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실력, 열정... 라이브는 살아있다

[공연] MBC-TV 수요예술무대 500회 녹화 현장

등록 2004.02.10 20:55수정 2004.02.12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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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재즈, 팝, 가요 등 장르의 구애를 받지 않고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음악가들의 생생한 연주를 들려주는 MBC 프로그램 <수요예술무대>가 25일로 500회를 맞는다. 500회 특집방송 녹화현장에서 이현우씨와 김광민씨가 바비 맥퍼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클래식, 재즈, 팝, 가요 등 장르의 구애를 받지 않고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음악가들의 생생한 연주를 들려주는 MBC 프로그램 <수요예술무대>가 25일로 500회를 맞는다. 500회 특집방송 녹화현장에서 이현우씨와 김광민씨가 바비 맥퍼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수요예술무대는 잔잔한 중독입니다. 그 중독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가장 변하지 않는 제작진의 뚝심과 고집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한봉근 PD와 이현우, 김광민 MC의 마의3각지대에 빠지면 결코 헤어나오지 못하죠."(웃음)

MBC '수요예술무대'(아래 예술무대) 500회 특집 녹화방송 현장을 찾은 안정은(25), 김리라(22)씨의 말이다. 이들은 7년 이상 예술무대 녹화장을 찾은 마니아 중에 마니아들이다. 예술무대는 이런 열성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으며 12년 동안 꼭 500회를 채우게 됐다.


예술무대는 클래식부터 재즈, 뉴에이지, 록을 망라하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국내외 최고 음악인들의 라이브 연주로 계속해 왔다는 점에서 국내 음악 방송 중 큰 획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립싱크 위주의 국내 음악 방송 사이에서 유일하게 모든 연주를 라이브만으로 고집해 온 점과 클래식 연주 뒤 바로 헤비메틀이 이어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묘한 어울림으로 진행되는 점 등은 미스테리 아닌 미스테리다.

팬들은 이를 '잔잔한 중독'으로 표현했다. 또 500회의 공로를 '마의 3각지대'로 꼽았다.

<오마이뉴스>는 6일 한양대체육관에서 열린 예술무대 녹화현장에서 이들 3각 축을 만났다. 500회 방송은 오는 25일 자정이 넘은 12시45분에 방영된다.

12년간 오로지 라이브만 고집... PD 한봉근

12년 동안 <수요예술무대> 연출을 맡아온 한봉근 PD.
12년 동안 <수요예술무대> 연출을 맡아온 한봉근 PD.오마이뉴스 남소연
팬들이 말한 마의 3각지대에서 가장 높이 솟은 꼭지점엔 12년간 초지일관으로 예술무대를 이끌어온 한봉근(47) PD가 있다.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를 지휘하던 한 PD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감독이라면 오랜 기간동안 배우, 스탭들과 한 작품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지만 저는 매주 하나씩 만들기 때문에 500회라고 해서 특별히 소감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지금 순간은 500회 촬영을 하지만 당장 다음주엔 바로 501회를 준비해야하니까요."

한 PD에게 소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이내 말을 잇는다. "질 높으면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려주고 보여준 것은 성과라고 생각해요."


말이 500회지 시청률에 도움되지 않는 프로그램이 이렇게 장수하긴 쉽지 않았을텐데. "위에서도 시청률 상관 말고 '품질관리'에 신경쓰라고 해주셨죠. 그래서 난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소신껏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한 PD의 소신. 이날 만난 팬들과 음악인들은 그의 '밉지 않는 고집'을 높이 샀다. "12년 전 처음 시작할 땐 클래식 아니면 가요 프로그램만 있었죠. 저는 그 중간에 있는 음악들, 그러니까 재즈, 뉴에이지, 록 등을 하려고 했어요. 그러면서도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려고 했죠."

이 소신이 질 높은 예술무대를 만들 수 있던 것이다. 특히 세계 최고의 음악거장들이 예술무대에 서면서 예술무대는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외국에서 음악인들이 공연을 오면 공연장으로 달려갔어요. 안되면 호텔로 가죠. 처음엔 다 아무도 안하려 했죠. 그러다 한명 두명씩 유명음악인들이 (예술무대를) 거쳐가면서 이제는 먼저 출연하겠다는 사람들까지 생겼죠. 500회 공연에서 바비 맥퍼린의 경우 끝까지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공연이 KBS 초청으로 이뤄진데다 오늘 저녁엔 미 대사와 저녁식사 약속이 있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결국 우리 무대에 요요마, 칙코라이 등이 거쳐갔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OK 했죠. 가장 힘든 섭외였어요."(웃음)

한 PD는 "몇 년 더 프로그램이 계속됐으면 한다"는 꿈에 대해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본심은 그것만은 아닌가 보다. "야! 나 너희가 아줌마 될 때까지 할거야." 한 20대 팬에게 전한 말로 봐서는 말이다.

