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하베스트
이소룡은 동양에서 할리우드로 진출해 성공한 최초의 배우였다. 그의 영화는 액션 영화의 공식에 충실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소룡은 마지막까지 주먹을 아끼며 싸움을 걸어오는 악당을 상대해주지 않는다.
악당들이 까불며 이소룡을 열 받게 하지만, 그는 참고 또 참는다. 왜냐하면 그는 거리의 양아치가 아니라 진정한 무도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주먹을 뻗었다 하면 한바탕 '난리'가 펼쳐지고, 악당들은 멋모르고 까분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바로 이 상황에서 이소룡은 '아비요요요~'하는 괴성을 지르며 악당들을 박살 내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약자로 살아오던 관객은 이소룡에게 감정이입을 해, 함께 허공을 날아오르며 이단 옆차기를 하게 된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플롯이 허점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가 백인지상주의에, 인종차별까지 겸하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그의 ‘정당한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참는 것이 선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이러한 논리를 바로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속담이 대변하고 있다. 이 속담이 의미하는 바는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성경 구절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분노해야 할 때가 있다. 참는 것이 불의를 인정하는 순간이 그렇고, 참는 것이 불의에게 승리를 안겨줄 때 그렇다. 그 순간만큼은 정당하게 불의에 대항해야 한다.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은 일본의 중국 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소룡은 스승의 죽음 뒤에 감추어진 음모를 눈치챈다. 그리고 일본군이 그 음모를 꾸몄다는 걸 깨닫게 된 그는 정무문의 슬로건이 적힌 판자를 부셔버린다. 그 슬로건이 바로 ‘忍’였다. 동료와 선배들은 스승이 정한 도장의 슬로건을 부셔버린 이소룡을 탓하지만 이소룡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우리가 왜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가 왜 이토록 비굴하게 살아가는지 아십니까? 왜 우리가 스승님을 지켜드리지 못한 줄 아십니까? 그건 바로 우리가 너무 참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