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두 송이를 그대에게 주었네"

[쿠바 여행기-4]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찾다

등록 2004.02.23 23:57수정 2004.02.2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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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9일부터 1월 23일까지 녹색문화기금 프로그램으로 쿠바를 다녀온 그린네트워크 장원 대표가 쿠바방문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에는 쿠바의 환경, 유기농 실태, 사회복지 등을 비롯해 쿠바 거주 한인들의 생활상 등도 소개됩니다. 장 대표의 연재는 모두 7회 정도이며, 이 기사는 그 네 번째입니다....편집자 주

a 쿠바국립호텔에서 연주중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쿠바국립호텔에서 연주중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 장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영화와 내한 공연으로 한국에도 꽤 잘 알려진 쿠바의 전설적인 뮤직 밴드. 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바나의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우리 일행은 만사를 제쳐 놓고 쿠바국립호텔로 향했다. 매일 저녁 9시 30분부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공연이 이곳에서 있기 때문이다.


입장료만 쿠바 심장 전문의의 한달 급여에 해당하는 미화 20달러. 우리는 조금은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공연장에 앉았다. 공연장은 3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수십개의 원탁이 놓여 있었고, 식사나 술을 즐기면서 공연을 관람하게 되어 있었다. 아직 공연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외국 관광객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환영받는 사교 클럽'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그 유명한 클럽! 모히또(럼주에 민트 잎을 넣어 만든 칵테일) 한 잔을 시켜 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린다. 이윽고 9시 30분 정각, 멤버들이 무대로 올라오고 두시간 동안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사진 찍기에 더 열심이더니, 분위기가 점점 더 달아오르자 저마다 앞으로 나가 라틴 댄스를 신나게 춘다.

도대체 이 클럽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 일행을 쿠바에서 시종일관 안내해 준 인민의회 의원인 세르지오(Sergio)의 섭외로 이 클럽을 직접 인터뷰하기로 했다. 쿠바 도착 닷새째, 글쓴이는 다른 일행과 떨어져 그들이 연습하고 있는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스튜디오는 현대식으로 깨끗하게 단장된 건물로 내부 시설도 대단히 훌륭했다.

의원의 부탁 탓인지 특별히 스튜디오 안에서의 연습 과정을 지켜 보게 해 주었다. 절로 흥겨운 연주와 노래, 1주일에 3번씩 모여 총 12시간, 많을 때는 40시간 정도까지 연습을 한다고 한다. 1시간 남짓 그들의 연주를 듣고 나서, 스튜디오 건물의 한 쪽에 마련된 바에서 역시 1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했다.

그 유명한 콤파이 세군도의 아들이며 현재 그룹의 리더로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살바도르 레필라도 라브라다(56)와 인터뷰를 했다. 아버지는 두 딸과 세 아들 이렇게 5남매를 두었는데, 그 중에 자기는 막내라고 소개했다.

먼저 아버지 콤파이에 대해서 물었다.


a 명장 콤파이 세군도의 아들인 살바도르 레필라도 라브라다.

명장 콤파이 세군도의 아들인 살바도르 레필라도 라브라다. ⓒ 장원

"아버지는 이 집을 참 좋아했고 여기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작년에 95세를 일기로 운명하셨는데, 평탄하진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하다가 가셨다. 늘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셨고, 그것을 또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었는데 결국 못보고 가셨다. TV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대에 태어나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의 모습만 보고 가신 셈이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아버지와 한국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한국인하고 일한 적이 있었다. 늘 그이와 일하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 가고 싶어했으나 못 가고 말았다. 나도 한국에 가보고 싶다. 올 6월이나 7월 중에 우리 클럽이 한국에 한 번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추우면 맥을 못 추니까 그 때쯤 가서 보름이나 한달 정도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각 대학을 순회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음악을 전수하는 뮤직 캠프를 열고 싶다. 세상의 평화와 자연과의 평화를 위한 워크숍도 열고 싶다."

한국에 올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멤버가 너무 바뀌어서 음악적 기조나 지향이 변하지는 않았을까? 아버지 콤파이를 비롯한 루벤 곤살레스와 오마라 포르투온도 등 왕년의 쟁쟁한 멤버들은, 이제 다 고인이 되었거나 노환과 고령으로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감동을 제대로 되살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우리 클럽은 정식으로는 1970년에 결성되었다고 할 수 있고, 우리가 바로 그 오리지널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최근에 멤버가 거의 다 젊은 사람들로 바뀌었다. 아닌게 아니라 올드 멤버는 이제 두 명밖에 안 남은 셈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2명의 2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음악적 기조는 변화하지 않았다.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쿠바의 전통 음악으로, 삶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이성간의 사랑이 그 주제이다. 특히 열대의 색채를 음악의 색으로 바꾸거나 자연을 모자이크한 음악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바로 라브라다의 답이었다.

인터뷰도 연습 시간을 쪼개서 한 것이기 때문에 무척 바쁜 듯했다. 97년에 라이 쿠더에 의해 그들의 첫 앨범이 나오고, 99년에 빔 벤더스에 의해 다큐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내달부터는 유럽 순회 공연이 준비되어 있어 더 바쁘다고 했다. 아무리 바빠도 물어볼 것은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에, 왜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이 클럽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일단 우리는 100곡 이상을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열대 지방의 생명력과 생동성, 자연에 대한 사랑, 농부와 보통 사람들의 정신을 음악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신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아름다운 쿠바 여인들과의 사랑을 노래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고…. 쿠바의 음악은 진실로 신의 선물이다."

a 소셜클럽의 올드 멤버.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여유로워 보인다.

소셜클럽의 올드 멤버.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여유로워 보인다. ⓒ 장원

'깊은 슬픔에 잠긴 내 영혼, 난 꽃들에게 내 아픔을 숨기고 싶네. 인생의 괴로움을 알리고 싶지 않아, 내 슬픔을 알게 되면 꽃들도 울어버릴테니까. 글라디올라스와 흰 백합, 내 눈물을 보면 죽어버릴테니까.'- 꽃들이 모르게(Silencio Silience)

'치자꽃 두 송이를 그대에게 주었네,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서. 그 꽃들은 당신과 나의 심장이 될거요. 꽃들이 당신 곁에서 나 대신 속삭일 거요. 나 대신 사랑한다고 말해줄거요. 내 사랑의 치자꽃은 죽어버릴거요, 당신이 날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치자꽃(Dos Gardenias)


그들의 음악은 정말 그렇다. 그냥 삶이 음악이고 숨쉬는 것이 음악이고 신앙이 음악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악은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이 땅을 꾸미고, 또한 그네들의 토속 종교인 산테리아의 신들에게 향과 꽃을 올리는, 그야말로 장엄의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콤파이 세군도를 비롯한 올드 멤버들의 음악은 유장했다. 늙은 산과 깊은 바다 같았다. 카리브해에서 자유로이 유영하는 자연산 어족들의 군무 같았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 즐기기 위한 음악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교체된 새 멤버들의 음악에서는 솔직히 그런 감동이나 자연스러움은 없었다. 연륜이 필요한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물었다. 좋아하는 다른 그룹은 없느냐고. 한참 생각하더니, "있다…. 바로 우리 그룹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a 많은 관객들이 소셜클럽의 연주를 즐기고 있다.

많은 관객들이 소셜클럽의 연주를 즐기고 있다. ⓒ 장원

덧붙이는 글 | 시사저널에 좀 짧게 실린 적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시사저널에 좀 짧게 실린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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