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등한 관계를 원할 뿐이다"

<반미교과서>, 민주화의 또다른 중심축 '반미자주화'

등록 2004.03.22 21:11수정 2004.03.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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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한민공조'로 추진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동포사회까지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언론들은 '탄핵규탄 촛불집회'를 보도하면서 '독재타도'를 외치며 벌어졌던 87년 6월항쟁 이후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나오는 등 제2의 6월항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탄핵정국을 놓고 '친노-반노', '민주주의-반민주주의', '보수-진보'로 규정하는 다양한 시각이 나타나는 가운데, '낡은 수구보수정치에 의해 죽은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 촛불시위에 참여했다'는 일반시민의 여론이 높은 데서도 알 수 있듯 민심은 탄핵정국을 '민주주의-반민주주의' 구도로 규정하고 있다.

시민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자발적으로 치켜든 '촛불의 힘'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자주평화촛불에서 탄핵규탄 촛불로

2002년 "대∼한민국"을 외치며 붉은 악마들이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쏟아져 나왔을 때 경기도 파주의 한 국도에서 친구 생일잔치에 가려던 두 여중생이 주한미군의 궤도차량에 의해 압사한 사건이 있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오만한 미국의 태도에 분노하며 '당당한 내 나라! 평등한 한미관계'를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불평등한 한미관계로 촉발된 촛불시위는 이후 한국의 시위 문화에서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고 지금 탄핵무효 촛불집회로 이어지고 있다.

87년 6월 항쟁의 또다른 기치 '반미자주화'

87년 6월항쟁을 통해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면 2004년 3월 12일에 시작된 탄핵규탄 촛불집회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는 직접 민주주의, 광장 민주주의의 발로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그러나 정작 87년 6월항쟁과 2004년 탄핵규탄 집회의 공통분모인 '민주주의'에서 빠져있는 핵심이 있다. 87년 6월항쟁때 '독재정권 타도'와 함께 올려졌던 '반미자주화' 기치가 바로 그것.

광주학살로 반미무풍지대서 반미운동의 중심으로

제3세계국가인 한국은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이전에는 '반미의 무풍지대'였다. 80년대 이전 미국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냉전전선에서 미국의 이해 관계를 갈등과 충돌 없이 관철시켜왔다. 하지만 광주민중항쟁 이후 배후에 군사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협조가 있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더 이상 한반도는 '반미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핵심 세력이었던 학생운동은 80년 광주항쟁 이후 83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 그리고 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역사에서 미국이 신군부가 자행한 광주학살의 배후였고 피의 권좌에 오른 신군부에게 면죄부와 정당성을 부여한 것도 미국이라는 사실을 현대사에 각인시키며 '반미자주화'를 민주화운동의 주요한 수레바퀴로 부각시켰다.

한국 민주주의의 양대축이었던 형식적 민주주의와 반미자주화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관련 '자주평화 촛불집회'로 일상화되었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시민의 힘으로 쟁취하기 위한 시민혁명인 탄핵규탄 촛불집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미는 평등한 한미관계 요구일 뿐"

<반미교과서>는 2002년 온 국민의 뇌리 속에 박혀 있는 두가지 사건을 기억 뒤편에서 끄집어낸다. 한일월드컵과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온 국민이 붉은 티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함성 소리에 묻혀 경기도 파주 국도변에서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던 여중생 신효순·심미선(당시 중학교 2년)이 미국 궤도차량에 깔려 압사한 사건.

<반미교과서>는 2002년 들불처럼 번졌던 '자주평화 촛불집회'를 중심으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고찰하면서 미국의 동북아세계지배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상, 주재국의 문화주권을 짓밟은 '덕수궁터 미대사관·아파트 신축' 강행 문제 등 중심으로 반미가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또 다른 중심축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군이 한강물에 독극물을 펑펑 쏟아 부어도 처벌할 수 없는 현실, 미군이 여중생들을 압살하고도 태연할 수 있는 현실, 미군이 전국에서 수천만평의 땅을 제멋대로 사용해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는 현실, 미국이 덕수궁터에 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우기는 것을 막기 어려운 현실, 이런 불평등한 현실이야 말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이승만부터 노태우까지 무려 44년 동안에 걸쳐 이어진 역대의 독재정권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잘못된 정권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미국의 도움으로 보완했다"며 "반미의 핵심은 평등한 한미관계를 이루는 것이고 반미가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자주평화 촛불집회는 80년 광주민중항쟁을 시작으로 배태된 정치적 반미운동이 7만3천만여평의 미군 기지로 인해 발생하는 주민생존권, 환경오염, 미군범죄 등 생존권적 반미운동을 넘어 문화적 반미운동으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주평화촛불의 힘으로 지난 대선때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미국에 도장 찍으러 가지 않겠다"고 밝히며 당선되었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명분으로 전세계 평화세력들이 반대하는 이라크 침략전쟁에 전범국으로 동참을 선언해 반미자주화가 21세기에도 과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케 했다.

그리고 오는 6월 13일이면 미군 장갑차에 살해당한 여중생 2주기가 돌아오지만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부시의 공개사과, 책임자 처벌 등의 요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a 주한미군 배치도

주한미군 배치도 ⓒ 반미교과서

미국, 진정 아름다운 나라인가?

<반미교과서>는 미국(美國)은 진정 '아름다운 나라'인가를 되묻는다.

원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피의 대가로 건국된 아메리카 합중국. 추악한 '아름다운 나라', 기독교 근본주의에 매몰되어 자신은 늘 선이고 자신의 입맛에 따른 규정에 의해 자신과 반대 입장에 서면 악이라고 규정하는 전쟁 문화가 판치는 전쟁 국가가 바로 '미국'임을 강변하고 있다.

미국이 이 땅에 '점령군'으로 주둔한 이래 한국민들은 미군 범죄, 환경오염, 주민생존권 위협을 당해 왔다. 또 1963년경 휴전선 부근에 고엽제를 살포했고 비인도적 무기인 대인지뢰조차 남북한 대치 상황을 이유로 한반도에서의 폐기를 부정하고 있다.

2001년 연합토지관리계획(LPP)협정에 의해 향후 10년에 걸쳐 4천1만여평을 반환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주한미2사단 한강 이남 재배치, 용산미군기지 오산평택지역 이전 등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세계 어디를 찾아보아도 주재국 수도 중심부 1백만여평에 이르는 대규모 부지에 외국군이 주둔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99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땅은 94곳. 7339만평으로 이중 전용공여지는 3만6천여만평, 부분적 사용 권리를 가지는 지역 공유지는 1천여만평, 임시 공여지는 2800여만평이다. 공시지가로 12조6300여억원, 연간 사용료 4500여억원이지만 미군은 모두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고 반환시 원상복구 책임도 없다.

또한 미국은 주재국의 문화유산인 덕수궁 터에 대규모 외교복합단지를 지으려고 하고 있어 반달리즘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고 노근리 학살 등 한국전쟁 전후 미군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아울러 일방적인 군사패권주의에 기반한 대북적대정책으로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다.

홍성태 교수는 "주한미군의 문제는 단순히 기지의 재배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핵심은 말할 것도 없이 '한미주둔군지위협정' 나아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미교과서>는 한국민들이 외치는 '반미'가 "평등한 관계를 원하는 것 뿐"이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교과서라는 식상한 제목을 붙였지만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붙잡고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노순택(다큐멘터리 웹진 이미지프레스(www.imagepress.net) 편집장)씨의 사진도 볼거리다.

생각하는 한국인을 위한 반미교과서

홍성태 지음, 노순택 사진,
당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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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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