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안아보고 싶었던 중학교 졸업장

<현장>수도고등공민학교의 마지막 졸업식

등록 2004.02.07 17:02수정 2004.02.07 21:15
0
원고료로 응원
a 7일 오전 11시. 갈월동에 위치한 수도고등공민학교에서는 마지막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식이 끝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졸업생들

7일 오전 11시. 갈월동에 위치한 수도고등공민학교에서는 마지막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식이 끝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졸업생들 ⓒ 김진석

a 유수열 교장에게 졸업장을 받는 졸업생

유수열 교장에게 졸업장을 받는 졸업생 ⓒ 김진석

“그렇게도 안아보고 싶었던 중학교 졸업장을 이 주름진 손으로 받게 되니 정말 가슴이 터질 듯 목이 멥니다. 때로는 남이 알까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고통의 신음소리조차 숨 죽여야 했던 지난날들이 있었기에 이 졸업장이 더한층 소중한 기쁨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혹은 산업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학업을 미뤄야 했던 대한민국 경제 주역의 아버지 어머니들을 위한 늦깎이 배움터. 마지막 남은 ‘고등공민학교’ 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50년대 문맹퇴치 운동의 일환으로 국가가 장려해 만들어진 고등공민학교 중 유일하게 남은 용산구 갈월동의 ‘수도고등공민학교’ 가 7일 마지막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됐다.

올해 41회 졸업식을 맞는 이 학교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에게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며 마지막 졸업생 25명을 포함해 지난 50년간 27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했다. 그간 이 학교는 특별한 지원금 없이 선친의 뒤를 이은 유수열(74) 교장, 그의 아내인 교감 차선옥(71)씨, 아들인 영어교사 유재룡(42)씨 등 9명의 교사에 의해 운영됐다.

1960년대엔 중학교 시험에 떨어진 어린 학생들이 입학을 하기도 했지만, 중학교 평준화 후로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중년의 어머님들이 주를 이뤘다. 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선 졸업 후 따로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오전 11시부터 진행된 졸업식은 졸업장을 보며 끝내 흐느끼는 어머님들의 잔 울음소리와 또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려는 건강한 웃음소리가 교차했다. 간혹 남편 몰래 혹은 자식 몰래 학교를 다닌 어떤 어머님들은 취재진을 보고 식장을 빠져나가 주위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a 딸 송병옥씨의 졸업을 축하해 주고 있는 어머니 신매옥씨

딸 송병옥씨의 졸업을 축하해 주고 있는 어머니 신매옥씨 ⓒ 김진석

오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동생들 뒷바라지와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느라 만학의 길을 선택한 송병옥(58)씨는 친정어머님을 비롯해 동생들에게 둘러싸여 가장 많은 축하인사를 받았다.


송씨는 “영어 때문에 얼마나 골머리를 썩었는지 모른다” 며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도전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싶다” 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아이들 앞에서 글씨를 써야 할 때 마다 얼마나 부끄럽고 힘들었지는 모른다” 며 “이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글을 읽으며 어디든 가고 또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됐다” 고 자신 있게 말했다.


송씨는 “자신이 공부를 통해 얻은 보람과 자신감을 사회복지사가 돼 다시 사회에 되돌려 주고 싶다” 며 “계속 공부를 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다” 고 다짐했다.

딸 송병옥씨의 졸업을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딸의 손을 꼭 잡고 안아주는 친정어머니 신매옥(83)씨는 “이젠 80평생 한을 다 풀었다” 며 기쁨의 눈물을 보였다.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아껴 송병옥씨의 학비를 전액 지원했던 신씨는 “오 남매 중 돈이 없어 맏이만 못 가르쳤는데 이제서야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한 것 같다” 며 자랑스럽다는 말을 침이 마르도록 반복했다.

