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참전용사, 영화 보며 두 번 울다

아버지 <태극기 휘날리며> 보던 날

등록 2004.02.24 15:00수정 2004.06.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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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 녀석을 한번 안아주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버지를 모시고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청주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시골에 살고 계신다. 태어나서 이 곳을 떠나 보신 적이 없었다. 단 한 번을 제외하고….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다. 6·25 전쟁영화라는 타이틀을 가진 <태극기 휘날리며>. 내가 서른이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극장을 찾은 이유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올라오는 동안 아버지에게 여쭈었다.

“아버지, 극장 언제 가 보셨어요?”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도 안 난다. (껄껄).”

아마 처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종종 내 어린 호기심에 못 이겨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우리가 볼 영화가 6·25전쟁 영화라는 말을 듣고는 내내 그 당시의 얘기를 해주셨다.

아버지는 영화를 보며 두 번 눈물을 흘렸다. 영화의 주인공(진석 역)처럼 아버지는 18세에 참전했다고 한다. 저녁식사 중에 마을 소집 징소리를 듣고 그 길로 참전하게 되셨다고 한다. 6월 말이라고 하지만 산골마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간혹 ‘쿵’하는 포 소리에 난리가 난 게 아닌가라는 소문만 돌고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외아들인 아버지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맨발로 꽤 먼 거리까지 따라가셨다. 영화속 어머니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아마도 아버지는 할머니를 떠올리시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a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 쇼박스

아버지는 돌아오는 길에도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경북 칠곡의 어느 야산에서 파편에 맞아 부상당하고 이틀간 산에서 헤매셨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군을 만나 병원으로 후송되어 목숨을 건지셨다며….


“그 때 잘못됐으면 너도 없고 정원이(아홉 달 된 아들)도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아들을 전쟁터로 보낸 할머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기막혔다.

영화는 두 형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그 거리의 시신들, 그리고 부상당하고 죽어 가는 군인들, 그 모두에게 가슴 아프고 한으로 남을 사연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와 함께 참전했던 동네 청년은 모두 7명이었다. 그 중 아버지와 다른 2명, 이렇게 3명만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훈련도 받지 않고 나간 터라 전사자가 많았다는 말씀이다.

a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 쇼박스

영화 끝 무렵 전쟁당시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인 주인공이 “두고 오는 게 아닌데… 나 혼자 오는 게 아닌데…”하며 눈물을 흘릴 때 아버지는 두 번째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1사단 소속이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대해 공감하셨다. 아버지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아버지를 졸라 당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찾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전우로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한 분이라고 한다. 이름을 정확히 기억을 못하시지만 그분을 찾는 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오마이뉴스>가 도움이 되어 주길 바란다.

극장을 나오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버지와 같은 분들은 돈 받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아버지는 나에게 많은 것을 던져주셨다. 아버지가 당시 경험하셨을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희망이 지금의 나를 그리고 내 아이를 있게 한 것이다.

아버지와 이 땅의 모든 아버지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아버지(박동식·73)는 치료 후 부대에 합류하여 문산에서 생포한 중공군 포로로부터 얻은 정보가 아군에 도움이 된 공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다.

덧붙이는 글 아버지(박동식·73)는 치료 후 부대에 합류하여 문산에서 생포한 중공군 포로로부터 얻은 정보가 아군에 도움이 된 공을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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