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발표 '전선야곡'이 서울수복 장면에?

[분석] <태극기 휘날리며>, 노래 고증은 '낙제점'

등록 2004.03.05 09:08수정 2004.03.07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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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 강제규필름

<실미도>에 이어 순조로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작품답게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묘사하고 있는 6·25 전쟁 당시 상황은 비교적 고증에 충실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 평양의 시가지나 대구역 같은 공간적 배경은 물론 증기기관차, 구식 탱크, 각종 무기, 군복 등 크고 작은 소품도 사실에 가깝게 재현한 것이 많다.

그러면 '고증'이라는 잣대를 다른 부분에 적용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대규모 세트나 다양한 소품 같이 시각적으로 확실히 느껴지는 것 말고도 당시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동원된 장치는 많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화 곳곳에서 사용되어 청각적인 면으로 시대 분위기를 되살리고 있는 삽입 가요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하는 노래는 다섯 곡 정도 된다. 주인공 형제가 서울 거리를 누비는 첫 장면에서는 <오빠는 풍각쟁이>가 나오고, 주인공들이 대구역에서 징집되는 장면에서는 학도병들이 부르는 노래가 등장한다. 낙동강 전선에서 남북 군대가 대치하는 장면에 사용된 노래는 <가거라 삼팔선>이고, 서울 수복 이후 위문 공연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나는 열일곱살>과 <전선야곡>이다.

학도병들이 부른 노래를 제외한 네 곡은 모두 시대를 민감하게 반영한다는 대중가요인데, 과연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하는 대중가요 네곡은 고증면에서 얼마나 충실한 것일까?

옥의 티, 부적절한 삽입가요

우선 첫번째 곡인 <오빠는 풍각쟁이>(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박향림 노래)를 살펴 보자. 몇 해 전 어떤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해서 뜻밖에 히트(?)한 이 노래는 사실 1938년에 발표된 것이다. 단순히 시간 순서로만 보자면 이 노래가 1950년 6월 서울 거리에 울려퍼진다는 것이 그리 잘못된 설정은 아니다.

하지만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음반가게에서 최신곡도 아닌 12년 전에 발표된 노래를 크게 틀어 놓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당시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음반 가게에서 그런 식으로 틀었음직한 노래를 고르자면, 역시 1949년에서 1950년 상반기에 걸쳐 발표된 <신라의 달밤>, <달도 하나 해도 하나>, <비 내리는 고모령>, <저무는 충무로> 등이 제격이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보았겠지만, 음반 가게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음반 위에는 '박향림'이라는 글씨가 크게 써 있다. 모르긴 해도 이는 <오빠는 풍각쟁이>가 들리는 장면의 사실감을 더 살리기 위해 가수 이름을 일부러 써 놓은 것 같은데, 오히려 이 때문에 사실감이 더욱 반감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음반 라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래 제목이다. 1960년대 초까지 나온 유성기 음반에서는 예외 없이 제목을 큰 글자로 표기했으므로, 굳이 음반을 화면에 등장시키자면 '박향림'이 아니라 '오빠는 풍각쟁이'가 보여야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소품으로 사용된 것과 같은 음반 디자인은 당시는 물론 그 전에도 그 뒤에도 사용된 예가 없으므로, 음반이 돌아가는 장면은 차라리 나오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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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 강제규필름

두 번째 곡인 <가거라 삼팔선>(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은 선곡 자체는 일단 잘 되었다. 1948년에 발표되어 남북 분단의 비극을 노래한 <가거라 삼팔선>은 6·25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가장 많이 불린 인기곡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가거라 삼팔선>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해도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하는 <가거라 삼팔선>에는 문제가 있다. 가수 남인수는 <가거라 삼팔선>을 두 차례 취입했는데, 첫번째는 1948년에 고려레코드에서 나왔고 두번째 재취입판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유니버살레코드에서 나왔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 보자면 1950년 여름 낙동강 전선에서 울려퍼진 <가거라 삼팔선>은 당연히 1948년 초판이어야 하지만, 영화에서 사용된 것은 아쉽게도 재취입판이다.

초판과 재취입판은 전주, 반주, 창법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사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전쟁이 끝난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서 나온 재취입판은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은 헤맨다'라는 1절 가사를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한다'로 바꾸었고, 초판에는 없는 2절 가사를 추가하여 '자유여 너를 위해 이 목숨을 바친다'라는 표현으로 반공적인 느낌을 강화했다.

배우들 대사에 묻혀 노래 가사가 잘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기회가 된다면 귀를 세우고 한번 들어 보자.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오는 <가거라 삼팔선>은 분명 삼팔선을 헤매지 않고 삼팔선을 '탄'한다.

<나는 열일곱살> 부른 여가수들의 춤은 '오버액션'

세 번째 곡인 <나는 열일곱살>(이부풍 작사, 전수린 작곡, 박단마 노래)은 그나마 가장 양호한 경우이다. 역시 1938년에 발표된 이 노래가 만약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묘사되었다면 <오빠는 풍각쟁이>와 같은 어색함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열일곱살>은 무대에서 불리는 것으로 처리됐다. 가수 박단마의 대표곡으로 꽤나 인기가 있었던 노래인 만큼 다소 시간이 지난 뒤라도 무대에서 불린다는 것이 그리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다만 가수들이 <나는 열일곱살>을 부르는 장면에는 당시 실정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요즘처럼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나온 것인지 춤을 추기 위해 나온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에서 보자면 아무 것도 아니겠으나,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하는 여가수들은 <나는 열일곱살>을 부르면서 제법 그럴 듯한 춤을 곁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상당한 '오버액션'이다. 1950년대 후반까지는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 마이크 앞에 다소곳이 서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네번째 곡 <전선야곡>(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신세영 노래)은 고증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문제가 많다. 오리엔트레코드에서 <전선야곡>이 발표된 때는 1952년 5월. 영화에서 노래가 나오는 1950년 가을에는 이 노래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김좌진 장군이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 등장할 수 없듯이, <전선야곡>이 서울 수복 당시를 묘사하는 장면에 나올 수는 없다.

비록 <전선야곡>이 6·25 전쟁 당시 발표된 진중가요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고는 하나, 시간의 흐름을 뒤섞어 가면서까지 무리하게 삽입곡으로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사용되는 노래는 시가지 세트나 모형 탱크처럼 당시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 큰 돈이 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무신경하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마데우스>처럼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은 아니라 해도, 시대적 상황이 중요한 배경이 되는 영화라면 작품 가운데 등장하는 노래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고증 전반적으로는 기왕의 평가대로 제법 잘 된 작품이기는 하지만, 노래에 대한 고증으로만 보자면 아쉽게도 영락없는 낙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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