이상은 '논픽션'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만난 검사 출신의 정형근 안기부 차장의 손에 이끌려 안기부의 마약수사 지도검사로 파견 나갔다가 '정치공작 전문가'로 알려진 정형근 검사와 함께 96년 15대 국회에 신한국당 의원으로 입성하게 된다.

정보 판단에서 정형근은 속보성, 홍준표는 정확성 중시?

a 지난해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정형근, 홍준표 의원.

지난해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나란히 앉아있는 정형근, 홍준표 의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당 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으나 97년 선거에 의한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로 졸지에 야당 의원이 된 홍준표 의원은 정형근 의원과 함께 김대중 정부를 표적으로 한 '저격수' 혹은 '폭로 전문가'라는 악명을 떨치게 된다. 낙선한 이신범 전 의원을 대신해서 김홍업·김홍걸 비리 스캔들을 파헤치는 공격수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재선 의원인 그에게 정치적인 진로와 관련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참모들도 '폭로 전문가'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벗기 위한 전략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늘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도 정형근 의원과의 차별성이다.

정보기관(안기부)에서 오래 근무한 정형근 의원은 정보를 판단할 때 '속보성'을 최우선으로 치지만, 수사기관(검찰)에서 잔뼈가 굵은 자신은 '속보성'보다는 '정확성'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이 그의 정보를 다루는 지론이다. 그래서 큰 건이 걸리면 일단 내지르고 보는 정형근 의원과 달리 자신은 여러 곳을 찔러 이중으로 '팩트' 확인을 거치기 때문에 자신의 정보는 늘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럴 듯해 보이는 자랑이다. 그러나 그가 늘 '라이벌' 정형근 의원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은 아니다. 정형근 의원과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당내 386 세대의 공세에도 참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참고로 그는 김문수 의원과 정치적으로 가까운 사이다.

지난해 이른바 한나라당 소장파를 대표한 원희룡 의원이 한 인터넷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김문수·정형근·홍준표 의원 등 저격수는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때 정형근 의원은 원희룡 의원이 대정부 질문을 할 때는 자신한테서 자료를 받아 폭로해 한 건 잡았으면서 그럴 수가 있냐고 흥분했었다고 한다.

홍준표 의원 또한 "무늬만 386인 젊은애들이 정당활동이나 지역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언론을 상대로 '쇼잉업' 하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 같은 사람더러 수구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직인이 당과 조직이 위험할 때는 나 몰라라 하고 뒤에 숨어 있다가, 분위기가 좋아지면 언론을 상대로 플레이하는 것은 정치를 잘못 배운 무늬만 386들의 못된 버릇이다"고 지적했다.

'거대야당 한나라당'이라는 조직의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은 조직 책임자다운 '우당충정(憂黨衷情)'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때는 최병렬 대표가 힘을 실어준 그를 빗대어 "대표 위에 '준표'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았다. 김문수 의원과 함께 최병렬 대표가 제시한 '정치개혁 5대방안'을 만들어낼 만큼 개혁 마인드를 가졌다고 자처하는 그로서는 '수구'로 몰리는 것이 억울할 법도 하다.

그래서 그는 "폭로 전문가 이미지를 벗고 '전략통'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 당분간 폭로는 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당분간 폭로는 하지 않겠다"고 했던 홍준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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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제 버릇 남 못주는 양, 그는 지난해 10월 대정부질의에서 "노 대통령의 집사인 최도술 전 비서관이 부산상고 선배인 이영노씨를 통해 300억원을 받았다"고 이른바 '최도술 300억 수수설'을 폭로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로부터 세달만에 다시 또 한번의 폭로전을 펼쳤다.

홍준표 의원은 2월 5일 국회 법사위에서 노 대통령의 당선축하금이 존재한다고 폭로했다. 무려 1300억원이라고 했다. 그 돈은 '총선 투입용'일 수 있으며, 현재 자금세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이달 18일에 만기가 되는 100억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가 명동 사채시장에서 85억원에 할인판매되는 과정에서 CD 사본 한 장이 입수됐다"면서 "이를 역추적한 결과 이 자금이 K증권의 13개 계좌에 분산 은닉돼 있는 1300억원의 일부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들 계좌는 최도술·이영로씨 등과 자주 어울리는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인 모 은행 지점장이 관리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문제의 CD 사본을 증거라며 공개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김영삼 정부 시절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계좌를 흔든 박계동 전 의원의 그것처럼 헌정질서의 변화를 일으킬 초대형 폭로였다.

그러나 이 초대형 폭로극은 '1일 천하'로 막이 내렸다. 홍 의원이 제시한 CD는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홍준표와 노무현도 한때 '한 배'를 탈 뻔한 사이였다

홍 의원은 사석에서 "정치판이라는 곳이 원래 편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와선 조금 변질을 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그런 것을 보면서 상당히 서글픔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단상처럼 들린다.

그러나 홍준표 의원이 지금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건 '막가파식 올 인'의 표적으로 삼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때 '한 배'를 탈 뻔했던 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 96년 1월 25일 저녁에 홍준표 검사의 친구인 박인제 변호사는 민주당의 노무현·유인태·이철·제정구 의원 등과 함께 홍 검사가 사는 서울 개포동 주공아파트를 찾았다. '한국판 피에트로 검사'이자 '모래시계 검사'로서 그리고 '자랑스런 고대인'으로서 대중적 인기를 모은 그를 민주당에 영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개혁파 정치인들이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검사를 찾기 사흘 전에 이미 홍 검사는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문민정부에서 검사한 사람이 나하고 일해야지"하는 신한국당 입당 권유전화를 받았다. 홍 검사는 "지금 같으면 안한다고 튕기기도 하고 그럴 텐데, 그때는 검사 체질이 몸에 배어있을 때라서 대통령의 말에 무조건 '예, 예' 했다"고 털어놓았다.

a 홍준표 의원의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좋은나라닷컴'의 인터뷰 화면

홍준표 의원의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좋은나라닷컴'의 인터뷰 화면

그런 사정이 있어서인지 그날 별다른 '역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인 노무현은 홍 검사를 한 30분 정도 설득하다가 가버렸고, 제정구 의원은 "검사를 했으니 명예는 얻었고, 변호사를 하면 먹고사는데 걱정 없는데, 왜 여당을 하려고 하냐"고 끝까지 그를 설득했다. 이철과 유인태는 옆에서 술잔만 기울이다가 방바닥에 곯아 떨어져 잠만 잤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때 홍 검사가 민주당을 선택했다면 그의 인생행로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치판이라는 곳이 원래 편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와선 조금 변질을 하게 되는 것 같다"는 홍 검사의 정치 인생 8년의 경험이 맞다면, 지금의 '천·신·정' 대신에 '천·신·홍'이나 '천·정·홍' 이런 조합이 성립하지 않았을까.

또 그랬다면 홍준표 의원 휴대전화의 '황·비·홍' 뮤직벨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듣기에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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