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아이들에게 ‘방 세 놓습니다’

[인터뷰]배움의 길 열어주는 박훈, 최연식 부부

등록 2004.02.16 13:51수정 2004.02.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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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손 가정 아이들의 집.
결손 가정 아이들의 집.이수정
수십 년을 결손가정 아이들의 부모가 돼 준 사람이 있다. 자신의 평생을 공직에 바쳐 받은 퇴직금으로 ‘베다니의 집(부자원)’을 구입,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 박훈(64), 최연식(63)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베다니의 집’은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의식주 제공과 함께 학업도 지속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직과 가정 파괴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고 알코올에 의지해 살아왔던 ‘아버지’에겐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제적 여건이 따르지 않아 아이를 데리고 생활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녀들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다.

이들 부부가 방황하는 아이들의 부모가 되기로 마음먹은 때는 10여년 전, ‘공부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최씨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 그는 “어린시절 넉넉한 살림에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공부는 다 때가 있는 것인데, 아버지가 술과 노름에 손을 대면서 그 ‘때’를 놓치고야 말았다”며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은 삶의 기반을 이루고 생활했던 부부에게 “가정 환경이 여의치 않은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래서 처음 한 것이 ‘방 세 놓습니다’라는 광고지를 동네 곳곳에 붙이는 일이었다. 조그만 가정집 방에 들어와 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분명 집을 나온 청소년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초기, 같이 생활하게 된 아이들은 머리가 굵직하게 커버린 중학교 청소년들이었다.

아이의 방.
아이의 방.이수정
“처음에 온 아이들은 저희와 같이 사는 것을 버텨내지 못했어요. 옳지 않은 것을 고쳐주려 하면 오히려 언성을 높이고 집을 뛰쳐나갔지요. 동네에서는 널어놓은 옷가지들이 없어졌다고 아이들에게 눈총을 주는 일도 많았지만 그때 그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사랑을 베풀지 않은 것이 마음의 짐이 돼 왔습니다.”

좋지 않은 생활 습관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어두운 길로 들어서기 전에 이를 방지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부는 복지재단과 연계해 지난 99년부터 가정 의탁을 시작했다. 부모가 없어 불행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열등의식을 갖지 않고 공부에 열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부부는 친자식에게 정성을 쏟듯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렇게 시작된 부부의 선행은 8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했다. 초등학생이 6명,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가 2명이다.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뒷바라지하는 것도 부부의 몫이 됐다.

생활 계획표가 붙어있는 문.
생활 계획표가 붙어있는 문.이수정
보호자가 있어 동사무소로부터 학비 지원이 안 되는 경우에는 후원금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커나가는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가르치기에는 부족하기만 하다. 이에 지난 97년부터는 건강원을 차려 여기서 나온 수익금으로 아이들의 학비를 보태고 있다.


“공부는 때가 있다고 하지요. 공부는 하고 싶은데 가정 환경이 좋지 못해 지속할 수 없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자신의 주변 환경은 불행하지만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 비록 부모님은 없지만 ‘나의 할 도리를 다하면 남에게 뒤처지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요.”

부모가 자식을 키우듯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주려 노력하는 이들 부부의 모습은 인자하고도 엄한 부모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를 땐 매를 들기도 한다. ‘매를 맞아도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는 성경 구절을 읽어주며 잘잘못을 가리는 가운데, 아이들은 어느덧 자신의 잘못을 깨우쳐 나간다.

“저희와 함께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아버지와 살다 온 경우가 많아요. 집을 나간 엄마와 알코올에 의지해 살아가는 아버지에게는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으면서 학교도 제대로 보내지 않기 마련입니다. 학교에 가야한다고 하면 ‘그까짓 공부, 해서 뭘 하냐’는 식이다 보니, 결국 결석률이 높아지고 그러다 자연히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집걸러 나란히 있는 건강원과 베다니의 집.
한집걸러 나란히 있는 건강원과 베다니의 집.이수정
10여년, 아이들을 돌봐 온 생활 속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조카들을 나라도 돌보겠다’며 찾아오는 친척을 만났을 때와 마냥 어린 아이인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어느덧 예쁘게 자라난 모습을 볼 때다.

“중학교 3학년인 아이가 있어요. 3년 전, 큰아버지가 찾아와 데리고 가서 잘 생활을 했지요. 그 아이가 2월 11일에 졸업을 한다니 기특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저희 집에 와 지금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가 있어요. 처음엔 안 좋은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고생도 했지만 어느덧 예쁜 소녀가 돼 있는 모습을 보니 이것이 사는 보람인 것 같아요.”

이들 부부의 집과 ‘베다니의 집’에는 모두 20여개의 방이 있다. 그 방에서 공부할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부의 모습이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듯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이나마 필요한 아이들에게 베풀고 싶어 시작한 일이에요. 아이들 속에서 소망을 찾고 행복을 찾으니. 이 아이들이 저희에게 선물인 셈입니다.”

덧붙이는 글 |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행복한 소식만 전하는 인터넷 신문, 해피인(www.happyi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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