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언론이 이제 공영방송까지 흔드나?

[보도분석] 공영방송 탄압에 나선 정치권과 상업언론의 문제점

등록 2004.03.17 14:50수정 2004.03.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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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일간지인 <조선일보>는 이달 초, 창간 84주년을 맞아 '포위된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 사설은 오늘날 한국의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가 중대한 고비에 서 있다고 진단한다.

대학에서 언론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시민들에게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며 합리적인 토론과 대화를 이끌어야 할 언론은 본분을 잃고 스스로를 권력화했다.

그러나 필자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조선일보>가 스스로를 '독립언론'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과, '대의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10일자 <디지털 조선>
10일자 <디지털 조선>조선일보
이 신문은 앞의 사설에서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핵심 사명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권력'이 더 이상 정치권력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오히려 언론이 상품의 하나로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본권력이야말로 상업언론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위협이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이라는 것이 반드시 집권여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당연하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거대야당은 '집권야당'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으며, 그 권력은 대통령을 직무정지시키는 수준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조선일보>가 스스로를 '독립언론'이라고 부를 때, 이 '독립'은 언론의 중립성을 저해하는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단순히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그중에서도 '여당'으로부터의 독립만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협소한 의미의 '독립성'마저 이 신문의 일관된 입장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신문은 대통령이 국민의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거나 '굴욕외교'로 비판받았던 한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낸 대미인식에 대해서는 <조선일보>가 예의 그 추상같은 '비판언론'의 역할을 수행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스스로를 '비판언론'화 한 시점이 보수당이 권좌에서 물러난 시점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이 신문의 '독립성'이란 보수지배층의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에의 종속을 의미할 뿐이다.

발의에 불참했던 의원들을 대상으로 표결 참여자를 조사한 <조선일보>의 10일자 기사
발의에 불참했던 의원들을 대상으로 표결 참여자를 조사한 <조선일보>의 10일자 기사조선일보
거대야당이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 탄핵 표결을 강행할 때에도 <조선일보>는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탄핵가결정수 육박," "3~4명만 더 있으면 승산" 등의 기사를 내보내며 정치권의 표결참여를 유도했다.


이 신문은 아예 탄핵발의에 불참했던 의원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해 입장을 묻는 '조사'를 통해 그 결과를 속보로 내보내기도 했다. 언론보도인지 정당활동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행위가 '독립언론'을 자임하는 언론에 의해 수행되어 온 것이다.

국민들의 예상을 뒤집고 탄핵이 표결되고, 그 결과 야당의 무모한 정치적 도박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여론이 들끓자, 야당은 그 책임을 "어리석은 백성"들과 그들을 자극한 "불공정한 방송"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용감하게도 두 야당의 대표는 소속 의원들을 이끌고 방송사를 찾아가 '국민들의 위기의식을 고조시킨' 죄를 물었다.

'독립언론이 포위되었다'는 <조선일보>의 분석은 정확하다.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국민들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언론기관이 "사장, 국장 나오라"고 협박하는 정치인들에 포위된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언론상황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이 어처구니 없는 언론탄압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이를 엄중히 비판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후 <조선일보>에 실렸던 사설은 "방송은 이성을 찾아야 한다"와 "방송위원회는 TV도 보지 않는가"였다.

이 신문은 첫번째 사설에서 방송이 "중심을 잃고 국민을 한쪽으로 몰아가 사회를 흔들려는 시도를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럴 바에야 시청료로 공영방송을 유지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주장한다.

두번째 사설에서는 아예 방송위원회를 협박하면서, "방송위원회가 만일 살아 있는 기관이라면 일련의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 사과, 해당 프로그램 정정·중지, 편성책임자나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같은 방송위 규정에 따른 조치를 할 시늉이라도 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편다.

방송의 '불공정보도' 여부를 묻는 <디지털조선>의 서베이. 설문 사흘째인 17일 오후 2시 현재까지 '공정보도'라는 응답자가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방송의 '불공정보도' 여부를 묻는 <디지털조선>의 서베이. 설문 사흘째인 17일 오후 2시 현재까지 '공정보도'라는 응답자가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조선일보
발의 불참자에게 연락까지 취하며 탄핵정국을 유도하던 신문이 많은 시간을 탄핵관련 보도에 할애했다는 이유로 방송사 제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내용규제를 요구하는 이 주장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도 위배될 뿐 아니라, 언론이 스스로 언론탄압을 요구하는 몰상식한 행위다.

이 신문은 방송위원회에 특정 입장을 강요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방송위원회가 살아 있는 기관이라면" 당연히 방송사를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해당기관의 판단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찾아볼 수 없다.

여론의 70% 이상이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을 '매개(mediate)'해야 하는 언론에 반대 입장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탄핵찬성 입장을 일관되게 강조하던 <조선일보>로서 느끼는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위기'를 '위기'로 전달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왜곡보도다.

편집권은 <조선일보>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도 동등하게 누려야 하는 고유의 권리다. 스스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사로서 <조선일보>는 자사의 왜곡된 보도에 대해서는 아무 반성도 없이 '방송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민주국가 가운데 외설(obscenity)과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의 문제를 제외하고 방송사의 편집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군사독재시절의 보도지침제도를 다시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야당과 보수언론은 방송탄압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에 "언론탄압"이라고 맞서고 자사의 건물에 날아드는 계란에서 "언론부재"의 위기를 말하던 신문들이 이제는 방송사를 위협하는 정치인들의 주장을 대변하면서 공영방송의 수신료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데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 발의 전 한나라당의 조심스러운 입장을 "어정쩡"이라는 부정적 평가어로 묘사하고 있다.
탄핵 발의 전 한나라당의 조심스러운 입장을 "어정쩡"이라는 부정적 평가어로 묘사하고 있다.조선일보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이는 그 신문이 주장하는 대로 '정치권력이 직접민주주의를 명분으로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과 직거래'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뜻을 '대변(represent)'해야 할 국회와 언론이 도리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탐욕만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국민들이 왜 채 추위도 가시지 않은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가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국민의 뜻을 정치권에 전달하고 그들 사이에 토론과 대화의 다리를 놓아야 할 언론이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국민의 선택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언론이라는 단절되고 왜곡된 말길(communication)을 거부하고 직접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국회가 국민의 권력을 앗아가는 비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이 국민의 목소리가 정치인과 언론에 의해 "포퓰리즘 독재"로 불리지만, 정상적인 사회에서 이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 시기에 '역사의 심판'이 무관심과 비겁함의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란 행동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는 달력을 넘겨 투표일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지난 달력 뒷 장에 '신문사절'이라고 쓰는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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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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