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수족 집안에 있는 훈제돼지고기. 6년 된 것이라고 한다.최성수
어두운 길을 디디며 숙소로 돌아오다가, 숙소 마당 한쪽에 있는 모수족 가옥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봅니다. 마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모수족 아가씨들이 우리더러 들어오라고 합니다.
집 안쪽 벽 가까이에 화덕이 있고, 화덕에는 불이 발갛게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화덕 위에는 시커멓게 그을린 커다란 주전자가 김을 내뿜으며 끓고 있습니다. 아가씨들은 보던 텔레비전 화면에서 아쉬운 듯 눈을 떼며 불 속에 감자 몇 알을 던져 넣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니 우리나라 드라마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어머, '보고 또 보고‘네.”
제자인 정희가 놀라 소리를 칩니다. 정말 우리 나라에서 얼마 전에 방영했던 드라마입니다.
‘저 드라마를 모수족 아가씨들이 이해나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겹사돈 이야기였던 그 드라마의 내용이 떠올라서입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알 필요조차 없는 혼인 제도를 지니고 있는 모수족에게 겹사돈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래도 모수족 아가씨는 그 드라마가 아주 재미있다며 눈을 뗄 줄 모릅니다.
이야기 끝에 모수족 아가씨는 웃으며, 요즘은 외지 사람들이 모수족 남자들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외지인 여자와 결혼한 남자도 세 쌍이 있다며 웃는 아가씨의 표정이 쓸쓸해 보입니다. 모수족 남자가 여자를 찾아가던 풍습이 관광지로 바뀌고 상업화되면서 외지인 여자와 남자로 변한 현실이 영 탐탁치 않은가 봅니다.
화덕 주변으로 낮은 침상이 몇 개 놓여있고, 집안은 그을음이 가득한합니다. 부엌 쪽 선반에 이상한 것이 가로로 길게 누워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돼지를 통째로 삶아 말린 것입니다. 육년 된 고기라고 합니다. 길게는 십 년까지도 그렇게 고기를 말려놓고 먹는다고 합니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합니다. 귓가에는 여전히 루구호의 밤 별빛들이 우수수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