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노동부 장관과 '진짜 노동자' 겨룬다

민주노동당 경산·청도지구 후보 선출대회 현장

등록 2004.02.26 13:07수정 2004.02.2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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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경산·청도 지구당 손일권 후보
민주노동당 경산·청도 지구당 손일권 후보허미옥
"우리가 주인입니다. 주인이 머슴에게 새경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후보 선출대회 마지막 순서, 모 노동조합에서 손일권 후보(민주노동당 경산·청도 지구당)측에게 후원금을 전달할 때 사회자가 던진 상징적인 메시지다. 그러면서 사회자는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유권자가 주인이 되는 선거, 좋은 머슴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주인들이 머슴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전 노동부 장관인 권기홍 열린우리당 후보와, 월 100만원 미만 '진짜 노동자' 민주노동당 손일권 후보가 경합하는 곳. 경산·청도지구당.

이번 17대 총선은 전직 장관과 현장 노동자간의 대결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시장, 군수, 그리고 현직 국회의원 모두가 구속된 상태에서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들겠다는 민주노동당의 각오도 대단하다.

민주노동당 경산·청도지구당의 제17대 국회의원 후보 선출대회가 열린 23일(수) 저녁 경산농민회관. 여기 저기에서 축하하는 인사말이 오가는 잔치 분위기로 들떠 있다. 민주노동당 경산청도지구당 당원 총투표자 74명 중 찬성 72표를 획득하면서 선출된 손일권(37) 후보는 많은 당원들 사이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었다.

당원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는 그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고, 고된 노동으로 투박해지고 손톱이 삐뚤게 자리잡은 손은 한눈에도 엘리트 출신의 여느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매끈한 손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진량공단 '진짜 노동자', 민주노동당 손일권 후보

민주노동장 경산·청도 지구당 손일권 후보 약력

1998년 진보정당창당준비위원회 준비위원
1998년 경산지역 실업대책위원회 운영위원
1998년 실업자 자녀를 위한 민들레 공부방 운영위원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발기인
2001년 전국금속노조 대구지부 미조직위원
2001년 전국금속노조 한농기계지회장
2002년 민주노동당 경산청도지구당 노동위원장
2003년 민주노총 경산시협의회 미조직ㆍ비정규직 위원장 (현)
2003년 부패추방운동본부 경산 본부장 (현)
2003년 학교급식조례제정 운동본부 추진위원장(현)
2003년 민주노동당 경산청도지구당 부위원장 (현)
그가 바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경산 진량공단의 노동자로 살아온 이번 총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후보예정자인 손일권 후보이다.


대회장은 손 후보의 출마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100명 남짓한 사람들로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여느 당 선출대회와는 다르게 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당원들뿐만 아니라 손 후보와 같은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손 후보의 부인과 부모, 그리고 고향 주민들이 함께이기 때문이다.

또한 손 후보의 선출을 축하하기 위해 이연재 수성을 출마 예정자와 정준호 경주 출마예정자, 김숙향 포항남·울릉 출마예정자도 자리에 함께 참석했다.

이날 대회는 경산시 농민회 이상규 회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이 회장은 "이번 총선에서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 한번 잘 살아보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산에서 아름다운 정치 혁명을 이루고자 한다"며 이번 총선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했다.

한편, 김병일(전농도연맹 의장) 민주노총 경북본부장과 천영세 당 부대표가 각각 결의사와 축사를 맡았다. 특히 김병일 본부장은 "노동자와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국민들은 부패한 보수정치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며 "앞으로의 정치는 진보 정당의 국회의원들로 결성되어 이끌어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손 후보, "해고의 두려움이 없는 진량공단 만들 터"

"경산청도지구 20만 유권자 중 60-70%가 노동자 농민이다. 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은 민주노동당 후보 밖에 없다"고 강조한 손일권 후보
"경산청도지구 20만 유권자 중 60-70%가 노동자 농민이다. 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은 민주노동당 후보 밖에 없다"고 강조한 손일권 후보허미옥
후보선출대회장을 뭉클하게 한 순서는 손 후보의 부인 강옥남(33)씨가 일기를 낭독할 때였다. 강씨가 나지막이 읽은 일기에는 '그동안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월차휴가를 보장하고 잔업수당을 제대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다 사직을 강요받고 이를 막으려 노동조합을 만들다가 두 번씩이나 해고' 당했던 손일권 후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성실함과 부지런한 노동만이 진실하고 소중한 가치임을 온몸으로 일깨우며, 노동자의 아픔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신에게 우리 노동자들의 희망을 걸어봅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했다.

손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제가 부당하게 해고되었을 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 일처럼 달려와준 분들이 민주노총"이라며 "무참히 박탈당한 노동자 권리를 되찾기 위해 해고의 두려움이 없는 진량공단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농민의 염원을 산산히 짓밟고 식량주권을 팔아먹은 매국노 정치인과 차떼기 한나라당 노무현 꼬봉당에 농업을 살리는 정책을 기대하는 농민은 이제 아무도 없다"며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열심히 일하며 살고자 했던 본인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도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를 마친 후 민주노동당 경산청도지구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었다.