박정현, 마사토 혼다, 제이 워크(왼쪽부터)가 25일 <수요예술무대> 500회 특집방송에 출연해 열연한다.
박정현, 마사토 혼다, 제이 워크(왼쪽부터)가 25일 <수요예술무대> 500회 특집방송에 출연해 열연한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천편일률이 문제... 다양한 음악 소개가 중요"
한국에서 참 음악방송의 모습은 무엇일까

"솔직히 공중파 음악방송을 보면서 비참해질 때가 많아요. TV를 켜면 듣고 싶은 음악이 거의 한 곡도 나오지 않죠. 그냥 쇼가 대부분 입니다. 제작자분들이 양심을 가지고 양질의 내용을 다뤘으면 합니다."

'참 음악방송상'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김윤아씨는 위와 같이 말했다. '자우림'의 김윤아씨의 안타까움이 배어나오는 표현이다.

대부분 댄스음악과 가끔씩 흘러나오는 발라드 곡만으로 채워진 10대 지향의 음악방송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참 음악방송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김광민씨는 "우리 음반침체의 원인이 물론 mp3 등의 문제도 있지만 방송사에서 댄스음악과 발라드만 보여주고 틀어준 것도 큰 원인일 것"이라며 "다양한 음악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견은 한봉근 PD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한 PD는 "공중파 3사에서 방영하는 음악방송이 순위 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똑같은 가수에 똑같은 장르, 음악만 나온다"며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음악방송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썰렁브라더스'의 사회가 아름답다... MC 이현우·김광민

'마의 3각지대'의 또 다른 두 개의 축은 김광민(44)·이현우(38) 두 사회자다. 각각 93년과 97년부터 지금까지 사회를 맡고 있는 이들은 매주 프로를 진행해오면서 "몇 십번이나 그만두고 싶었지만 변하지 않는 구성원들의 노력과 마니아들의 격려가 혼자 그만둘 수 없게 만든다"고 입을 모은다.

<수요예술무대> 진행을 맡고 있는 이현우씨와 김광민씨. 특유의 편안한 진행방식으로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데 한몫을 톡톡이 하고 있다.
<수요예술무대> 진행을 맡고 있는 이현우씨와 김광민씨. 특유의 편안한 진행방식으로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데 한몫을 톡톡이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들은 내세우진 않지만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특히 이들의 강점은 역시 음악적 깊이에서 오는 인터뷰와 즉흥 연주라고 한 PD는 평한다. 실제로 이들은 케니 지·칙코리아·척 맨지오니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과 즉흥 연주를 선보인 바 있다.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이 왔을 때 내가 곡을 연주했더니 나중에 연구해보겠다고 연주 테입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한국을 조금 무시하는 듯 했던 음악인들도 있었지만 우리와 연주한 뒤 '미안하다'고 한 적도 있어요. 우리 프로가 국위선양 많이 했어요." (김광민)

"사실 예술무대에서는 가요, 클래식, 재즈 등 여러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70·80년대였다면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우리나라 방송 중 라이브하는 프로가 없기 때문에 라이브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현우)

이러한 문제의식은 질 높은 음악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예술무대의 백미는 '썰렁 브라더스'라고 불리는 어눌한 사회다. 500회를 녹화하는 이날도 이들의 어눌한 표현이 빛을 발했다.

"어! 지금 약간… 나오기로 했던… 그게 아닌가? 다른 분이 나오시기로 했는데… 뒤죽박죽 됐네요. 원래 굉장히 매끄러운데…" (이씨가 공연 중간 순서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한동안 공연이 끊기자 관객들에게 한 말)
"그게 아니고 원래 뒤에 나오기로 했던 분이 앞에 나오기로 해서 그래요." (김씨)
"헷갈린다! 허허" (이씨)

이씨는 "우리 프로는 버라이어티 쇼가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출연자가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며 "사회를 위해 특별히 연습하진 않는다, 평소 모습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진행해왔던 만큼 기억남는 일도 많을 터. 김씨는 "초기엔 겨울에도 스팀이 나오지 않아 언 손으로 피아노 칠 때 너무 힘들었다, 너무 손이 시리면 조명에 손을 녹인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특별히 기억 남는 장면보다 예전과 비교해 관객들이 늘어나는 걸 보고 기뻤다"고 특유의 미소를 띄며 말했다.