교장 유수열씨는 “그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학생들의 열정과 선생님들의 정성으로 고난을 극복 할 수 있었다” 며 “비록 수도공민고등학교는 폐교되지만 평생교육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다” 고 말문을 열었다.

a

ⓒ 김진석

그는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이 찾아들었지만, 수도공민고등학교의 배움을 통해 모두들 사회에서 건강한 시민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고 자부심을 표하며 “배움을 통해 달라진 학생들을 보며 자신이 오히려 더 고마웠다” 고 전했다.

또 유씨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교육기관이 많이 생겨나야 하며 이를 위해선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 며 ”어머님들 또한 이것으로 배움을 멈춰서는 안 된다” 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교가와 작별노래를 부르며 서로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어머님들의 얼굴엔 ‘앎’ 의 기쁨으로 얻은 자신감과 또 새로운 도전에의 설렘이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다.

1960년대만 해도 서울에 58개교, 전국에 600여 개가 있었던 고등공민학교는 1970년대 후반 중학교 평준화 후 문맹률이 낮아지고 의무교육이 실시되면서 하나 둘 모습을 감췄다. 또 지난 2000년 검정고시와 3년의(고등공민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2년제 특수중학교 졸업시 바로 고등학교에 진학 할 수 있는 평생교육법이 제정되면서 학생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새 법률안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도고등공민학교마저 폐교됐지만, 바뀐 법률에 맞춰 생겨난 2년제 특수 수도중학교가 그 뒤를 이어 만학도들을 위한 성인교육을 대신 할 예정이다. 또 유 교장 부부는 이달 말 평생 성인교육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훈장을 받는다.

“계속 멈추지 말고 정진하길”
수도고등공민학교 유명인사 민종식(80) 할머니.

▲ 93년 졸업생 민종식 할머니
ⓒ2004 김진석

지난 반세기 동안 2700여 명의 학생이 수도고등공민학교를 거쳐 갔다. 그 중엔 목사가 된 주부가 있는 가하면, 어떤 이는 잘나가는 중소기업의 주역이 되기도 했고, 또 작년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민종식(80) 할머니도 있다.

90년에 수도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해 93년에 졸업한 민씨는 그 후 실업고와 방송통신대를 거쳐 경기대 사회교육원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 마침 수도고등공민학교의 졸업식이었던 7일은 민씨의 경기도 사회교육원 졸업식이기도 했다. 민씨는 졸업식에 가기 전 잠깐 짬을 내 졸업생을 대표해 마지막으로 수도고등공민학교를 찾았다.

그는 “자주 들리지는 못하지만 내 친정처럼 가까운 곳” 이라고 수도고등공민학교를 추억하며 영어와 수학을 가장 어려운 과목으로 뽑았다. 민씨는 “좋아서 하는 공부였기에 어려운 것도 힘든 것도 모르고 했다” 며 “공부해서 시험을 치는 것이 오히려 재미있고 즐거웠을 정도로 푹 빠져있었다” 고 회고했다.

국어와 국사를 가장 재미있는 과목으로 뽑았던 민씨는 “우리 것을 제대로 먼저 알고 싶어 국문학을 공부했다” 며 “한국적인 작품 세계를 지닌 조지훈 시인을 가장 좋아한다” 고 밝혔다. 그는 “늦게나마 졸업한 후배들이 정말 대견스럽다, 그 누구보다 힘든 과정을 잘 안다” 며 “그래도 끊임없이 계속 원하는 것을 향해 공부하고 두드리라” 고 격려했다.

민씨는 “배움이란 나 자신을 깨우쳐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멈춰서는 안 되는 것” 이라며 “시대와 젊은이들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정진할 것” 을 당부했다. 가족의 도움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며 이젠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민씨. 그는 앞으로 자신이 살아왔던 얘기들을 시와 수필로 풀어 갈 예정이다. / 김은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4. 4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5. 5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검찰 유도신문' 녹음 파일 통했나... "최재영 청탁금지법 기소" 결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