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이주노동 정책', 단속·추방으로 해결될까

[현장과 분석] 정부 단속·검거 등 강경방침 발표에 반발 확대

등록 2004.02.22 23:32수정 2004.03.02 16:26
0
원고료로 응원
a 강제 연행된 이주노동자의 전면 석방을 구호로 외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강제 연행된 이주노동자의 전면 석방을 구호로 외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이주노동자들이 정부 정책을 불신하며 자진출국을 거부하자 법무부가 강제 단속과 출국 등 강경 방침을 밝혀 충돌이 우려된다.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쟁취를 위한 농성투쟁단(이하 농성투쟁단)'은 22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동숭동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1천여명의 이주노동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명동성당 농성투쟁 100일째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가졌다.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 부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지난 14일 강금실 법무부장관을 만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이 문제에 대해 대화로 풀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혜화동에서 (샤말 타파를) 연행해 전라도 여수로 보냈다"며 "이들의 즉각 석방, 강제추방 중단 등을 법무부에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박대규 비정규연대회의 부의장(건설연맹 전국건설운송노조위원장)은 연대사에서 "이 땅의 노동자들이 하지 않는 힘든 노동을 이주노동자들이 했는데 억압하고 탄압하며 내쫓고 있다"면서 "자본가들이 산업연수생 제도로 이주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데 노무현 정부는 자본가를 보호하며 손뼉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와의 연대투쟁을 강조했다.

안와르(방글라데시) 명동농성투쟁단장 직무대행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 노동자이며 노동비자 쟁취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며 "한국정부는 추방정책이 실패하고 고용허가제 실패가 무서워 우리의 투쟁을 막고 있다"고 정부를 규탄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앞에서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 연행돼 전남 여수출입국관리소에 격리된 샤말 타파(32·네팔) '이주노동자 합법화 농성투쟁단장 겸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장'은 이날 전화로 투쟁을 독려했다.

샤말 타파는 '휴대폰 투쟁사'에서 "2월말까지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한 한국정부가 지난 15일 혜화동에서 단속이 아닌 납치를 했다"면서 "단속·추방으로는 (이주노동정책이)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단속하겠다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죽으라는 것이며 이는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강경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투쟁결의문에서 "단속추방 즉각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요구는 한국 정부에 대한 정당한 요구"라면서 △샤말 타파 등 연행된 이주노동자 즉각 석방 △단속추방 중단 및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집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종로4가 종묘공원까지 1.9km 구간을 1개 차로를 차지한 채 가두 행진했으나 경찰과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불법체류동포 사면청원 운동본부'도 이날 오후3시 서울 종로5가 연지공원과 백주년기념관에서 2500여명의 재중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면청원 촉구집회'를 열고 불법체류 재중동포에 대한 즉각적인 사면과 자유왕래 보장을 촉구했다.

또한 `미얀마 이주노동자회'도 용산구 한남동 미얀마 대사관 건너편에서 "불법체류 미얀마 노동자들이 미얀마 정부가 물린 과도한 소득세와 벌금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의 철회를 요구하는 항의집회를 열었다.

법무부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겠다" 강경 방침

a 이주노동자들은 단속추방 중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사업장 이동의 자유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단속추방 중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 사업장 이동의 자유보장 등을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한편 법무부는 자진출국 기간연장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23일부터 자체 단속을 실시하고 3월부터 경찰과 합동으로 모든 업종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불법집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들은 검거해 강제출국시키겠다는 강경 방침을 강조했다.

법무부는 지난 20일 "자진출국 기간연장을 결정한 다음날부터 자진 출국한 외국인 수가 하루 42명(자진출국기간 연장 이전 하루 90명)에 불과했다"면서 "일부 불법체류 외국인은 자진출국 전면거부운동을 벌이고 있어 국가공권력 실추는 물론 8월부터 시행예정인 고용허가 도입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정책 선회 배경을 밝혔다.

