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에 맞설 만한 제 음악 한 번 들어보실래요?

[인터뷰]네오 소울의 꽃, 솔 플라워

등록 2004.03.20 10:01수정 2004.03.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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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솔플라워

솔플라워 ⓒ 예전미디어

한국 가요계에는 가창력 가수들이 너무도 많다. 여기서 가창력이란, 고음을 오랜 시간 고음을내 지를 수 있는 튼튼한 목청을 의미한다. 그만큼 보컬에 있어 세심한 표현력, 절절한 감성의 분출, 미묘한 표정의 변화와 같은 ‘멘탈’의 측면보다는 ‘기능’이 중시되고 있단 말이다.

실제로 수많은 목청 좋은 여가수들이 ‘R&B 디바’임을 과시하며 가요계에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에는 힘과 기교는 있을지언정,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왜 하나같이 휘트니 휴스턴(Whitney Huston)이 되려고만 하는 것일까? 노래 잘 하는 것과 고음을 내지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그런 면에서 신인 가수 솔 플라워(Sol Flower)의 존재는 특이하고도 각별하다. 이 여가수는 충분히 그녀들처럼 ‘빽빽 내지를 수 있는’ 좋은 목청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그 흔한 ‘가창력’으로 승부하기를 거부한다. 노래를 가볍게, 편안하게, 필 받는 그대로 부른다는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다. 네오 소울이라는 한국 땅에서는 불모에 가까운 음악 스타일을 내세우고, 여성간의 우정과 연대에 대해 노래한다. 거기다가 방송 출연도 없어 많은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런 배경 아래 솔 플라워와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그녀가 가요계에서 자신의 독특한 입장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지, 네오 소울이라는 장르가 정말로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인지, 다음 음반에서 그 흔한 ‘가창력 가수’로 전향할 위험은 없는 지 필자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 어떤 대답이 돌아왔는지는 본문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

-옛날 얘기부터 여쭤볼게요. 중고등학교를 체육학교로 다니셨네요. 육상선수 시절 얘기 좀 들려주세요. 그리고 육상 선수로서의 경험이 가수 활동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했어요. 사실 어렸을 때 꿈은 노래하는 사람이 되는 거 였는데, 운동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어요. 때문에 녹음할 때 체력적인 면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운동하면서도 음악과 관련될 기회가 있었나요?
"제대로 시작한 건 고3 때부터구요. 학교에서 축제가 있으면 항상 제가 나가서 노래를 불렀어요. 육상 감독님께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노래를 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친구들이 제 노래를 들으며 좋아하는 모습도요.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그 모습을 보고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엔 어떤 음악들을 주로 들으셨는지…
"지금도 그렇지만 장르 구분 없이 제가 좋아하는 음악만 들었던 것 같아요. 주로 아레사 프렝클린(Aretha Franklin), 샤카 칸(Chaka Khan) 같은 70년대 소울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특별히 서울예술대학에 응시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체육고등학교에서 예술대학으로의 전환은 사실 독특한 이력이거든요.
"실용음악을 전공할 수 있는 학교 중에 가장 유명하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난 뒤로는 그 학교를 들어가는 게 가장 큰 목표였죠. 운동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음악을 더 하고 싶었던 욕구가 더 컸던 게 이 대학 진학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아요."


-실기 고사는 어떤 종목으로 응시했나요? 보컬 종목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실기시험 때는 알리시아 키스(Alicia Keys)의 'Fallin'이라는 곡과 이은미 선배님의 '자유인'을 불렀어요. 짧은 시간에 저의 목소리를 가장 잘 어필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학교에서 받은 아카데믹한 수업이 음반 작업하는데 도움이 되던가요? 있다면 어떤 면에서?
"실용음악과에서 배우는 수업이 그대로 적용됐던 것 같아요. 특히 보컬 레슨 수업은 녹음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됐어요."