이미 다수의 국내 팬을 확보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가 25일 방송에서 생생한 연주를 들려준다.
이미 다수의 국내 팬을 확보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가 25일 방송에서 생생한 연주를 들려준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예술무대의 완성... 음악인들과 팬들

무대에 선 제이 워크가 팬들의 열광을 받으며 마이크를 뽑아 들고 있다.
무대에 선 제이 워크가 팬들의 열광을 받으며 마이크를 뽑아 들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마의 3각지대'가 프로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면 그 속과 겉을 꽉 채워온 요소가 있으니 바로 출연 음악인들과 팬들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이날 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던 유키 구라모토·김윤아·박정현씨는 모두 외국 채류중이었는데, 이 공연만을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예술무대에만 30회 가량 출연했다는 '자우림'의 김윤아씨는 "내가 이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했던 이유는 아마 제작진과 내가 모두 '음악 팬'으로 음악을 대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이는 음악한다고 소위 고집을 가지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아닌 겸손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정현씨는 "밤늦게 방송되지만 팬들이 찾아주시는 것을 보고 음악찾는 사람들이 많구나 느꼈다"며 "세계 최고의 출연진들로 인해 나올 때마다 음악적으로 도전이 된다"고 예술무대를 높이 평가했다.

이날 500회 공연 무대에 섰던 배철수씨는 "우리가 '예술' 하면 따분·지루·어려움 등을 떠올리지만, 예술무대의 장점은 '예술'자가 붙었지만 예술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까지 도입한 중간에서 중용을 지키고 있다"며 "방송 시간과 우직스럽게 중심 지키고 있는 제작진들의 고집이 통한 결과"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녹화방송을 찾은 한 팬은 "예술무대는 제작진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연주자들을 위한 방송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배려가 지금까지 오게 된 원동력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토요→금요 거쳐 수요예술무대로 정착되기까지

1992년 `일요예술무대'란 이름으로 출발한 예술무대는 12년 동안 꾸준히 방송되면서 국내외 정상급 라이브 뮤지션들이 무대를 꾸며 왔다. 초창기에 재즈 마니아를 중심으로 알려진 이 프로그램은 라이브 음악을 지향하면서 관객과 뮤지션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내한한 세계적 뮤지션들이 거쳐가는 무대로 알려지면서 브라이언 맥나이트, 미스터 빅, 스콜피온스, 리처드 막스, 마이클 런스투록 등 팝 뮤지션과 허비 행콕, 케니 G, 밥 제임스, 칙 코리아, 맨해튼 트랜스퍼, 래리 칼튼, 바비 맥퍼린 등 재즈뮤지션, 클래식 뮤지션으로는 조수미, 신영옥, 홍혜경, 베를린필, 이무지치, 사라 브라이트만, 임형주, 이루마, 유키 구라모토 등이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다양한 구성보다 단조로운 정통 라이브 음악을 추구하다 보니 낮은 시청률로 편성상 요일 및 시간대를 옮겨다니기 일쑤였다. 1992년 '일요예술무대'에서 94년 2월 '토요예술무대', 95년 10월 다시 '일요예술무대'로, 96년 10월 '토요예술무대', 97년 7월 '금요예술무대', 98년 2월 '일요예술무대' 등 개편 때마다 요일을 바꾼 뒤 1998년 가을 개편에서 지금의 '수요예술무대'로 고정 편성됐다. 그러나 밤 12시45분이라는 너무 늦은 시간대에 방송됨으로써 여전히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낳고 있는 실정이다.

진행자로는 초대 MC 한선교가 진행할 때 `재즈 교실' 코너의 진행자로 나섰던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93년 10월부터 메인 MC를 맡았다. 정은임, 윤석화, 노영심 등이 공동진행자로 거쳐간 뒤 가끔 해외 뮤지션의 통역을 맡아오던 가수 이현우가 1997년부터 합류했다.

덧붙이는 글 | 498회보다 먼저 녹화된 500회

사실 수요예술무대는 지금까지 497회 방영됐다. 11일엔 498회가 방송돼야 한다. 그런데 500회가 녹화된 6일까지 498회와 499회는 녹화조차 못했다.

500회를 먼저 녹화했던 까닭은 유명 음악인들의 스케줄에 맞추려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제작진의 변이다. 엄격히 말해 6일 취재했던 500회 공연은 497회였다.

498회와 499회는 10일 고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다.

덧붙이는 글 498회보다 먼저 녹화된 500회

사실 수요예술무대는 지금까지 497회 방영됐다. 11일엔 498회가 방송돼야 한다. 그런데 500회가 녹화된 6일까지 498회와 499회는 녹화조차 못했다.

500회를 먼저 녹화했던 까닭은 유명 음악인들의 스케줄에 맞추려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제작진의 변이다. 엄격히 말해 6일 취재했던 500회 공연은 497회였다.

498회와 499회는 10일 고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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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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