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관심에 비해 탄핵관련 행사에 참여 저조한 대학생들

등록 2004.03.18 03:50수정 2004.03.1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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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7일 연세대학교 민주광장에서 열린 '연세인 해오름식 총궐기대회'

17일 연세대학교 민주광장에서 열린 '연세인 해오름식 총궐기대회' ⓒ 이정은


17일 오후 1시 30분. 연세대학교 민주광장에서는 '해오름식 연세인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등록금 인상 문제와 탄핵 반대를 연계시켜 진행된 이날 궐기대회에는 각 단과대학생회 학생들을 중심으로 100여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오늘 오후 1시 30분 이 곳 민주광장에서 해오름식 연세인 총궐기대회가 열립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학우들께서는 무대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행사 시작 전,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하는 남학생의 목소리가 유난히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민주광장을 사이에 두고 거리를 지나는 많은 학생들 중 무대 앞으로 모이는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방송이 나가기를 몇 차례. 1시 30분이 되자 각 단과대학별로 깃발 아래 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해 행사가 시작될 즈음에는 7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대학가에서는 운동권 학생회건 비운동권 학생회건 야당의 일방적인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비판하며 학생들도 항의에 적극 나서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87년 6월 항쟁의 대학가 광장 문화가 되살아 나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날 행사의 학생 참여율은 매우 저조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배진우(수학 4년)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은 학기 초라서 학생들의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라며 "앞으로는 100~2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할 것 같다"고 예측했다.

행사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학생들이 모여들긴 했지만 끝까지 참여한 학생은 100여명 정도였다.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은 무관심 일색이다. 무대 위에서는 사물놀이를 하고,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해도 나머지 학생들은 부지런히 제 갈 길만 갈 뿐이었다.

한지숙 법대학생회장(법학 4년)은 무대 위에서 "추위에 떨며 앉아 있는 한 줌도 안 되는 참가 학생들과 옆으로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학생들 사이의 엇갈린 행보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며 낮은 참여율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중앙 도서관으로 향하던 새내기 차민재(의예 1년)씨는 "지나치게 과격하지만 않다면 학생들이 자기 의사를 밝히는 이런 행사는 나쁘지 않다"며 "오늘은 수업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나의 의사와 행사 목적이 일치한다면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오늘 행사가 있는지도 몰랐다는 이모(24)씨는 "행사의 주제(등록금 인상과 탄핵 반대)에는 공감하지만, 내가 참여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할 테니까 굳이 참여하지 않는다"며 "오늘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명규 부총학생회장(정치외교 4년)은 학생들의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로 "행사가 수업 시간과 겹치는 문제가 있고, 아직까지 단과대학을 중심으로 한 우리 대학이 튼튼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최군은 '6월항쟁 광장 문화의 부활'이라는 최근의 보도에 대해 "아직까지 대학가에 부족한 것이 많아, 그런 커다란 투쟁을 위해서는 소규모부터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며 "그러나 이제 포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이 정도면 많은거죠"
[토막 인터뷰] '3/20 반전행동' 위한 모금하는 이나라 양

▲ 한 학생이 모금 후 전쟁반대 서명을 하고 있다.
ⓒ이정은
무대 위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는 동안, 민주광장의 한 편에서는 ‘3월 20일 반전행동’을 위한 학생들의 모금을 이뤄지고 있었다. 이 날 모금을 맡은 이나라(사학과 2년)씨는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매년 학생들의 행사 참여율은 저조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행사가 어떤 쟁점과 주장을 가지고 열리는지도 중요한데, 학생들의 참여가 부족하다 보니 행사 준비측에서 자신감을 많이 잃어 (쟁점과 주장 면에서)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학생들의 모금 참여도는 어떠하냐”는 질문에 이 양은 “모금이 높은 반전여론에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높은 편”이라며 “언제 모금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양은 “작년에 이라크 파병안이 통과되었을 때에는 모금이 잠시 주춤했으나, 전쟁이 계속되다보니 다시 모금율이 높아진다”고 말하고 “1시간 30분 동안 6명의 개인후원자를 확보하고 10명으로부터 11000원을 모았다”며 뿌듯해 했다. / 이정은

같은 날 오후 6시,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는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관련한 '민주주의 수호' 강연회가 열렸다. 이 날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강정구교수의 강연에는 70여명의 학생들이 강연회에 참여해 현 탄핵 정국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2시간이 넘는 강연 내내 탄핵 정국에 관심을 보인 참석 학생들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강연 내용을 꼼꼼히 받아적는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질문을 하겠다는 학생들로 예정 종료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

a 17일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열린 '민주주의 수호' 강연을 듣고 있는 학생들

17일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열린 '민주주의 수호' 강연을 듣고 있는 학생들 ⓒ 이정은


이 날 강연에 참여한 김경호(신문방송 2년)씨는 "탄핵 정국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얻고자 왔다"며 "학생 대다수가 탄핵에 관심 있어 하는데도 강연회에 참여한 학생이 적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김씨는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공부가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던 나와는 달리, 도서관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분위기여서 씁쓸했다"고 말하고,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행동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을 다들 느끼고, 최소한 총선에서라도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한편, 새내기 장모(경영 1년)씨는 "아직 학생들 사이에는 '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다수"라며, "학생회측이나 문제 의식을 가진 학생들이 여론을 형성하여 '어린 다수'를 이끌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날 강연회를 주관한 학생회측 류이현(중문 4년)씨는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학교 게시판에는 온통 탄핵 이야기일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이 대단하지만, 오늘 강연회 인원은 평균 수준"이라고 전했다. 류씨는 "학생들이 탄핵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는 있지만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것이라 낙천적으로 믿고 있다"며 참여율 저조의 이유를 조심스레 분석했다.

강연회 후 참가 학생 40여명은 "배운 것은 실천에 옮여야 한다"며 교문 앞에서 촛불집회를 갖고, 신촌 현대백화점 앞으로 집회를 나가려다 미리 배치된 전경 200여명에 의해 길이 가로막혀 8시 30분부터 30여분간 전경과 대치하기도 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그의 칼럼에서 "젊음이란 불의에 항거함"이라며 "젊은이들이여 거리로 나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정의의 횃불을 들고 정의의 벌판으로 뛰쳐 나가라"고 했다.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느끼지만 정작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 대다수 오늘날의 대학생들을 보면서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의 대학생들의 자세가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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