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어 따스했던 우리의 겨울

졸업특집 포토에세이(2)

등록 2004.02.18 10:44수정 2004.02.1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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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건데 고딩인 우리에게 있어 교실은 참으로 차가운 공간이었다. 온기조차 통하지 않을 콘크리트 바닥과 썰렁하기 그지없는 공기가 맴도는 벽들. 겨울이면 유난히 많다고 느껴지는 창들. 교실에서 축구하다가 깬 얇은 유리창의 공백이 우리에겐 그리도 크게 느껴졌다.

아마도 교실에서 느낀 차가움은 옛날과 크게 변하지 않았을 교실환경의 열악함의 다른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이런 우리에게도 구세주는 있었다. 교실전체가 훈훈해 지는 것도 아니고,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은 비록 많은 덕을 느끼지 못했을지언정, 반 뒤 벽에 붙어있는 가스난로 두 기는 그나마 우리에게 위안을 주었다. 난로만 있다면 비록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뿐이지만 우리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온기는 아무 때나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알뜰살뜰한 학교 운영을 위해, 학교 측에서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을 때만 난로를 틀어주겠노라고 선언했던 것.

겨울이 다가오는 길목이었다. 아무리 겨울이라고 해도 기온이 당장 영하가 될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확실히 날씨는 차갑게만 느껴졌고 체감온도는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우리는 야간 자율학습을 했고 학교에서 거의 모든 일과를 보냈다. 그랬기에 추운 교실에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외치곤 했다.

“추워!”

단말마의 비명에 손과 발까지 비벼보았지만 그뿐, 추위는 가실 줄을 몰랐다. 아쉽게도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켠 텔레비전 속 일기예보는 아직 영하를 알리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참다못해 난로 아닌 다른 방책을 찾기로 했다. 공부로 바빴던 고3시절이었기에 단체 활동을 통해 우리가 춥다는 사실을 사회여론으로 환기시킬 수는 없었고, 단지 지극히 개별적인 방법을 찾았을 뿐이었다.

서강훈
그런데 그 지극히 개별적인 방법은 탐미적이지 못했을 뿐더러,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어느 날, 우리 반의 모범생 L군은 매우 특이한 점퍼 하나를 껴입고 학교에 왔다. 재질은 곰돌이 인형의 그것이라 할 만큼 보드라웠고, 색깔은 어린 아이들이 좋아할 만큼 연하고 밝은 푸른색이었다.


친구들은 L군의 점퍼를 보고는 유아적이라며 놀려댔다. 그러나 이에 L군은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오히려 따뜻하다며 입어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추운데 이거라도 어디냐?”

L군은 야외에 나갈 때, 특히 급식을 먹으러 나갈 때면 점퍼 뒤에 달린 모자도 뒤집어썼다. 그 품행이 영락없는 '도신사'여서 많은 아이들의 웃음을 샀다.

L군이 이상하지만 따뜻한 점퍼로 그때의 추위를 견뎠다면, 또 다른 친구는 여자 친구가 선물했다고 주장하는 벙어리장갑으로 추위를 견뎠다. 그네의 우락부락(?)한 남성성과 대비되는 깜찍하기 그지없는 벙어리장갑. 친구들은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그러나 어쩌랴, 그 친구는 따뜻해서 좋기만 하다고 했다.

서강훈
이들이 남들이 시도하지 못한 색다른 모습으로 월동준비를 했다면, 다른 친구의 경우는 매우 복고적이며 실속이 있었다. 그 다른 한 친구는 학교에 내복을 입고 왔으며 자신이 제일 따뜻할 것이라며 우리에게 자랑해 보였다. 우리들은 그 친구의 내복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야!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내복이냐? 근데 어떻게 이걸 입고 학교 올 생각을 했냐?”

“뭐 어떠냐. 추운데 그런 걸 따지고 앉아 있냐? 어떤 신문 보니까 내복 입으면 난방비까지 절약된다더라. 이게 얼마나 따뜻한데.”

“어릴 땐 나도 저런 것 입었는데 왠지 크면서 싫어지더라. 근데 추우니까 나도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야겠다.”

서강훈
오랜만에 본 내복이 너무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점점 자라면서 우리네가 모양새를 찾는다며 외면했던 내복이 결국에는 고3교실에서 부활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초겨울을 그렇게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차 날씨는 더 추워졌고 수은주가 친절히(?)도 영하로 내려가 주었다. 이에 교실엔 난로 맞을 채비로 분주해졌다. 과연 수위아저씨는 우리 반 난로에 가스를 공급해 주실 것인가.

“난로 좀 틀어봐. 옆 반에는 가스 들어온다더라.”