법무부는 또한 "정부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하여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고 불법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불법체류 외국인은 전원 검거하여 강제퇴거시킨다는 방침"이라며 "다음주부터 자체단속을 실시하고 다음달부터는 경찰과 합동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연행? 권리를 위해 싸우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아노와르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대표 직무대행

-오늘 역 80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참가하였는데, 어떻게 모인 건가.
"명동성당 이주노동자들과 지역 이주노동자들 중심으로 작년부터 모인 사람들이다. 자진출국을 거부하고, 현재 지역에서 계속 일하고 있는 분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지역에 있는 많은 외국인노동자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 문제를 투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더 큰 집회를 준비할 것이다."

- 오늘 오후 정부가 농성단 전원을 강제 연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연행이 두렵지 않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언제나 우리들을 연행해 왔으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려우면 싸울 수 없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은 탄압하기 위해 이런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40만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전민성 기자
법무부는 이날 자진출국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며 2월말까지 단속·추방을 하지 않겠다고 한 종교·사회단체와의 약속을 먼저 깼다. 이에 앞서 단속반들은 지난달 7일 가스총을 쏘며 이주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하고 지난 15일에는 명동성당농성투쟁단장인 샤말 타파씨를 강제 연행하면서 강경 방침을 예고했다.

정부는 고용허가제가 국회를 통과한 지난해 11월 15일 한국 체류 4년 미만 미등록 이주노동자 18만4천여명을 합법화했다. 이와 함께 이틀 뒤인 17일부터 4년 이상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전면 단속해 강제추방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중소기업체가 반발하자 음식점 등 서비스 업종 중심으로 편파 단속을 펼쳤다.

이에 2천여명의 재중동포들이 서울조선족교회에서 집단 단식농성에 돌입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위로 방문하고, 종교·사회단체의 항의가 빗발치자 자진출국 기간을 2003년 말, 1월 중순, 2월말 등 여러 차례 연장했다. 결국 이주노동자와 종교·사회단체들은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을 믿지 않게 됐다.

이주노동자들과 종교·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일관성 없는 정부의 이주노동정책에 대해 크게 불신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정부의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라며 전면 불신하고 있다. 특히 한국정부가 중소기업은 보호하면서도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산재발생, 인권침해 등을 외면해 국제적 비난과 국내 종교·인권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주노동자 자진출국 거부선언
합법체류와 적정 임금노동 보장요구

▲ 명동성당에서 6일째 단식농성을 전개하고 있는 4명의 이주노동자.
ⓒ조호진 기자

지난 10일 미등록 이주노동자 815명은 자진출국 거부운동에 서명했다. 이와 함께 이주노동자 농성투쟁단은 자진출국 거부운동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자진 출국한 이주노동자의 경우 6개월 뒤 재입국과 고용허가제 실시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전면 거부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지난 10년의 이주노동정책은 실패한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불법체류를 엄단하겠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법체류자 고용을 묵인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중소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고 대신 이주노동자의 착취를 허용했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이와 함께 반인권적인 단속방식에 대해서도 항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7일 이주노동자 단속·추방과정에서 자살한 사람은 모두 8명. 이들은 "한 밤중에 잠자리를 덮치고, 부인을 협박해 남편을 고발하게 만들고, 경찰이 한겨울에 옷을 벗겨 방치하고, 형사소송 중인 사람까지 막무가내로 사냥했다"고 주장했다. 종교·사회단체는 이달 말경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인권 사례를 발표하고 국제사회에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산업연수생'와 '고용허가제'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합법적 과정을 거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결국 임금착취, 산재발생, 인권유린 등이 발생해도 지정된 사업장을 이탈해선 안되고 이를 어길 경우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를 노예로 부리는 산업연수생과 고용허가제는 달라진 게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이들이 자진출국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문제다. 이들은 "한국대사관, 출입국사무소, 인력송출업체로 구성된 비리 커넥션에 의해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1천만원 가량 돈을 들였다"며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비리커넥션을 제거해 입국비용을 현실화시키고 사업장 이동 자유를 통한 월급 현실화"라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지난 17일부터 연행 이주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경기도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격리된 이주노동자 4명과 전남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 격리된 이주노동자 2명이 6일째 단식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명동성당 농성투쟁단 이주노동자 4명이 같은 날 동조단식에 돌입한 데 이어 21일부터 몽골 이주노동자들이 동참하는 등 단식농성이 확산되고 있다. / 조호진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4. 4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5. 5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