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社史) 말고 본지 지면에 '친일' 보도하라

[데스크일기] <조선> 창간 84주년 기념호 지면을 기대한다

등록 2004.02.19 22:43수정 2004.08.0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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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일보> 19일자 A30면에 실린 '조선데스크'

<조선일보> 19일자 A30면에 실린 '조선데스크' ⓒ 조선일보 PDF


지난해 연말 이후 친일문제가 사회적 논제로 떠올랐다. 바로 그 논란의 한 대상이랄 수 있는 <조선일보>가 최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허둥대는 모습이다.

어제(18일)는 보통의 경우 3.1절이나 8.15 광복절 무렵에나 내놓기 십상인 일제당시의 기록사진 몇 점을 난데없이 1면에서부터 장식하더니 오늘은 17일 MBC 'PD수첩'에서 조선일보와 전 사주 방응모가 친일행각을 한 것을 방영한 것을 한 차장급 기자의 칼럼을 통해 반격하고 나섰다.

칼럼의 요지는 'PD수첩'에서 마치 조선일보가 과거의 '친일'을 숨겨온 것처럼 보도했는데 사실은 사사(社史)에 그런 내용이 기록돼 있으며, 특히 항일기사도 많은데 유독 친일기사를 집중 보도한 것은 균형상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조선>의 궁색한 반론...이제 '민족지' 간판 내려라

조선일보로서야 어쩔 수 없었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 반론이 궁색하고 딱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다만 그동안 단 한번도 인정하지 않던 친일문제를 사사(社史)에 그런 내용이 실려 있다며 친일사실을 비로소 인정한 점은 주목할만 하다.

그러나 그를 두고 잘못됐다는 식의 사과성 문귀는 단 한 마디도 없고 끝까지 '식민지 언론이 강압에 의한 편집'이라거나 '어두웠던 시절'의 얘기라고 둘러대고 있다. 종래에 해오던 방식 그대로다.

<조선>의 반박 칼럼을 보면서 드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그간의 그리도 대단하던 '민족지' 기세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점이다. 그간 조선은 동아일보와 '민족지 논쟁'을 벌일 정도로 스스로를 민족지라고 자랑해 왔었다. 매년 3월 1일 창간일이면 <조선>은 항일성 기사를 앞세워 민족지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었다.


그러나 이번에 <조선데스크> 내용에 따르면, <조선>은 일제말기 일제의 한민족 탄압이 극한상황에 달했을 때 '친일적인 기사'를 보도했다고 한다. 이 정도라도 '친일'을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조선일보는 민족지 간판을 내리기 바란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일반인들이 구해서 보기 어려운 사사에나 기록하지 말고 본지 지면에 큼직하게 보도하기 바란다. 그러니 친일기록을 감춘다는 얘기를 듣는 것 아닌가.


자사 이해관계 매몰돼 독자 알권리 무시하지 말라

그리고 이런 회사의 명예가 달린, 보기 나름으로는 명운이 걸린 사안을 일개 차장급 기자의 칼럼으로 대꾸하지 말고 논설실장이나 주필 등 좀더 책임있는 필진의 이름으로나 아니면 사고(社告) 형식으로 정식으로 대답하기 바란다. 그러니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이왕 시작한 글이니 한 마디 덧붙이겠다.

<조선일보>가 자사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독자들의 알권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최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비 5억원을 11일만에 모금한 것은 분명 뉴스감인데 유독 조선일보만 독자들에게 이를 숨긴 것은 <조선>이 독자들을 무시하고 기만한 행위가 아닌가.

다시 한 마디 덧붙인다면 이런 식의 보도는 다시 없기 바란다.

지난 2001년 2월 한 소장 역사학자가 좌옹 윤치호가 1916-43년 사이에 쓴 영문일기를 모아 '윤치호 일기'를 펴낸 바 있다. 윤치호는 개화기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창기에는 독립협회 회장을 맡는 등 민족진영에 섰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후 그는 '친일파의 대부'로 불릴 정도로 추악한 친일파로 변절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관련기사를 보도하면서 윤치호에 대해 "구한말 일본 중국 미국에서 유학하고, 독립협회·대한자강회 회장을 지낸 계몽운동가이자 일제시대 YMCA운동 지도자로 기독교계 최고 원로"(조선일보, 2001.2.13)라는 식으로만 보도했을 뿐 그의 부끄러운 면, 즉 친일행각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3일 뒤에 보도된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조선> 기사가 얼마나 편향되고 나쁜 보도인지 알 수 있다. <연합>은 윤치호의 영문일기가 "친일파라는 점 때문에 그의 일기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지만 '백범일지'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평가하면서도 "80년을 사는 동안 이른바 '근대적 지식인' 윤치호는 한민족에 너무도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고 적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방상훈 사장의 부인이 윤치호의 손녀라는 걸 안다. 윤치호에 대한 보도가 그래서 뒤틀렸다는 식의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이런 걸 제대로 보도하기 바란다.

조만간 선보일 조선일보 창간 84주년 기념호 지면이 기다려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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