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분노'는 역사를 새로 쓴다

[태우의 뷰파인더 9] 경찰은 평화적 시위를 허하라

등록 2004.03.20 10:21수정 2004.03.2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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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유행하는 말 중에 "불의를 보면 잘 참습니다"라는 우스개가 있다. 전반부에 나오는 '불의를 보면'이라는 말로 미루어 '절대 참지 않습니다'가 나와야 하는데 '잘 참습니다'가 나와서 웃음을 주는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청자의 예상을 배반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자기 소개를 할 때 쓰이는 이 우스개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씁쓸해진다. 나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불의는 얼마든지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이기주의가, 내가 왜 강력한 불의의 대상과 대결해서 피해를 입어야 하느냐는 개인주의가 그 농담에 담겨있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골든하베스트
이소룡은 동양에서 할리우드로 진출해 성공한 최초의 배우였다. 그의 영화는 액션 영화의 공식에 충실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소룡은 마지막까지 주먹을 아끼며 싸움을 걸어오는 악당을 상대해주지 않는다.

악당들이 까불며 이소룡을 열 받게 하지만, 그는 참고 또 참는다. 왜냐하면 그는 거리의 양아치가 아니라 진정한 무도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주먹을 뻗었다 하면 한바탕 '난리'가 펼쳐지고, 악당들은 멋모르고 까분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바로 이 상황에서 이소룡은 '아비요요요~'하는 괴성을 지르며 악당들을 박살 내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약자로 살아오던 관객은 이소룡에게 감정이입을 해, 함께 허공을 날아오르며 이단 옆차기를 하게 된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플롯이 허점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가 백인지상주의에, 인종차별까지 겸하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그의 ‘정당한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참는 것이 선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이러한 논리를 바로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속담이 대변하고 있다. 이 속담이 의미하는 바는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성경 구절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분노해야 할 때가 있다. 참는 것이 불의를 인정하는 순간이 그렇고, 참는 것이 불의에게 승리를 안겨줄 때 그렇다. 그 순간만큼은 정당하게 불의에 대항해야 한다.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은 일본의 중국 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소룡은 스승의 죽음 뒤에 감추어진 음모를 눈치챈다. 그리고 일본군이 그 음모를 꾸몄다는 걸 깨닫게 된 그는 정무문의 슬로건이 적힌 판자를 부셔버린다. 그 슬로건이 바로 ‘忍’였다. 동료와 선배들은 스승이 정한 도장의 슬로건을 부셔버린 이소룡을 탓하지만 이소룡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우리가 왜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가 왜 이토록 비굴하게 살아가는지 아십니까? 왜 우리가 스승님을 지켜드리지 못한 줄 아십니까? 그건 바로 우리가 너무 참았기 때문입니다.”

김태우
역사적으로 볼 때, 불의한 집단은 강력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강력한 권력과 힘으로 진실을 호도하고 진실을 왜곡한다. 또한 불의한 세력은 귀는 있지만 듣지 못하고, 가슴은 있지만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 건 최면에 빠져 '불의가 정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주체인 시민은 이러한 불의를 용서할 수 없고, 시민만이 그들의 착각을 깨우쳐줄 수 있다. 시민은 분노한다.

역사는‘정당한 분노’에 의해 새롭게 쓰여졌고, 앞으로 전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참는다’는 행위는 비겁한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 조건이 있다.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고 하더라도 21세기 시민사회에서는 반드시 '정당한 수단과 방법'으로 그 분노가 표출되어야 한다. 극단적인 방법은 오히려 '정당한 분노의 격'을 떨어뜨린다.

탄핵 정국을 지켜보며 나는 이소룡을 떠올렸고, 정당한 분노를 떠올렸고, 정당한 분노를 이루어내기 위한 정당한 수단과 방법을 떠올렸다.그리고 "불의를 보면 잘 참습니다"란 우스개를 떠올렸다.

경찰은 탄핵무효운동을 불법시위로 규정 지었다. 하지만 시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위하고 있다. 아무도 그들의 정당한 시위를 막아서는 안 된다.

시민은 여태껏 참을 만큼 참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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