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신기하네, 냉장고 안에 있던 밤에서 싹이 나왔네."
"우와, 정말이네."
"아빠, 이리와봐요. 밤에 싹이 났어요."
"이 밤 심으면 밤나무가 돼요?"
아내와 아이들이 신기하다며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얘기들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더군요. 아무리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이라고는 하지만 냉장고 안에 있던 밤에 싹이 나다니요. 하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싹이 난 밤은 세 톨입니다. 녀석들의 꽁무니에선 노란 싹이 삐죽 솟아나와 있었습니다.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제 구실을 못하나 싶어 문을 열어봤지만 별 탈이 없이 제가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더군요. 녀석들은 냉장고 안에서도 들녘의 봄 소식을 감지하고 싹을 틔울 만큼 예민한 감각을 갖춘 것일까요? 내 짧은 소견으로는 신기한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기 힘들 뿐입니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싹이 튼 세 톨의 밤은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나머지 밤은 알맞게 삶아 맛있게 나누어 먹었지요. 아이들은 화분에 심겨진 밤에서 싹이 자라 흙 위로 솟아날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냉장고 안에서 틔운 싹이 과연 죽지 않고 자랄 수 있을까 지켜보는 제 마음도 설레이긴 마찬가지 입니다.
남녘의 봄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자꾸 올라오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봄을 맞으며 희망 하나를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냉장고에서 싹을 틔운 밤알의 생명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희망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www.giweon.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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