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촛불로 '대구=수구' 오명 벗어야"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사람들 2] '목도리 아저씨' 이정하씨

등록 2004.03.17 19:39수정 2004.03.18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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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6일 촛불 문화제에 목에 보호대를 두루고 나온 이정하씨.

지난 16일 촛불 문화제에 목에 보호대를 두루고 나온 이정하씨. ⓒ 허미옥

'탄핵 무효! 국회해산! 촉구' 대구 촛불문화제 5일째인 지난 16일. 300여명의 인원이 모여 희망의 촛불을 지키고 있었다. 이날도 수많은 논객들이 마이크를 들고 현실 정치의 문제점을 성토했는데, 그중 목에 보호대를 두른 50대 아저씨(시민들은 그를 '목도리 아저씨'라 부른다) 한 분의 이야기에 많은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다소 쉰 듯한 목소리에 목에 두른 보호대까지. 그는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하루도 촛불시위에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우선 목에 깁스한 이유부터 설명했다.

"이 자리가 끊어지면 안된다는 바람으로, 5일째 참석하고 있다"며 "잘 사용하지 않던 오른팔을 너무 썼더니, 어깨가 많이 결렸다"고 한다. 결국 "정형외과 의사가 목에 두르는 보호대 하나를 던져주었다"는 것. 그는 무대에 서서 연신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50대인데요,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최병렬, 조순형, 홍사덕 등도 모두 50대 넘었죠., 그들을 대표해서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상식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엄청난 박수를 받고 그 자리를 홀연히 떠났던 그 '목도리 아저씨', 이정하씨를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17일 오전에 다시 만났다.

다음은 이정하씨와 일문일답.

- 촛불행사 불법논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선관위와 경찰청장은 다수당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행사는 누가 보더라도 시비를 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의식이 매우 성숙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서울 광화문 행사의 경우, 사회자의 '종로구청 청소부 아저씨가 고생하지 않도록 주변의 쓰레기를 모두 주웁시다'는 이야기에 대부분 시민들이 동의하고 있지 않은가?

집회 때 정보과 형사들이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을 봤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 장면을 봐서 느낌이 새로웠다. 70년대는 더욱 노골적이었지만, 요즘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 50대를 대표해서 시민들에게 사과했는데?
"50대는 참으로 많은 세월을 겪은 세대다. 4월 18일(이씨는 '3월 28일'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출생일은 4월 18일이었다)을 아는가? 아마 이승만 대통령 생일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날만 되면 서울운동장 축구장에서 매스게임도 했다. 학교 근처에 비행장이 있었는데, 미국 대통령이 오면 수업을 하지 않은 채 성조기를 흔들기 위해 동원되기도 했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ㅁ씨는 아직도 한나라당에서 고문직을 가지고 있더라. ㅁ씨는 선거철이 되면 초등학교 아침 조회시간에 교실에 들어와서 자신의 이름이 찍힌 노트를 나눠주기도 했다. 초등학생인 우리에게도 불법 선거운동을 행했던 것이다.

어릴 때 국회의원이 아직도 정치하고 있고, 무슨 행사 때마다 어린 학생이 동원되는 것은 여전하다. 50대인 우리가 잘못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서, 그날 시민들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했다."

- 최근 언론들은 '탄핵 찬성=반노, 탄핵 반대=친노'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던데?
"조중동만 생각하면 혈압이 오른다. 알다시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탄핵이 잘못되었다고 70%가 주장하고 있지않은가? 현재 촛불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보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그들은 도저히 국회에서 일어난 일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이 시위는 노사모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시민단체가 주도하고 있지않나?

이와 같은 주장은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하고 있다. 도대체 조중동 기자들이나 정치권 중에는 20~30대 젊은 기자나 보좌관들이 없는 것 같다. 시민운동이 무엇인지 분석도 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브리핑도 한다면 도저히 그런 주장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 어제 행사장에서 이번이 '대구는 수구꼴통'이라는 오명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했는데.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서 대구를 검색해보면 온통 수구, 꼴통 등의 이야기 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런 오명을 안고 살 것인가? 이번 기회에 '대구시민들도 민주주의에 대한 바람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점을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었으면 하다. 특히 정치권이 시민, 특히 대구시민들을 무서워 했으면 한다.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국회 배지 달아주니, 그들은 얼마나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본다면, 현재 대구에서 촛불행사에 나오는 시민들은 너무 적다. 이래 가지고 그들이 우리를 무서워하겠는가? 그렇게 많은 대학이 있는 곳이 대구경북인데, 도대체 학생들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집회를 할 때 그 군중이 반월당 로터리까지 쭉쭉 뻗어나갈 수 있도록 우리가 모여야 정치권들이 뜨끔할 것 아닌가?"

- 이 사안을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대구사람이 폐쇄적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만든 주원인은 언론이다. 조중동 등 영향력 있는 언론들이 끊임없이 이분법적인 논리를 양산시키고, 시민들의 의사표현을 혼란 등으로 표현하니, 대구지역시민들은 그들의 논리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판단의 근거 자체를 흐리는 것 아닌가? 그러니 대구시민 대부분이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97년 대선 때 'DJ - 이회창'을 두고 투표를 이야기할 때, 이회창 후보를 선택한 측은 '그가 좋은 이유'보다는 'DJ가 싫기 때문'이라고 응답한다.

이번이 대구시민들이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우리 서로 노력해서 '보수, 꼴통, 폐쇄적'인 대구 이미지를 벗을 수 있도록 대백(대구백화점) 앞 촛불을 끝까지 지켰으면 한다."

4월 15일 그는 이런 뉴스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한다.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사회로 한 단계 거듭나는데 대구경북시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동안 감춰져 있던 대구경북시민들의 분노와 개혁의지가 한꺼번에 쏟아진 이날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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