“어, 이상한데……. 아! 됐다. 난로 들어와.”

“아싸! 난로다. 이제 우린 따뜻하게 살 수 있어.”

서강훈
미소가 절로 묻어나는 순간, 반 친구들의 얼굴에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대학입시로 찌들었을 그 순간일 텐데 지금 보니 해맑기만 한 표정이다.

우리 스스로 대학입시로 인해 경쟁만 하지 않게 된다면, 그래서 심각한 표정을 많이 짓지 않게 된다면 고딩들은 아직 순수하기만 해서 매양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는 어딜 가나 추위에 떨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집에는 따뜻한 구들장이 있고, 최신식 재수학원은 온풍기와 명문대에 대한 학구열이 있고, 친구들과 PC방에 가도 온열기가 다 있는 판이니 더이상 떨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때의 불가피한 상황으로 하여금 추위에 떨었던 순간을 생각하며, 카메라 폰 사진 몇 장을 볼 뿐이다.
‘그땐 참 추웠는데.’

그래도 당신들과 같이 떨었던 그때가 나는 그립소. 떨긴 떨었으되, 함께 있어 서로의 온기로 그나마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고등학교와, 즐거운 고딩일기의 졸업

안녕하세요. 서강훈입니다. 저의 ‘즐거운 고딩일기’는 이번 기사를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사를 씀에 앞서, 저는 많지 않은 나의 글들과 치기 어렸던 기억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단 한 가지, 마음속에서 울리는 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구나.’

나의 이름을 달고, 내 코너에서 주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점, 다른 분들께서 어찌 여기실지는 모르지만 저에게는 사실 커다란 자랑거리였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모습을 인식해 가는 나이에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것, 자부심을 느낄 만큼 뿌듯한 일이었으니까요.

또한 비록 온라인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였지만, 글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통해 친구 같은, 선생님 같은, 부모님 같은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단 점도 저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내 학창시절의 자취를 거두어, 부족하게나마, 단편적이나마 남길 수 있었다는 것도 감사할 유산입니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연재를 무사히 끝마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일 것입니다. 난필인 주제에, 불안하고, 단지 고등학생이었던 저입니다.

스스로 연재를 시작함에 앞서서 사실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도중에 하차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소재가 떨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많은 생각을 할수록 스스로 부담만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알고서, 그저 내가 가장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글로 쓰자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나의 삶의 진행과 함께 계속되어온 고딩일기, 그 짧은 호흡을 내쉬었다는 것 자체는 분명 행복한 일입니다.

행복감을 느꼈으니,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고딩일기의 연재 마칠 때까지 지면을 할애해 주신 오마이뉴스 편집진분들께 우선적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원래는 매주 기사를 올려야 하는데 타성에 젖은 생활과 개인의 나태로 많은 기사를 올리지 못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오타도 많았으며 호흡이 유난히 짧은 글을 재밌게 읽어주시고 가끔 쪽지와 전자메일로 격려해 주신 독자 분들께도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렇듯 감사와 행복의 인사를 전하면서 마지막으로 특히, 고딩독자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분명, 학교 생활은 어쩌면 투쟁적인 생활로 비칠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고등학교 생활. 세상에 대한 관심보다, 사회에서 나의 입지가 어떤가에 대한 고민보다, 내 자신의 일에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 못지않게 중요한 것, 그것은 현재라는 이름입니다. 현재 학교라는 공간은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구습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을 교칙이라는 이름의 통제, 추락해 가는 공교육의 신뢰, 대학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교육풍토 등등.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면서 이러한 말들을 실감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당장 현재 학교의 문제 상황을 학생으로서 어떻게 해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사회 인식적으로 고등학생은 미래를 준비해야 하며 단지 품행이 바라야 할 통제된 존재니까요. 그러나 적어도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점이라면, 그 상황에 대한 문제인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세상에 언젠가는 나아가야 할 것이라면, 사회 속에서 고등학생으로서의 나의 자리는 무엇인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나라는 자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면 또한 내가 속한 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일은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너무도 부족했기에 이런 원론적인 말로 후배님들께 글을 올리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모자랐던 저를 대신해서 고등학교에 대한 사회 여론의 끊임없는 환기와 교육문제에 대한 인식, 스스로의 목소리 내기를 후배님들께서 계속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고딩이 아닌 제가, 후배님들께 드리는 당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학교를 졸업했듯, 이제는 즐거운 고딩일기를 졸업해야 합니다. 짧은 호흡을 마치며, 다시 한번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졸업생 서강훈 올림. / 서강훈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신문 하니리포터와 아크로넷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인터넷신문 하니리포터와 아크로넷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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