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89

화벽의 주인 (7)

등록 2004.02.20 14:13수정 2004.02.2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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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가 불편하거나 꿈자리가 뒤숭숭하면 자고도 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운공을 하면 이런 경우가 전혀 없다.

게다가 미처 깨우치지 못한 무리(武理)를 터득하기에 더 없이 좋았다. 운기 과정에서 신체 내부를 관조(觀照)하듯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태극일기공이라는 희대의 심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런 과정을 거침으로 해서 직접 봉을 잡고 수련을 하지 않아도 매일 매일 수련한 것과 같이 이회옥의 봉술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이는 근육을 미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삼십삼 주천을 마치고 눈을 뜨려던 순간 이회옥은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무엇인가가 창을 뚫고 쇄도하자 본능적으로 받아들었다. 다음 순간 손목에서 느껴지는 묵직함과 시큰거림에 나직한 침음성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궁금하여 손을 폈던 이회옥은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암기 중에서도 비교적 크고, 무거운 상문정(喪門釘) 같은 것일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종이쪼가리를 뭉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손가락 한 마디보다도 작았다. 그런 것이 예리한 파공음을 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 글자 같은 것이 쓰여 있어 펼쳐들었다.


'이 냄새를 기억하는가?'

“냄새? 뭔 냄새…? 이게 무슨 소리지?”


잔뜩 구겨진 종이 쓰여진 글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하던 이회옥은 종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킁킁! 킁킁킁!
“어라! 이게 무슨 냄새지? 가만있자 이건 언젠가 한번은 맡아본 냄새 같은데… 흐음! 어디에서 맡아봤지? 뭐더라…?”

이회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이는 형상과 크기, 그리고 냄새로 미루어 어떤 단환(丹丸)을 쌌던 것이 분명하였다.

그것은 분명 먹으면 죽는 독단(毒丹)은 아닌 듯 싶었다. 냄새만으로도 심신이 상쾌해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흐음! 이상하다? 내가 이 냄새를 어디에서 맡아봤지? 무슨 영단을 쌌던 것 같은데… 영단이라는 건 구경해본 적도 없는데… 이상하다? 분명 어디선가 맡아본 냄샌데… 어디였지? 흐음…!”

사람의 감각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미각(味覺), 촉각(觸覺), 시각(視覺), 청각(聽覺), 그리고 후각(嗅覺)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후각은 가장 빨리 둔해지는 감각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악취가 심한 곳이라 할지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그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회옥이 끝내 종이에서 나는 냄새가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은 그의 후각이 금방 마비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밤을 꼬박 새우며 기억을 더듬었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하여 날이 밝자마자 의성장으로 향했다.

호옥접이나 장일정은 약리(藥理)의 대가(大家)이다.

따라서 종이에는 나는 냄새만으로도 어떤 단환을 쌌던 것인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의성장은 일타홍 홍여진을 만난 후 처음으로 가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장일정이 쉬는 매 아흐레마다 가고 싶었지만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철마당주와 철검당주, 그리고 사십 인의 정의수호대원들이 의문사한 것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태극목장을 말살하는 작전에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일정과 자신이 사촌지간이며, 태극목장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즉각 용의자로 지목될 것이다.

그렇기에 둘 사이의 친분과 출신이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가고 싶어도 가지 않은 것이다.

무림의 격언 중 자신의 삼 푼을 감출 줄 아는 현명함이 없다면 언젠가는 당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장일정과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였다.

다행히 누구도 둘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회옥이 배루난을 죽이고 의성장에 은신해 있을 때 그를 고발한 장본인이 장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호옥접과 홍여진뿐이다.

아무튼 장일정이 보고 싶으면 무천의방 부근을 서성였다. 외단 소속인지라 먼발치에서나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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