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다시 시위를 했다. 다른 모든 집단들의 민원성 시위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자신들의 요구를 밝혔다. 그들 주장의 핵심은 ‘다른 모든 경제주체들과 마찬가지로 의사들도 자유시장주의에 입각해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의료에 대한 규제를 풀어 달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에 의사들의 시위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 되던‘의료수가를 올려 달라’는 구호는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 버렸다. 사회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그렇듯이 의사들도 시위와 분쟁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사회를 움직이는 방식을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수가를 올려달라며 국민들에게 욕을 들으며 파업을 해보아야 일시적이 수가인상은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목을 죄어올 것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찾아낸 돌파구가 바로‘의료의 민영화’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문이 든다.‘언제 우리 의료가 공공적이었던가?’ 건강보험이 사회보험이라고 하지만 국민이 낸 보험료로 국민이 진료를 받는 것일 뿐이다.
국가는 지역의료보험이 도입될 초기에 약속했던 국가재정보조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뒤늦게 의료보험재정(건강보험으로 바뀌기 전에)이 바닥이 날 때야 의사들이 항의하자 정부의 대답은 “애당초 실현될 수 없었던 공약이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그런 식으로 도입되었다. 국가의 재정보조는 전혀 없는 채로 의료보험수가는 낮게 책정되었다. 처음에는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그래서 한 때는 병원에서 보험카드를 가져오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도 잠깐이었다. 급격히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재정지원이 없이 무조건 의료보험의 대상만 확대하는 방식인 전 국민의료보험은 빛깔만 좋은 개살구였다. 의료보험카드가 없을 때보다는 나았지만 실제 보장 내용이 너무 부실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이 부담하는 의료비는 전체 의료비용의 50%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보험재정이 없기 때문이다. 재정을 감당할 아무런 방법도 강구하지 않고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선거 때마다 확대하기만 해 온 무책임한 의료보험정책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의료수가를 묶어두는 방식으로, 다음에는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직장의보의 자금을 지역의보에다 끌어 쓰는 방식으로 유지해 왔다.
그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자 이젠 거꾸로 된 정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의료보험료를 올리고 본인부담금을 인상했다. 그리고 거꾸로 보험이 보장하는 내용은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아이디어에 따른 것이었다. 부실화된 공기업을 민영화하듯이 건강보험도 경제원칙에 따라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보험재정이 부실하니 보험재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한 것이다.
그런 정책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만성질환자들은 전보다 더 많은 보험금과 본인부담금을 지불하면서도 다시 병원에 다니는 날짜를 세기 시작했다. 일부 질환에 대해서는 보험급여를 하지 않는다는 정책이 남발되면서 환자들의 집단 항의를 받기도 했다. 병의원에 대해서는 수가를 오히려 내리기도 하고 수가를 무차별 삭감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의사들의 항의가 표출된 것이 이번 시위다.
이른바 의료에 대한 구조조정 결과다.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을 의료에 대입하니 이런 결과가 도출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의사들이 이번 시위에서 주장한 것은 신자유주의 사고방식을 그만두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료에 대해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방식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의료에 철저한 민영화 정책을 실시한 결과 싱가포르에서 성형수술과 각종 치료를 받기 위해 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듯이 우리 의료도 아예 민간의 자율에 맡겨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의사들의 이런 주장은 사실 바보스러운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자유경쟁체제에 노출될 경우 일부 의사들은 성공을 거두겠지만 대부분 의사들은 패배자가 될 것이다. 의사 사회 내부에 모순이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모순은 국민들에게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그러나 오죽 의사들이 시달렸으면 소위 잘 나간다는 첨단병원도 아닌 민영화의 희생자가 될 개업의사들이 이런 바보스런 주장을 했겠는가.
어떤 일이 있어도 의료의 민영화는 막아야 한다. 의료의 민영화는 곧 의료비용의 상승을 가져올 것이고 결국 대부분 서민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세상살이에 몸이 아파도 치료받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마지막까지 시장논리에 맞길 수가 없는 것이 바로 건강이다. 의료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야 국가의 경쟁력이 높아지듯이 훌륭한 공적의료의 존재는 우리 사회를 안정시키고 임금과 물가 인상의 압력을 낮추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을 무시하고 건강보험공단과 의사들의 싸움에 맡겨 둔 채 내 일이 아니라고 뒷짐 지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도대체 우리의 의료를 어디로 끌고 갈 생각인가. 한 나라의 복지정책의 근간에 대한 일관된 계획이 있기는 한 것인가? 정말 우리의 의료를 시장논리에 끌려가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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