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영
부엌칼로 가장 체면 좀 세우고 이번에는 톱과 낫을 들었습니다. 지난 폭설로 쓰러진 대나무 숲을 정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납작 엎드려 있던 어지간한 대나무들은 눈이 녹으면서 생기를 되찾아 벌떡 벌떡 일어섰지만 밑 부분이 쩍쩍 갈라지고 쪼개진 채로 쓰러진 대나무들은 전혀 일어서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폭설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은 대나무들을 톱으로 베고 낫으로 쳐내 적당한 크기로 잘랐습니다. 그리고는 오이며 토마토, 고추 버팀목으로 쓰기 위해 닭장 옆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낫이 시원찮아 보였습니다. 대나무를 함부로 쳐대서 그런지 무쇠 낫의 날이 죽어버렸던 것입니다. 숫돌에 무뎌진 낫을 갈았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숫돌에 칼날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무딘 칼날을 세우는 것은 나태한 자신을 세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듯싶었습니다.
칼을 갈며 내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칼날은 마음과 같았습니다. 너무 날카로우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해를 입힐 것이고 무뎌지면 타인에게 짐을 떠넘겨줄 뿐만 아니라 내 몸조차 녹슬게 할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불의와 위선이 설쳐대는 이 땅에서 날카롭지도 무디지도 않은 중용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칼날은 너무 날카로우면 타인에게도 해를 입히는 법
저녁 6시 30분부터 공주 시내에서 '탄핵반대 민주수호' 집회가 있었습니다. 무딘 날을 세우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식구들과 함께 집회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비장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독 안에 든 쥐를 잡으러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자칫하면 독 안에 든 쥐한테 물리기도 합니다만 그래 봤자 독 안에 든 쥐가 아닙니까? 불법집회로 규정지어 놓았다지만 전혀 꺼림직하지도 않았습니다.
"잘 됐다, 겸사겸사 오늘 밖에 나가 외식이나 하자."
시내로 나가는 길에 모처럼만에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촛불 켜고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못된 사람들 못된 짓 못하게 촛불 들고 행진한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는데 외식까지 한다니 아이들이 방방 떴습니다.
시내로 나가는 길에 초등학교 3학년생인 큰 아이 인효가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재차 물었습니다.
"작년에는 미군들 땜에 촛불 집회했는데 이번에는 왜 하는겨?"
"이번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전혀 우리나라 사람들 같지 않은 사람들 땜에 그러지."
"어떤 사람들인데?"
"우리 집 갑돌이나 돌진이보다도 못한 사람들이지."
"사람이 어떻게 개보다 못해?"
"아무리 먹을 것이 많아도, 더 많이 먹겠다고 닥치는 대로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아주 못된 사람들을 개보다 못하다고 말하기도 하는 겨."
"아까는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을 자기들 맘대로 쫓아 내려는 사람들이라며…."
"그 사람들이 대통령을 쫓아 내려 하는 것은 더 많이 먹으려고 그러는 거나 마찬가지여. 우리 집 갑돌이나 돌진이는 서로가 먹이를 빼앗아 먹겠다고 싸우지는 않잖아. 배부르면 가만히 있지?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배 터지도록 먹고도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있는 것까지 빼앗아 먹겠다고 그러니까 우리 집 개들보다 못한 거지."
"왜 그러는데?"
"아빠도 그게 궁금혀. 그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