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궁합까지 끝내주는 '홍탁삼합'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51] 홍어, 돼지고기, 묵은 김치에 막걸리 한 잔

등록 2004.02.27 15:32수정 2004.02.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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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탁삼합에서 막걸리만 빠졌군요. 여기엔 묵은 김치가 놓여야 합니다.
홍탁삼합에서 막걸리만 빠졌군요. 여기엔 묵은 김치가 놓여야 합니다.김규환

궁합(宮合)과 음식궁합


어린 시절 얼굴은 한번 못 봐도 궁합만 보고 혼인하던 어른들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어떻게 한 평생 살 사람들이 부모들 간에 건네지는 생년월일시로 사주와 궁합을 때려 맞추고 한 이불 덮고 사는가 말이다.

허난설헌의 설움과 한말 외국물 먹은 여성들이 처절하게 항거하여 이젠 자유연애시대를 거쳐 동성동본(同姓同本), 연상연하(年上年下)를 따지지 않고 서로 맘에 맞으면 그게 궁합이겠거니 하거나 무시하며 사랑을 듬뿍 나누고 오랜 연애 끝에 혼인에 이르게 된다. 자기 좋으면 그걸로 끝이니 웬만한 명문가나 깐깐한 부모 아니고서는 자신들의 의견이 철저히 보장되는 시대니 얼마나 좋은가.

흑산홍어 한마리. 내릴 줄 모르는 흑산홍어. 작은 것은 10만원 이내로 살 수도 있습니다. 이 놈 한마리 먹는 게 소원이라는 분 주변에 꽤 있습니다.
흑산홍어 한마리. 내릴 줄 모르는 흑산홍어. 작은 것은 10만원 이내로 살 수도 있습니다. 이 놈 한마리 먹는 게 소원이라는 분 주변에 꽤 있습니다.김규환

'궁합맞다'와 반대되는 말로 '살이 끼었다'고 한다. 제 혼자서는 아무 문제가 아닌데 상극(相剋)인 경우를 두고 하는 것이니 궁합이 맞고 안 맞고는 상대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서방 잡아먹을 ×'으로 통했던 한 많은 여인네들의 슬픔이 그렇고 동물간에도 견원지간(犬猿之間)이 그렇다.

고양이와 개도 서로의 오해에서 비롯된 미움은 끊이질 않는다. 고양이가 꼬리를 들고 살랑살랑 흔들어 대는 건 잔뜩 기분이 나빠 으르렁거릴 때 하는 행동이나 개는 마냥 좋아 꼬리를 흔들어댄다. 서로의 감정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음식에도 궁합과 상생(相生)관계, 반대로 상극이 존재한다고 한다. 어른들은 돼지가 먹는 쌀뜨물이나 구정물에 새우젓을 절대 넣지 못하게 했다. '돼지가 새우젓을 먹으면 허리가 구부러져 결국 부러지고 만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걸 역으로 돌려보면 누른 고기나 머리고기, 편육(片肉) 또는 삶은 고기를 먹을 때 새우젓을 항상 옆에 두어 찍어먹게 했던 것은 체하지 말고 소화력을 최대화하여 영양분 흡수를 돕고자 한 것이다. 토마토에 설탕을 찍어먹는 습관은 상극 작용을 부채질하는 못된 버릇임에는 틀림없다.

위에 있는 흑산홍어와 비교하면 뚜렷하게 구분이 가지요? 그래도 잘 삭히면 국산 못지 않습니다. 서민들의 영원한 벗 칠레산을 먹으려면 우리나라에서 드릴로 뚫으면 칠레 앞바다가 나옵니다. 낚시 바늘만 드리우면 잡힐까.
위에 있는 흑산홍어와 비교하면 뚜렷하게 구분이 가지요? 그래도 잘 삭히면 국산 못지 않습니다. 서민들의 영원한 벗 칠레산을 먹으려면 우리나라에서 드릴로 뚫으면 칠레 앞바다가 나옵니다. 낚시 바늘만 드리우면 잡힐까.김규환

홍탁삼합의 조화

음식 중에 대표적인 합궁(合宮)을 발휘하는 음식이 있다. 양합(兩合)도 아닌 삼합(三合)이니 이름하여 홍탁삼합(紅濁三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 한 가지만 빼고 삭히는 숙성 과정을 거친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이다.


발효식품 세 가지와 식어갈수록 딱딱해지는 고깃덩이가 어울리니 미련하게 살균을 하지 않는 한 발효가 지속되어 주변 잡균과 상한 음식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해주니 이 얼마나 대단한가.