-음반을 낸다고 하니까 교수님들이나 친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음반 작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은 없었는지…
"우선 교수님께서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의 말씀들을 해주셨구요. 어려웠던 부분들이 있을 때 여쭤보고 했던 것들이 크게 힘이 됐어요."

-요즘도 학교 잘 나가시나요? 제가 다녀봐서 아는데, 학교가 먼 데 있어서 힘들지 않나요?
"지금은 휴학중이구요. 제 경우에는 학교 다니는 게 그리 힘들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아요."

-현재 소속된 기획사에는 어떻게 픽업되었는지요.
"2002년 말 오디션을 통해서요."

-음반의 몇몇 곡을 들어보면 박화요비 타입의 ‘가창력 가수’로 승부를 걸었어도 큰 무리는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음반 작업 초기에는 그런 시도가 있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저와는 노래하는 스타일이나 장르가 다르죠."

a 솔플라워

솔플라워 ⓒ 예전미디어

-솔 플라워라는 이름이 독특해요. 선 플라워도 아니고… 전 처음에는 소울 플라워(Soul Flower)로 잘못 알아듣기도 했거든요. 어떻게 짓게 된 이름인가요.
"제가 하는 음악 장르가 소울인데다 제 본명이 '하나'거든요. 일본어로 '하나'가 '꽃'이더라고요. 'Sol'이 라틴어로 '태양'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서 '솔 플라워' 하면 보통 '해바라기'가 아닐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꽃이잖아요. 그러나 '솔 플라워'는 태양에 맞서는 꽃이에요. 도전적인 의미지가 더 강한 편이죠. 네오 소울이라는 음악 장르에 새롭게 도전하는 저에게 딱 맞는 이름인 것 같아요."

-첫 트랙 'Voyage to the Cheyenne'는 인디아 아리(India Arie)에게 바치는 오마쥬처럼 보입니다. 소울 가수들이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노래 제목을 따서 음반 제목을 정하듯 말이죠.
"첫 번째 곡에 나오는 cheyenne(샤이엔)은 아메리카 인디언말로 ‘바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앨범 스타일을 살짝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Kiss the Kids'나 '끝까지 친구'와 같은 곡은 기존의 국내 R&B 가수들의 것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음반의 방향을 이렇게 정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네오소울 장르에 충실하려고 애쓴 것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소울 중에서도 조금은 새로운 시도를 한 만큼 색다른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제 생각이지만 'Kiss the Kids'는 레게로 편곡했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재밌는 생각이네요. 나중에 시도해 볼께요."

-반면에 가창력을 한껏 내세운 트랙들도 있는데, 처음의 두 곡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인지 좀 아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가창력 위주와 잔잔한 보컬 표현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노래를 할 때마다 항상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해요. 노래에 따라 부르는 스타일도 달라질 수 있는거죠. 혼란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네오소울이란 장르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팬의 질문인데요, <롤러코스터>를 좋아하시나 봐요. 가사에도 ‘롤러코스터’가 나오거든요.
"사실 롤러코스터 팬입니다. 조원선씨의 목소리를 좋아하지요. 그러나 저의 노래와는 무관합니다."

-가이드 보컬을 박선주씨가 하셨나요?
"가이드는 외국 보컬분들이 참여해주셨구요. 박선주 선생님은 보컬 트레이닝과 디렉팅 등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박선주씨에 대해서는 음반 작업 이전에도 알고 계셨나요? 젊은 세대는 잘 모르는 경우도 많던데요.
"가수로서는 알고 있었죠. 잘 아는 분은 아니었지만… . 이번에 같이 곡 작업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박선주씨는 이런 분이다’하고 간단히 설명해 주시고, 함께한 작업은 어땠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박선주 선생님은 제 음악 인생에 있어 어머니같은 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가족 내에서의 어머니 역할을 음악에서는 박 선생님께서 대신해 주셨으니까요."

-상당수의 곡이 영미 팝계의 작곡가들의 작품인데요. 모든 곡이 MR까지 다 나온 상태에서 녹음에 들어간 건가요?
"외국에서 받은 MR도 있었고요. 한국에서 편곡해선 만든 MR도 있습니다.

