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교로 옮기는 2, 3월, 나는 경계인!

정을 쏟은 학교를 떠나 새 학교로 옮기며

등록 2004.02.26 15:43수정 2004.02.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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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정이란게 뭔지?'

화순 북면중학교를 떠납니다. 3년 만기를 채웠습니다. 이곳은 벽지학교로 학교만기가 3년입니다. 화순 도암중학교로 갑니다. 도암중학교는 북면중보다는 집에서 더 가까워서 통근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3년 전 북면중학교를 찾았을 때의 감회가 새롭습니다. 말이 화순이지 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광주 집에서 화순읍을 지나 54km 정도됩니다. 언덕을 넘고 돌고 돌아 백아산 기슭에 아담하게 고즈넉이 자리잡은 양지쪽의 학교 교정이 나타났습니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닦여 길이라도 좋지만, 옛날에는 참 오지였을 것 같습니다. 하기사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보면 6.25 전쟁 때는 이곳에 남로당 도당 본부가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전교생이 50명을 조금 넘는 작은 시골학교.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에 의하여 퇴출될 위기에 처한 학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는 매우 낡아 보였습니다. 교실 바닥은 곧 꺼질 지경이고, 창틀은 틀 레일이 다 드러나 이두박근, 삼두박근을 뽐내고 있었으며, 이중창의 안창은 짝을 잃은 것이 많았지요.

부임 후 학부모님들의 협조로 교육감을 '압박'하여 공사를 추진한 결과 지금은 말끔히 단장되어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마치 상전벽해를 보는 듯 합니다.

학부모님들은 참 가난합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학교의 교육활동에 적극 협조를 해주셨습니다. 정 또한 깊어서 마치 형제와 지내는 것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학생들은 학력이 떨어지고 숫자도 적지만 참 착하고 순박하였습니다. 내 자녀처럼 정답게 보낸 아이들입니다.


선생님들도 참 좋았습니다. 참 인성이 고우시고 교육에 열심이셨으며 특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였습니다. 직원간에는 서로의 마음을 읽고 협조하여 무슨 일이든지 하나같이, 내 일같이 함께 하였습니다.

모두가 그리울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교직의 승진 제도의 모순입니다.

지금 승진을 준비하시는 선생님들은 승진을 위한 노력보다는 자신을 갈고 닦아 교직자로서의 전문성과 품성을 갖추는 노력을 더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가르치는 분들보다 교장선생님과의 친분 여부에 따라 근무 평정이 결정되는 모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과 친한 분의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서 지적을 하면 마치 교장선생님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하루빨리 승진 제도가 바로잡혀서 정말 전문성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 승진을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비록 평교사로 평생을 사실지라도 아이들만을 바라보고 사시는 분들이 대접받을 수 있는 교직 풍토가 아쉽습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 지금 40대 교장, 교감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젊은 후배들을 상전으로 모시고 교육 활동을 하실 노선배 교사들이 제발 쪽팔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젊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 또한 크다고 봅니다. 노련하고 인자한 노교사로부터 깊은 인생의 맛과 경륜을 배울 후배 교사와 학생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떠나는 마음은 참 착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정이 병이 될까요? 정을 쏟을수록 떠나기가 힘이 드는가 봅니다. 자꾸만 뒤돌아보아지는 것을 어찌 가눌까요? 사는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돌뿌리 하나 하나조차 새로 보아집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공무원이란 발령장 하나로 움직여야 하는 것을.

우리 교직에 있어서, 이동하는 교사는 2월과 3월에는 경계인이 됩니다. 떠나는 설움과 새 일터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그렇습니다. 남아 있는 이는 새 인물과 새 일로 보내는 이에게 관심 두기 어렵습니다. 새 학교에 가면 교직 경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신참이 됩니다. 그나마 의견이라도 물어서 업무를 주면 다행이지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업무가 배치되고 자리가 주어지기 일쑤입니다. 새 학교에 가면 눈, 귀, 입을 막아야지요. 적어도 석달은요. 그것이 상례랍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잘 적응하고 살아봐야지요. 그러노라면 또 정이 들고 주위도 익숙해지겠지요. 대한민국 어디는 학생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나의 일터인 것을. 정년까지 남은 12년을 몇 번이나 더 이런 괴로움을 겪어야 할 지요.

북면중학교 선생님, 학부모님, 학생들 모두가 그리울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여러분의 덕분에 한 세월 잘 보냈습니다. 북면중에서 사는 동안 참으로 보람되고 행복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화순 북면중학교에서 3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떠나려니 이별의 슬픔이 너무 큽니다. 또한 새 학교에 대한 기도도 큽니다. 설렘과 기대를 적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화순 북면중학교에서 3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떠나려니 이별의 슬픔이 너무 큽니다. 또한 새 학교에 대한 기도도 큽니다. 설렘과 기대를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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