홍탁삼합을 하나씩 차례대로 풀면 네 가지가 나온다. 잘 삭힌 홍어,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 탁주, 여기에 껍질과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 삶은 것, 마지막으로 묵은 김치 또는 삭은 김치다. 홍어와 탁주가 기본이고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가 곁들여지니 꼼꼼히 들여다보면 네 가지가 맞는 셈이다.

홍어라 하면 신안군 흑산도 인근에서 10월 한로(寒露)부터 4월 한식(寒食)까지 차가운 6개월여 동안 잡힌 암컷이 최고인데 8kg 이상 되는 상품(上品)은 현지 경매가로 60만원을 호가한다. 이 때가 맛도 좋다.

현지에선 오래 삭히지 않고 신선하게 먹지만 뭍으로 나오면 삭히는 게 일반적인데 삭히기 전에 홍어 간(肝) '애'를 먼저 꺼내 소금기름에 듬뿍 찍어 고소한 불포화지방산을 음미하고 내장을 말끔히 걷어 따로 탕 감으로 두고 각 부위별로 나눠 밀가루 부대든 헝겊으로 싸서 일정한 온도-섭씨 4∼5도에서 지푸라기를 넣고 삭히면 어떤 생선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을 낸다.

홍어 간을 먼저 깨내 먹는데요 절대 웬만한 사람에겐 주인이 내놓지 않는 게 이 홍어 간인 '애'입니다. 한번 달라고 해보시죠.
홍어 간을 먼저 깨내 먹는데요 절대 웬만한 사람에겐 주인이 내놓지 않는 게 이 홍어 간인 '애'입니다. 한번 달라고 해보시죠.김규환

간간히 들려오는 말이 있다.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에 모임이 있어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손님에게 가서 맛보라고 홍어를 싸줬단다. 생전 처음 맡아본 홍어. 흐물흐물하고 화장실 냄새까지 풍기는 톡 쏘는 지독한 걸 준다며 "썩은 걸 와주노?"하고는 쓰레기통에 쳐 박았다는 이야기다.

삭힌 것과 썩은 것은 구분함이 옳다. 분을 삭이는 것은 병이 되지만 홍어나 안동 '간 고등어'는 일정한 시간을 경과해야 그 맛을 낸다. 몇 년 전까지 홍어는 단지 전라도 음식, 그것도 광주·전남지역의 토속 음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화 일로에 있는 홍어는 이제 절대 미각을 소유한 뭇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인들이 한번 먹어보고는 짧은 영어로 "원더풀! 원더풀!"을 연발했다고 한다.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던 홍어전문점은 근래 3년 동안 세 배 가량 늘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홍어를 삭히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 먹으려면 그 만큼 공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홍어를 삭히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 먹으려면 그 만큼 공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김규환

국산 오리지널 홍어는 무슨 색깔일까. 글자 그대로 붉은 홍색이다. 누리끼리하지도 푸르스름하지도 하얗지도 않은 선홍색의 삭힌 홍어회를 가장 잘 맛보는 방법은 양념에 있다.

초고추장이 아닌 천일염을 빻아 고춧가루만 넣어 섞은 소금이다. 도톰하게 썰린 홍어회 한 점을 젓가락으로 들어 소금 두세 개만 찍어 눈감고 푸른 바다와 뻘을 생각하며 서서히 서너 번 씹어주다가 멈췄던 숨을 내쉬면 코끝 찡하게 자극한다. 씹기를 멈추고 입안에 오래 머물게 하면 입천장이든 입안 양 볼 껍질을 나도 모르게 벗겨주면 좋은 홍어 맛본 것이다.

인절미가 토도독 터져 나와 입안 가득 고이고 밥 칡이 끈덕지고 부드럽게 감싸는 게 흑산 홍어다. 국산만 그렇던가. 칠레산도 그에 못지 않으니 다이어트 욕심부리지 말고 산후조리 때 먹으면 오히려 여성에게 더 어울린다.

흑산도에서 막 잡아온 흑산수협 회센터의 홍어회. 신선한 홍어애가 돋보입니다. 먹고 잡다...
흑산도에서 막 잡아온 흑산수협 회센터의 홍어회. 신선한 홍어애가 돋보입니다. 먹고 잡다...김규환

삭힌 홍어, 삶은 돼지고기, 묵은 김치와 막걸리

탁주는 물 좋은 산자락 밑에서 전통 누룩을 써서 발효시키면 뽀글뽀글 닷새 안에 밥알이 동동 떠오른다. 맑은 술 먼저 마시고 술지게미를 빡빡 주물러 누룩 안에 든 술기운까지 짜서 물을 적당량 넣은 가양주(家釀酒)를 준비하자.

