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87

화벽의 주인 (5)

등록 2004.02.16 13:59수정 2004.02.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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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철기린은 반안에 비교될 만큼 준수했지만 무언공자는 그 정도는 못되었다. 그렇지만 서글서글한 눈매와 선한 눈빛을 지녀 왠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는 얼굴이었다.

이회옥은 무언공자를 바라보는 동안 그의 기도를 느낄 수 있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이회옥은 무언공자가 알려진 것보다 더 강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가 고수들은 무공을 익히면 익힐수록 태양혈(太陽穴)이 불룩 솟아오른다.

그러나 어느 경지를 넘어서게 되면 그때부터는 솟아올랐던 것이 가라앉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범인(凡人)과 같이 편평해진다.

이는 눈빛도 마찬가지이다. 무공을 익히면 익힐수록 형형해지는 데 태양혈이 가라앉으면 눈빛 또한 가라앉아 절정에 이르면 마치 억겁 동안 고요하던 호수의 수면처럼 담담해진다.

이때부터 타인을 압도하는 기도를 뿜어내게 되는데 내공이 심후하면 심후할수록 그 기도는 더욱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어느 경지를 넘어서게 되면 이 역시 스르르 사라지게 된다. 그때부터는 원할 때에만 기도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무언공자는 눈빛이 형형하지도, 태양혈이 불룩 솟지도 않았다.

무림제일방파인 무림천자성 성주의 아들인 그는 결코 범인일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좋다는 것을 수없이 복용하였을 것이고, 수많은 무공교두들이 저마다의 수법을 전수해주지 못해 안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수의 반열에 들기는 하는데 어느 정도인지는 좀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회옥은 눈에 무엇이 묻었는가 싶어 잠시 비벼보았다. 화벽을 살펴보고 있는 무언공자의 몸 주위 삼 촌 가량이 온통 아지랑이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듯 보였기 때문이다.

‘헉! 저, 저건…? 호신강기(護身罡氣)…!’

호신강기란 내공이 극에 이른 고수나 시전할 수 있는 것으로 외부에서의 공격이 있을 때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체내에 축적되어 있던 기(氣)가 저절로 격발하며 반응하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는 반탄강기(返彈罡氣)라고도 하는데 받은 공격을 더욱 강력하게 퉁겨내기 때문이다. 이는 공격하는 자가 실어 보낸 공력에 자신의 공력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단한 방비 없이 공격하였다면 거꾸로 횡액(橫厄)을 당하게 된다.

“핫핫! 그놈 참 마음에 든다. 화벽이라고 했지? 핫핫핫!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알았지?”

화벽을 요모조모를 살핀 뒤 부드럽게 두들기던 무언공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회옥을 바라보았다.

“내, 말 보는 눈이 있지만 이놈처럼 마음에 드는 놈은 처음이다. 핫핫! 본좌의 마음이 변했다. 이놈을 아주 가져도 되겠느냐?”
“예…?”

“핫핫! 놀라긴 뭘 그리 놀라는가? 이놈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한번 타봐도 되겠지?”
“예? 아, 예에…”

“핫핫! 이럇! 한번 달려보자꾸나. 이럇! 이럇!”
히히히히히히힝!
다가닥! 다가닥! 두구둑! 두구둑! 두둑! 두두두두두두…!

무언공자를 태운 화벽은 마치 잔뜩 잡아 당겼다가 놓아버린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그리고는 앞을 가로막고 있던 철마당의 높은 석벽을 훌쩍 뛰어 넘어 버렸다.

대완구라 할지라도 높이가 일장이 넘는 석벽을 뛰어 넘는 놈은 거의 없다. 그런데 화벽은 아주 쉽게, 마치 날개 달린 천마처럼 그렇게 훌쩍 넘어갔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말인지 충분히 짐작 갈만한 일이다.

어쨌거나 힘찬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잠시 후 그 소리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 정도로 희미해졌다. 벌써 엄청난 거리를 달려간 것일 것이다.

반각 정도 멍한 표정으로 미동도 않던 이회옥의 입가에서 시작된 작은 미소는 이내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핫핫! 녀석,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났군. 그래! 무언공자라면 네놈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고 말고. 아암! 핫핫핫!”

검이 악인의 손에 쥐어지면 세상을 도탄에 잠기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장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만든 검이 작게는 인명을 구하고, 크게는 세상을 구하고 활검(活劍)이 되기를 바란다.

말을 조련하는 조련사들은 애지중지 키워낸 말이 어떻게 사용되는가 보다 얼마나 아껴주는 주인을 만나는가에 관심이 더 많다. 그래서 몰인정한 고관대작보다 차라리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말을 대하는 천민이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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