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받는 법원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프라우드 우먼] 사법사상 최초 여성법원장 이영애 춘천지방법원장

등록 2004.02.26 11:48수정 2004.02.2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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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김희수

“형평과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적정한 재판권 행사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법원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법원장에 임명돼 화제를 모았던 이영애(56) 춘천지방법원장은 지난 2월 11일 취임사에서 이렇게 밝혔다. 법원 전체의 총괄 관리자인 법원장의 임무는 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법원장이 된 뒤에 달라진 점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는 “전에는 내 일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조직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알기 위해 여러 종류의 신문을 읽게 된 것이다.

“예전엔 신문을 읽을 때도 당장 필요한 기사만 읽었는데 요즘은 여러 종류의 신문을 읽어요. 저와 반대편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알아야 할 필요를 느끼거든요. 저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고 제가 인사를 다닐 곳도 많아서 요즘은 정신없이 바쁩니다.”

이 법원장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1년 사법고시 13회 수석합격자로 법조계에 몸담았다. 1976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법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태아의 법적 지위’, ‘한국의 이혼제도’, ‘컴퓨터소프트웨어보호법’ 등 수 편의 논문을 영어로 작성해 발표한 실력파로 알려졌다.

‘여성최초’수식어 후배들 늘수록 부담돼

법원장은 어떤 자리
전국에 20명...임기 1~2년 차관급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모두 20개의 지방법원이 있다. 지방법원은 지방법원장과 대법원 규칙으로 정한 수의 판사로 구성되며, 관할 구역 내에 지원과 소년부지원, 시·군법원 및 등기소가 있다.

법원장의 사회적 지위는 중앙 행정부서로 치면 차관급 정도에 해당한다. 법원장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대략 1∼2년 정도가 지나면 인사 발령이 있다. 현재 춘천지방법원 본원에는 모두 21명의 판사가 근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여성은 6명이다.

이번 인사와 관련해 춘천지방법원 직원들은 “유능한 사람이 우리 법원의 수장이 됐다”고 평가하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최초의 여성 법원장이란 점에 대한 부담감 대신 “여성에 대해 선입견을 갖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 우먼타임스 임현선기자
1988년 여성 최초 지법 부장판사, 1995년 여성 최초 고법 부장판사에 임명되는 등 ‘여성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민사·형사·가정·조세·행정 등 거치지 않은 분야가 없으며 이론과 실무에 뛰어난 법적 균형 감각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판사로 일하는 동안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주심을 맡았고, 최근 새만금 공사 집행정지 항고심을 맡았다.


“젊었을 때는 최초란 말이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그런데 후배들이 늘어나니까 부담이 느껴져요. 앞서 걸어가고 있는 입장에서 기꺼이 감당해야 할 짐이라고 생각해요.”

이 법원장은 일을 하면서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없었다고 했다. 일 자체가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단지 41세에 얻은 막내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95년 대전에서 근무하느라 떨어져 있었던 것이 가장 힘든 기억이다.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늘 칭얼댔고, 엄마는 늦둥이가 너무 예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아들과는 컴퓨터 게임도 하고 영화도 함께 본다. 1년에 몇 차례씩 여행을 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 행사다.


“그 당시에는 아이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제가 일을 해야 하나 회의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남편이 많이 도와줘 위기를 잘 넘긴 것 같습니다.”

이 법원장은 “지금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여자니까 더 잘해야 한다는 의식대신 기본적으로 자기 직무에 충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원장에 임명된 이후 세간의 주목을 끌었지만 정작 본인은 요즘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다. 춘천으로 발령을 받았기에 가족과 떨어져 50대 중반의 나이에 주말부부가 됐다. 월요일 새벽에 춘천으로 가서 일주일을 지낸 다음 토요일 오후 서울로 올라오는 생활을 하고 있다.

“적막해요. 1995년에도 2년 간 남편과 떨어져 주말부부로 지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일을 끝내고 관사에 들어가면 쓸쓸하고 남편과 막내아들 생각도 더 간절해져요.”

그리운 가족들과 멀어진 거리의 간격을 줄여주는 것은 전화와 이메일. 남편 김찬진 변호사와 이제 고등학생이 된 막내아들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정의의 여신 디케는 한 손엔 저울을, 다른 한 손엔 칼을 쥐고 있다. 여기서 저울은 개인간의 권리관계에 대한 다름을 해결하는 것을 뜻하고, 칼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옳고 그름’,‘선과 악’을 판별해야 할 정의의 여신은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다. 이는 정의 실현을 위해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를 지켜야 함을 상징한다.

‘저울과 칼’놓고 관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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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김희수

이 법원장은 30여년의 법관 생활동안 수십만 번 ‘정의의 여신 디케’의 입장에 서 있었다. 판사란 직업은 선택받은 소수이기도 하지만 판결이 가져다주는 파장이 큰 만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다. 이 법원장은 판사로 일하면서 수십만 가지의 사건을 다뤘지만 그중 경중을 따질 수 있는 사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다는 것.

“제가 내린 판결로 어떤 사람의 일생이 뒤바뀔 수 있다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종교 생활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이웃을 돌아보게 된다고 전했다.

이 법원장은 서울에서 춘천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잠시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저울과 칼’을 내려놓았다. 대신 후배 판사들이 제대로 그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성종합신문 <우먼타임스>에서 제공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성종합신문 <우먼타임스>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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