"행사장 입구에 붙어 있는 후보 실사 사진에 쓰여진 삼행시로 이날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전하고자 한다.

손 - 손으로 찍읍시다.
일 - 일하는 사람들의
권 - 권리찾기“


"경산·청도 유권자 60-70%가 노동자·농민"
손일권 후보 일문 일답

▲ 월 100만원 미만 임금을 받고 있는 진짜 노동자 손일권 후보
- 이번 총선에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
"내가 근무하는 진량공단 담에는 '로또만이 희망이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800만분의 1의 가능성이 진정 노동자의 희망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 중소기업에 노동자로 일하면서 월차휴가를 보장하고, 잔업수당을 제대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다 사직을 강요당했다.

또 이를 거부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두 번씩이나 해고되고 복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땅의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지금과 같은 민중들의 어려운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힘으로, 민중이 참여하고, 민중의 요구를 담아내는 정책을 가진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현재 경산·청도지역 노동자 현실은 어떤가?
"진량공단 등에는 노동3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사업장 노동자들이 많다. 그들은 연월차 휴가도 받지 못하고, 법정 근무시간에 맞춰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주의 눈치를 보며, 선거일에는 투표하러가겠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경산·청도지역 진량공단에 노동자는 약 6만명 정도지만, 근로감독관은 단 1명뿐이다. 제대로 감독이 될 리가 없다. 예전에 민주노총에서 진량공단 노동실태를 조사하고자 '명예근로감독관'을 신청했지만 정부로부터 거절당한 적이 있다."

- 선거자금 투명화를 위해 민주노동당 경산·청도지구에서 어떤 방법을 고민하고 있나?
"일단, 선거자금 모금 방식은 당원의 자발적 당비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지인들의 후원금이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본격적인 선거 시기가 되면, 매주 선거자금 사용내역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 경산지역에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
"지난 6.13지방선거와 대선 때 각각 4.25%, 5%였다. 꽤나 많은 득표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기간 경산청도지역의 선거판 즉, '한나라당이 지역주의에 의거,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었다'는 신화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것 같다. 경산청도지구 20만 유권자 중 60-70%가 노동자 농민이다. 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은 민주노동당 후보 밖에 없다." / 허미옥

"두 번의 해고, 순탄치 않았던 노동자로서의 삶"
손일권 후보 아내 강옥남씨 일기

▲ 강옥남씨
내 남편은 진량 공단의 젊은 노동자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남편의 몸에 선 기름냄새가 납니다. 땀에 절어 잘 벗겨지지 않는 양말을 억지로 벗으면 오늘도 힘겨운 노동의 하루가 지나갑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진량 공단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연립주택 4층 전셋집입니다. 우리 동네는 낮에는 사람 구경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모두 다 맞벌이를 나가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은 학교로 학원으로,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립니다. 네살배기 아들 봉우 친구들은 퇴근해올 엄마를 기다리며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지내야 합니다.

그래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볼 수 있는 것은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연기입니다. 저는 그 거대한 연기를 보면 뭔가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뿜어져나오는 아픔을 보는 것 같습니다. 생산량에 쫓기며 기계에 빨려들 듯한 노동자의 손 같기도 합니다.

몸서리치는 기업주의 이윤추구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노동자의 손은 쉴새없이 기계가 되어 돌아가야 합니다. 몇 해 전 남편은 중소기업 노동자로 일하면서 월차휴가를 보장하고 잔업수당을 제대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다 사직을 강요당했습니다. 이것을 막으려고 노동조합을 만들다가 두 번씩이나 해고당한 남편.

그런 남편에게 나는 "왜 사장님한테 밉보였냐고, 사장님이 하라고 하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고,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해서 악착같이 붙어 있어야지,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고 모진 말을 해댔습니다.

6개월째 불러오는 뱃속의 생명을 원망하기도 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외로운 차량농성 투쟁은 결국 끝이 났고, 보란 듯이 복직을 했습니다. 원망하던 그 생명은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까맣게 잊게 해줄 만큼 사랑스런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 남편이 2000여명의 민주노총 회원들의 추대를 받아 당당히 17대 국회의원 민주노동당 후보로 경산·청도지역에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돈과 학벌과 빽으로 판가름나는 대한민국은 가진 자들만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도 자식들 공부조차 제대로 시킬 수 없는 절망의 그림자가 이 땅을 뒤덮고 있습니다.

성실함과 부지런한 노동만이 진실하고 소중한 가치임을 온몸으로 일깨우며 노동자의 아픔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당신에게 우리 노동자들의 희망을 걸어봅니다.

노동이 아름답고 민중이 주인되는 평등한 세상이 꼭 오기를 바라며….

당신의 아내가
철의 노동자 손일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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