-음반에 참여한 작곡가들이 굉장히 화려합니다. 참여한 분들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해 주세요.
"에리카 바두(Erykah Badu)와 인디아 아리의 작곡가이신 피터 카트리에스(Peter Cartriers), 아무로 나미에의 'Hero'를 만드신 룬드버그(Lundberg),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의 'Come on Over' 앨범에 참여한 폴 레인(Paul Rain) 등이 도와주셨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네오 소울의 매력은?
"소울 베이스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목해서 시도한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솔 플라워 스스로를 네오 소울 가수라고 자각하고 계신가요?
"네오 소울이란 장르로 앨범을 처음 낸 만큼 그 분야에서 앞으로 크게 자리매김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본래부터 그 방향을 생각했는지, 아니면 작업 과정에서 포인트를 그쪽으로 맞추게 된 것인지요.
"처음부터 네오 소울 장르를 생각하고 만든 앨범이에요. 그래서 곡도 그쪽 관련해서 유명하신 분들을 직접 섭외해서 오랜시간 동안 작업해서 받은 곡들입니다."

-혹 다음 앨범에서는 전혀 다른 음악을 하게 될 가능성은 없을까요?
"아주아주 한참 뒤에나 생각해볼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 막 시작했는걸요."

-스탠다드 'Misty'를 'Four Seasons'로 바꿔 부르기도 했는데, 이 곡은 어떻게 싣게 됐나요. 재즈 보컬에도 관심이 있는지요.
"저를 위해 박선주 선생님께서 직접 써주신 곡이에요. 재즈보컬도 아주 매력있는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어요."

-가사가 일반적인 여가수들의 것과 많이 달라요. 여성간의 연대, 우정 등에 관한 것 등이.
"앨범 제목처럼,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을 담아내려 애썼어요.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요."

-이것도 어떤 팬의 질문입니다. 페미니즘에 관심 있으신지…
"페미니즘이란 말이 참 어려운데요. 아직은 그런 이야기를 할 만큼 깊이 생각하거나 경험해 보지 않아서요. 여성의 권리나 정체성에 관해서는 조금 관심을 갖고 있어요."

-직접 쓰신 가사도 꽤 있는데요. '여자의 이름으로'의 가사는 남자들이 보기엔 굉장히 무섭네요. 뻔한 질문이지만, 가사를 쓸 때 본인의 경험을 반영하는 편인가요.
"아직 어리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내 이야기를 넣어보려 했구요. 책에서도 영감을 많이 얻었어요."

-곡에 따라 가사 쓰기가 힘든 곡도 있었을 것 같네요. 멜로디가 마디에 걸치지 않고, 마디 사이를 유연하게 들고 나는 곡들이라서… 한국어로 작사하기 힘들지 않았나요.
"고민도 많이 하고, 신경도 많이 썼어요. 음,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즐겼던 것 같아요."

-실제 음반을 낸 소감은?
"1년 여의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만큼 정말 소중한 작업이었어요. 많이 배웠구요. 하면 할수록 더 욕심나고 더 잘하고 싶더라구요."

-네오 소울이 국내에서 크게 인기있는 장르는 아닌데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오소울이란 장르가 생소하긴 하지만, 한국적인 감성으로 표현하려 애썼던 게 듣는 분들한테 많이 어필했던 거 같아요. 들으면 들을수록 귀에 걸리는 음악이라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세요. 편한 곡들이 많아서 그러기도 할거라고 생각해요."

-방송 출연 하신 건 아직 못 봤는데요, 전략인가요? 비디오도 되시면서…
"처음부터 방송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먼저 노래만으로 대중들게 다가가고 싶었구요. 3월부터는 방송 활동도 조금씩 할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라디오나 TV방송 활동도 하겠지만, 전 공연장에서 자주 뵐 생각입니다."

-끝으로, 신인 가수로서의 포부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제 노래를 듣고 위로 받는 분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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