돼지고기는 흑 돼지나 흰 돼지에 상관없이 앞다리 살이나 목살을 덩어리 째 사서 통마늘, 대파, 생강 넣고 끓이다가 된장 풀어 슬슬 더 끓이면 되는 간단한 방법이다. 흐물흐물 해지지 않을 때까지 삶아 썰 때 비계와 살이 한 덩어리가 되게 넓적넓적 도톰하게 썰어 둔다.

묵은 김치는 2~3년 된 곰삭기 직전이어서 고춧가루 등 양념이 김치의 일부가 되거나 아예 양념 옷을 홀딱 벗은 걸로 이파리든 줄기든 다소 큼지막하게 썰어 나중에 홍어회와 돼지고기를 싸기 편하도록 마련한다.

자 그럼 홍어회 한 접시를 따로 놓든, 홍어와 돼지고기 김치를 예쁘게 돌려놓든 상관할 바 아니다.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까지 차려지면 콸콸콸 한잔 가득 딸아 놓고 대미를 장식하자.

오늘은 홍탁삼합 먹는 날이지 않은가. 두툼하게 썰린 돼지고기 한 점 접시에 깔고 가운데에 김치 한 장 놓고 마지막으로 홍어 한 점 맨 위에 올려 젓가락을 비슷하게 찔러 다시 집으면 돼지고기-김치-홍어 순서로 된다.

칠레산이지만 이 빛깔에 주목하십시오. 삭히고 요리하기 나름이랍니다.
칠레산이지만 이 빛깔에 주목하십시오. 삭히고 요리하기 나름이랍니다.김규환

홍어에 녹은 노폐물 막걸리로 말끔히 씻고 함께 먹는 즐거움까지 만끽

간신히 들어갈 듯 큰 덩어리를 체면불문하고 입 쩌억 벌리고 쏘옥 넣고 자근자근 질근질근 오도독 씹는다. 밥이 적당히 섞이면 잔을 "쨍!" 부딪히고 한 사발 쭈욱 마시면 예술적인 홍탁삼합 드디어 완성된다. 코, 목구멍, 식도, 대장에 머물던 노폐물은 홍어에 녹고 막걸리로 말끔히 씻어준다. 배부른 돼지보다 더 행복한 세계로의 초대라고나 할까.

한 번 먹고 또 먹고 마시고 또 마신들 탈 날일 없으니 안심하고 취하지만 않게 마시면 이 보다 더 좋은 횟감이 없고 이 보다 근사한 회식이 없다. 제 아무리 맛있기로 혼자서 먹으면 지출되는 돈 생각에 있던 맛까지 달아나니 직장동료, 고향선후배, 동호회 회원과 가족끼리 어울려 먹는 게 맛을 살리는 비결이다.

지난 12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첫돌잔치의 한 장면. 저를 찾아 보십시오.
지난 12월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첫돌잔치의 한 장면. 저를 찾아 보십시오.김규환

끝으로 홍어 좀 안답시고 홍어전문점 가서 덜 삭혔다고 떼쓰지 말고 그 빛깔과 씹힐수록 은근히 풍기는 은은한 향을 즐기자. 톡 쏘는 맛이 덜하다고 맛이 없다고 한다면 친구의 입맛은 자꾸만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것인지도 모른다.

홍어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결코 시장에 즐비한 활어 찾지 않는다. 친구에게 먹어보라고 권하는 사회, 새로운 맛을 느껴보는 즐거움은 저 멀리에 있지 않다. 또한 돼지고기만 축내는 그건 볼썽사나운 모습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홍어 먹으러 갔지 않은가.

독하거나 다소 익숙지 않은 맛이라면 향긋한 미나리를 한 개 집어넣고 잘근잘근 야금야금 씹어보자. 코끝으로 전해지는 봄 미나리의 냄새는 논하기에 아깝다. 그 다음은 '홍어찜'이다.

"자, 위하여!"
"자, 위하여!"김규환

덧붙이는 글 | 오늘 2월 27(금)은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2월 정기모임이 있습니다. 쇠 금(金)자를 막걸리 한잔 먹고 쓰면 '술'자와 비슷해진다고도 합니다. 홍어 생각나시거든 '홍좋사모' 정기모임에 나오셔서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장소는 서울 홍대입구전철역 서교호텔 후문에서 7시에 전화를 주시면 됩니다. 김규환 연락처 011-9043-4549

덧붙이는 글 오늘 2월 27(금)은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hongaclub)> 2월 정기모임이 있습니다. 쇠 금(金)자를 막걸리 한잔 먹고 쓰면 '술'자와 비슷해진다고도 합니다. 홍어 생각나시거든 '홍좋사모' 정기모임에 나오셔서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장소는 서울 홍대입구전철역 서교호텔 후문에서 7시에 전화를 주시면 됩니다. 김규환 연락처 011-9043-4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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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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