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히는 '등대풀꽃'

내게로 다가온 꽃들(30)

등록 2004.03.13 08:28수정 2004.03.1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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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풀꽃
등대풀꽃김민수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작은 꽃 속에는 소우주가 들어 있음이 보입니다. 봄이 오니 양지바른 산야는 물론이요, 길가에도 아주 작은 꽃들이 어느새 화들짝 피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간혹 꽃 중에서는 꽃보다도 더 예쁜 이파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꽃의 존재가 무색해지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쥐손이풀목 대극과의 등대풀꽃이 그렇습니다. 이파리의 모양새가 겹겹 쌓인 모습도 신기하지만 그 이파리 안에 보일 듯 말 듯 황록색꽃을 피우고 있는 자태는 작은 것의 아름이 얼마나 신비한지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김민수

등대풀꽃의 다른 이름은 오풍초와 택칠이 있습니다. 오풍초라는 이름은 꽃 모양새를 보시면 짐작이 가는 이름이고 택칠(澤漆)은 죽엽(竹葉), 대극(大戟) 등과 같이 한방에서 종양을 다스리고 항암 치료를 할 때 사용되는 약재명입니다.

등대풀꽃은 두해살이풀입니다. 온전히 두해를 살기 때문에 두해살이 풀이 아니라 가을철에 싹이 나와 이듬해 봄에 꽃을 피웁니다. 줄기를 자르면 흰 즙이 나오는데 유독 성분을 가지고 있고 뿌리도 굉장히 독해서 일반에서 그냥 사용하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식동물들도 잘 먹질 않는다고 하니 등대풀꽃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를 지키기 위한 보호책입니다.

독성도 잘 다스리고 조절을 하면 종기와 암을 다스리는 약이 된다는 것, 가을에 싹을 내기 시작해서 고난의 계절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운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을 것만 같습니다.

김민수

등대풀꽃의 꽃말은 '당신의 성격이 그렇게 냉혹하다면 우리는 그대의 마음을 돌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입니다. 다소 길고 여기서 '당신'이 누구며 '우리'는 누구인지 꽃말만 보아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일 보는 이가 '당신'이고 '우리'가 등대풀꽃이라면 좀 더 따스한 눈으로 우릴 바라봐 달라는 일종의 부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라면 등대풀꽃의 성격이 냉혹하다는 것인데, 무엇에 대해서 그런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멀쑥한 키에 작은 등불을 켠 것 같은 모습을 보면 전자의 해석을 붙여 주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김민수

지인이 찾아오셔서는 봄꽃 구경을 갈 수 있겠냐고 하십니다. 어떤 꽃이 보고 싶으신가 묻고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들보다는 우리 주변에 있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봄꽃을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불경스러운 이름을 가진 것들과 작은 것들을 먼저 소개해 드렸습니다. 큰개불알풀꽃, 개쑥갓, 광대풀꽃, 쇠별꽃, 냉이, 벌깨냉이, 꽃마리, 개아욱 그리고 등대풀꽃에 이르니 꽃들이 작기도 하지만 꽃 같지도 않아 시시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는 꽃들이 왜 불경스러운 이름이 많고, 작은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 두었던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십니다. 그 이야기는 학술적이거나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상상에 따른 것이지만 여러분들에게도 들려드리겠습니다.


김민수

제주에서는 밭에 심은 농작물을 제외하고 밭에 나는 풀들은 모두 '검질'이라는 이름으로 통칭을 합니다. 참으로 간편한 분류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고 가꾸는 작물이 아닌 것은 그 이름을 가지고 있더라도 '검질'이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밭에 있는 냉이도 검질, 광대풀꽃도 검질, 쇠별꽃도 검질, 나도개미자리도 검질, 개불알풀꽃도 검질입니다.

그러니 검질을 할 때(김을 멜 때) 이들은 하나 둘 뽑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꽃이 커서 사람들 눈에 잘 띄었다가는 더 쉽게 뽑혀질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꽃이 작아지고 때로는 꽃같지도 않은 모양새의 꽃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런지요.

그러면 이름은 왜 그러냐구요? 그것은 우리 조상님들의 마음 따스한 배려입니다. 비록 너희들이 뿌리를 잘못 내려 뽑아내긴 하지만 어디에 가서든 제자리 잡고 오래오래 살아주라는 염원을 담고 있는 이름들입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왜 옛날에 역신을 쫓는다고 아이들 이름을 지어 줄 때 민간에서 오래 살라고 '개똥이' '쇠똥이' 이런 이름도 지어주었잖아요. 그럴 듯한 상상력인가요?

김민수

그런데 저는 등대풀꽃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는 어둠을 비취는 삶에 관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암과 종기를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가을에 피어나 고난의 계절 겨울을 보내고 피어났으니 어두운 밤바다를 지키며 밤바다에 나가있는 어부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다가가는 등대의 이름을 닮았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난을 몸소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입니다. 험한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등대의 불빛은 생명의 불빛이요, 희망의 불빛입니다. 망망대해에 비하면 보잘 것없는 작은 등대지만 어둠이 깊을수록 밝게 빛남으로 자신의 존재를 아름답게 만들어갑니다.

김민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면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서 남의 아픔이야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론 막대한 힘을 이용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아픔을 당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제 욕심에 눈이 멀고, 귀가 막혀서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입니다. 가만히 두면 온 몸을 썩게 만드는 종양 덩어리입니다. 이런 암 덩어리와 종기를 제거하려면 아픔이 수반됩니다. 그러니 그 아픔은 어쩌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 위한 통과제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등대풀꽃이 종기를 치료한다고도 하고, 항암효과도 있다고 하니 등대풀꽃을 닮은 사람들이 많으면 이 나라도 더 아름다워 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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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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