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훈 사장 "<조선> 친일행적 공개하겠다"

<기자협회보> 인터뷰서... "노 대통령과 흉금 터놓고 싶다"

등록 2004.03.03 11:37수정 2004.03.0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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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훈 사장의 인터뷰가 실린 <기자협회보> 3일자.
방상훈 사장의 인터뷰가 실린 <기자협회보> 3일자.오마이뉴스 신미희

"조선일보의 친일행적 등에 대해 추가로 공개할 것이다. 연구결과는 우리가 평가하지 말고, 보는 사람이 직접 평가하게 할 것이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자사의 친일행적 공개 방침을 밝혔다. 방 사장은 2일 한국기자협회 기관지인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빠르면 상반기 중 창업주인 방응모씨의 친일행적 등을 조사·연구한 자료집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조선총독부 경찰비밀감찰기록 등 2000페이지 분량의 문건을 입수해 자사 관련 기록을 번역, 연구해왔다고 기자협회보는 전했다. 기자협회보는 "조선일보는 2000년 8월 발간된 <조선일보 80년社史>에서 친일 부분을 있는 그대로 실었음에도 시비가 일자, 더욱 철저히 연구해 자발적으로 공개할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방 사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지나가는 과거에 집착하면 발전이 없다"며 "누구든지 판단할 수 있게 일제시대 친일과 관련된 부분을 조사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전부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 사장은 이에 대해 "조선일보 전체 역사를 놓고 연구한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다"는 점을 전제하고 "특정 세력이 부분의 역사만 재단하지 말 것"을 주문해 눈길을 끈다.

"(아들)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일 테고"
수습기자인 아들에 대해 언급...몇차례 수정요해

<기자협회보>의 방상훈 사장 인터뷰는 2일 오전 10시 조선일보 6층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이번 인터뷰는 오는 5일로 조선일보가 창간 84주년을 맞는 것을 기념해 이뤄졌다고 기자협회보는 밝혔다.

기자협회보는 방 사장이 친일문제 등 다소 껄끄러운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을 하는 등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4대에 걸친 '신문가업'에 대한 중압감 때문인지 현재 수습기자로 일하고 있는 아들 문제에 대한 언급은 몇 차례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방 사장은 아들 방준오씨가 수습기자로 뛰고 있는 것에 대해 부담이 없느냐는 질문에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 일테고..."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어 방 사장은 "다만 그 아이가 기자가 얼마나 어려운 직업인지 현장에서 맞부딪히면서 직접 몸과 머리로 경험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아직까지 본인이 특별히 힘들다는 이야기는 안했다"고 말했다.
방 사장은 "<조선일보 80년社史>에도 나와 있듯 증조 할아버지 행적에 대해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있다"며 "그러나 계초께서는 일제 치하에서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으며 백범 선생이 만든 한독당에서 중앙상무위원을 맡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조선의 친일행적 공개선언은 처음

조선일보가 자사와 관련한 친일행적 공개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2일 국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친일진상규명법)이 통과되는 등 친일청산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는 배경과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그동안 언론계를 포함한 사회 각계에서는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조선일보의 반성을 줄기차게 촉구해왔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신문이자 대표적인 '친일언론'으로 평가되고 있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지금껏 친일청산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친일청산 공개 선언이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들어 조선일보가 자사 지면이나 사보, 노보 등을 통해 이에 대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밝혀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일보 19일자 '조선데스크' 칼럼이 꼽힌다.

진성호 사회부 차장대우가 < MBC 'PD수첩' 제작진에게 >라는 제목으로 쓴 이날 칼럼은 조선, 동아일보의 친일행적을 다룬 'PD수첩'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진 차장은 "식민지 언론이 강압에 의해 한 편집이긴 하지만 조선일보 기자로선 부끄럽고도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며 본지에서는 처음으로 조선일보 친일을 시인했다.

더불어 진 차장은 "조선일보 사사는 항일논조로 압수·폐간당하던 자랑스런 민족언론으로서 역사와 함께 어두웠던 시절 역시 숨기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며 "일제하 조선일보의 모든 지면도 누구에게나 읽어볼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게다가 조선일보가 일제말기 일제의 한민족 탄압이 극한 상황에 달했을 때 친일적인 기사를 보도했던 것,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연구는 이미 수없이 나와 있다"면서 "우리가 뭘 감추었다는 것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어 이선민 문화부 차장대우는 지난 27일자 <조선노보>에서 '다시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 서자'라는 제목의 특별기고를 통해 "민족사를 돌이켜볼 때 터무니없고 억울한 적도 있으나 거추장스러운 혹들을 하나씩 떼어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과 흉금 터놓고 싶다"

방 사장은 또 참여정부의 언론정책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다소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며 과거와 같은 정부의 직접적인 언론탄압이 거의 없어졌다고 평가했다. 방 사장은 "우리를 보듬는 게 국민들에게도 좋다, 진솔하게 흉금을 터놓는 자리가 있으면 한다"며 노 대통령과 만날 의향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방 사장은 노 대통령과의 만남에 '독대'를 뜻하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방 사장은 "사실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면 사진 찍고 배석자 없이 우리가 본 것을 말하고 그분의 말을 듣고 해야 한다, 속내들 드러내고 이야기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경제에 치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와 일부 언론의 지나친 긴장관계를 조성한 책임은 정부에 있으며 정부·권력기관의 대언론소송은 넓은 의미의 언론탄압이라고 방 사장은 주장했다. 방 사장은 "노 대통령이 최근 언론에 대해 조금씩 태도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게 진심이라면 그것을 계기로 서로 피곤한 긴장관계를 풀고, 밝고 건강한 관계로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언론의 소금과 빛 기능에 정부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특히 "신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TV매체들, 절대 다수의 신문, 각종 인터넷매체의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는 정권이 '언론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너무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게 방 사장의 생각이다.

물론 방 사장도 언론의 자성을 함께 언급했다. "국민과 국민 개개인의 권익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하고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해서도 안될 것"이라고 말한 방 사장은 "만약 잘못된 기사를 썼다면 과감하게 오보를 정정하고 사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중동이 먼저 '과열판촉 말자'는 공동선언을 하자"

방 사장은 신문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판매시장의 혼탁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방 사장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조중동'이 먼저 "과열판촉을 하지 말자"는 공동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 방 사장은 "정부 주도의 신문판매시장 정상화는 마찰과 실패를 낳을 수 있다"며 "조중동이 사주나 경영진끼리 믿음을 갖고 공동선언을 한 뒤 실천에 옮긴다면 신문판매 풍토가 현저히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방 사장은 최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주도하는 구독료 인하경쟁이 신문의 장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구독료 인하를 먼저 시도한 중앙일보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방 사장은 "신문 값이 종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신문이나 지방신문들은 경영에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게 불 보듯 뻔하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구독료 인하로 인해 작은 규모의 신문이나 지방신문이 더욱 위축될 경우 중앙과 지방언론의 균형적인 성장 및 의견의 다양성 확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 방 사장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있는 우리도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라는 심경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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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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