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같은 사랑 이야기

신구비가 쓰고 이춘동과 박홍미가 그린 <단 한번 단 한 사람>

등록 2004.03.02 12:56수정 2004.03.0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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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단 한번 단 한 사람>
책 <단 한번 단 한 사람>이가서
어느 날 길을 걷던 나타나엘 수녀님은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한다. 이 이상한 노인의 가방 속에는 채집한 꽃들과 꽃씨들만이 가득하다. 이 책은 연고자도 없는 노인의 가방 속에 남겨진 노트를 보며 그의 삶을 생각하는 나타나엘 수녀님의 독백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림과 풀꽃같이 풋풋하고 소박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풀꽃처럼 작고 향기로운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주된 내용은 현덕이라는 노인의 과거와 그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노트에는 파란 볼펜으로 쓴 깨알같은 글씨들이 가득했다. 깨끗한 옷 한 벌은 배낭 속에 고이 넣어 둔 채, 거지처럼 남루한 옷을 입고, 노인은 풀꽃 씨 가득 담긴 배낭을 메고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걸까? 나타나엘 수녀는 노인의 삶이 너무 궁금했다."


이 기이한 행적의 노인의 가방에서 발견된 노트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트에서 화자인 '나', 현덕은 색소폰을 연주하며 음대를 다니던 학생이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한 여학생에게서 풀꽃 향기를 느낀다.

그녀가 방죽 길을 지나가고 나자 나는 그 길이 곧 텅 빈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는 어쩔 줄 모르는 허무감에 들고 있던 색소폰을 잔디 위에 툭 내려놓는다. 그녀가 지나간 방죽에는 들풀과 들꽃이 산들바람에 춤추고 나비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풀거린다.

이와 같은 첫 만남으로 그녀에게 반한 나는 우연한 계기로 그녀와 친해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어느 날 독이 있는 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독이 있는 꽃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이야기가 없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안나.

그녀를 보면서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차츰 알아간다. 병에 걸린 안나를 보며 안타까움과 고통과 사랑을 함께 느끼는 주인공의 마음은 점점 더 깊어가기만 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와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내일 밤은 사상 최대의 별똥별이 밤하늘을 수놓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천문대는 내일 밤에 시간당 1만 개가 넘는 유성우가 우리나라 상공에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시간당 1만 개의 별똥별이 나타나는 현상은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입니다."


함께 별똥별을 보고 좋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현덕의 사랑은 그렇게 순조롭지만은 않다. 그리고 안나의 병은 점점 깊어지기만 한다.

사랑하는 이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읽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랑에는 완성이 없듯이 그의 사랑 또한 안나를 잃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그의 사랑과 삶, 그리고 그 기록인 노트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들 모두가 누군가와 하나가 되기 위해 일생을 바쳐 일하고, 뭔가를 찾아 헤맨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고, 그 사랑을 찾은 것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가슴이 떨리게 만들고, 운명임을 느끼게 한 바로 그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는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 그의 여행은 풀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풀꽃의 씨를 받아 안나의 무덤가에 심어 주면서 그는 또 다른 사랑을 느끼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미 노인이 된 현덕은 모든 이의 일생에 그 사람이 아니면 절대 채워질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 사랑을 발견하고 느꼈기 때문에 축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순간이 와도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며,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순간을 놓쳐 버리고 만다. 하지만 현덕은 그것을 발견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다.

"아직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슨 꽃인지 알지 못한다. 꽃들은 저마다 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꽃이 저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마음을 주면 그렇게 곱고 아름답고 향기로울 수가 없다."

그가 터득한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 속에 존재하는 의미와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의 가방에 가득히 들어있던 다양한 꽃씨들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다양성과 작은 것으로부터 오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 또한 그의 사랑만큼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현덕 노인은 자신의 삶에 후회가 없었지만 이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남겨 놓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남긴 노트의 마지막에는 세상을 향한 그의 사랑과 따뜻함이 그대로 배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꽃이 저마다 아름답듯이 당신의 사랑도 내 사랑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이 이야기라도 남겨 놓고 싶었다. 혹시라도 사랑의 슬픔으로 사별의 슬픔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가 다정한 위로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노트를 덮는 나타나엘 수녀님은 유달리 따뜻한 별 하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는 그 별이 전해 준 따뜻한 느낌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그렇게 끝이 난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모든 이들의 가슴에도 나타나엘 수녀님처럼 따뜻한 별 하나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현덕 노인처럼 향기로운 풀꽃 향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 한번 단 한사람

신구비 지음, 이춘동 외 그림,
이가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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