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터는 국회의원 하지 말라는 법 있나요?"

[화제의 인물] 서울 중구에 도전장 낸 '윤대리' 조윤행씨

등록 2004.03.25 12:02수정 2004.03.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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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싶다"며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한 '웨이터' 윤대리(본명 조윤행)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싶다"며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한 '웨이터' 윤대리(본명 조윤행) ⓒ 김진석

"로또 복권이 당첨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속으로 절 비웃기도 하겠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평생 살아봐야 어디 감히 국회의원을 해?'라고 말하는데, 그런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주체적'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웨이터'가 국회의원 출마 도전장을 던졌다. 그것도 TV앵커 출신인 한나라당 박성범(64), 정대철 의원의 아들 열린우리당 정호준(33), 내리 세번째 중구청장을 역임한 민주당 김동일(62), 지하철 노조 출신인 민주노동당 최재풍(45) 등 쟁쟁한 후보들이 혼전을 벌이는 '서울 중구'에 명함을 내밀었다.

"국회의원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진짜 출마했어요?"

“국민을 VIP로! - 윤대리의 변신은 무죄!”
윤대리는 어떤 사람?

강원도에서 태어나 지난 1976년 서울 무교동 나이트클럽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후 장안의 손꼽히는 웨이터가 된 윤대리. 그는 <윤대리의 술나라> <웨이터 윤대리>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3권의 책을 출판해 반향을 일으킨 '저자'임과 동시에 '한국음주문화홍보대사'이다.

지금도 새벽 세시 반에 퇴근해 매일 한 시간씩 집필을 하며 새로운 저서를 준비 중이다. 한국음주문화홍보대사인 그의 주량은 딱 두 잔.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세 잔 이상의 술은 먹지 않고 담배 또한 전혀 하지 않는다.

윤대리는 유흥업소를 도덕적 차원에서 무조건 비난만 할 것이 아닌, 경제생활 중 하나의 지표로 봐야 한다며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음주 문화' 를 당부한다. 그는 대기업 직원 대상 ‘직장인 음주문화’를 비롯해 대학, 호텔, 기업체에서 100여 차례 술문화에 대한 강의를 해왔으며, 그 외 방송출연과 신문 칼럼 연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간 윤대리의 활약상은 인터넷 홈페이지(www.ys77.com)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의 활약을 바탕으로 “여의도에서 당당히 쓴소리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주변의 권유를 받은 윤대리는 고심 끝에 17대 총선 출마를 결심했다.

그가 내건 선거 운동의 캐치프레이즈는 “국민을 VIP로! - 윤대리의 변신은 무죄!”이다. 윤대리는 한 점 부끄럼 없는 ‘깨끗함’과 밑바닥 인생의 ‘성실함’을 무기로 소외된 이들을 대신하겠다며 출마 각오를 밝혔다. / 김은성
일명 '윤대리'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조윤행(46·무소속)씨는 30년 가까이 웨이터로 외길 인생을 걸었던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연신 물어왔다.

정말 진짜로 출마하는 것이 맞느냐고. '어떻게 일개 웨이터가 아무나 할 수 없는 국회의원을 하느냐'는 의문과 '선거 비용에 들어갈 돈이 있느냐'는 우려를 덧붙이며 출마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지금도 명동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윤대리로 일하며 선거비용을 마련하고 있는 조 후보는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 선거운동을 벌이느라 눈꺼풀이 내려앉을 지경이라고 한다.

근무 시간 외 중구 일대를 돌며 직접 유권자와 만나고 있는 조 후보는 그간 자신의 오랜 활동 무대였던 서울 중구를 '조화로운 상권의 도시'로 활성화시키겠다며 출마 의지를 피력했다.

"서울 사대문 안에 있는 사람들 5명 가운데 적어도 1명은 저를 알 것이라 자신합니다. 비록 제 거주지는 아니어도 그간 제 직업터가 중구였던 만큼 중구 상인들과 지역 주민들의 경기 활성화를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쟁쟁한 다른 후보들과 당당히 겨루며 그들과 똑같이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웨이터가 된 76년 이후 두 번 다른 직업과 인연을 맺었다. 조 후보는 군 제대 후 현대건설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 공사 현장에 나가 돈을 모았으며, 벌어온 돈으로 기념품 가게와 유흥업소를 개업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그의 자산은 전세보증금 4000만원과 아직 할부가 끝나지 않은 승용차가 전부이다.

선거 조직이나 후원회가 없는 그는 앞으로 계속 일을 하며 자비로 선거 비용을 충당할 예정이다. 조 후보는 '모든 걸 직접 발로 뛸 것'이라며 홍보물 또한 최소한의 자료만 배포해 '돈 안 쓰는 깨끗한 선거 운동'을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a 24일 충무로에 위치한 선거 사무실에서 만난 조윤행(무소속) 후보.

24일 충무로에 위치한 선거 사무실에서 만난 조윤행(무소속) 후보. ⓒ 김진석

"한국에서 웨이터는 소외되고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또 편견으로 인해 가장 천하게 여기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지금껏 살면서 작은 규칙 한 번 어겨본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부끄러운 행동을 했던 적이 없습니다.

모든 이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불법으로 뒷돈을 받는 사람들도 정치를 하고 있는데, 저라고 국가를 위해 일하지 말라는 법이 있습니까? 제가 그런 분들보다 부족한 게 뭐가 있나요?"

조 후보는 "웨이터라고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된다는 이유나 법이 있느냐?"고 재차 반문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며 자신의 뒤를 이어 제2, 제3의 윤대리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꼭 S대를 나오고 명문이어야만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까? 저희 같은 사람들은 평생 멀리 뒤에서 그저 바라만 봐야 합니까? 또 우리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평생 살아봐야 어디 감히 국회의원을 해?'라고 말하는데, 그런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주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로또 복권 당첨의 확률일지언정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나 보다. 조 후보는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고 웃기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도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자신과 무수한 내적 싸움을 벌였노라 토로했다.

"대한민국은 술 소비가 1위인 나라입니다. 국회의원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기면서도 당당하게 밝히는 건 쉬쉬하죠. 아직도 사람들이 술집에서 일한다고 하면 모두가 조폭이나 건달인 줄로만 알아요.

그런 건 정말 옛날 얘기인데, 모든 사람들이 사실과 다르게 무조건 안 좋은 쪽으로만 왜곡하려 합니다. 자꾸 음지로만 숨기려 하니깐 상황이 더 악화되죠.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성공을 한다 해도 스스로가 먼저 과거를 밝히려 들지 않아요."

조 후보는 갈 지자 춤을 추는 한국 음주 문화에 할 말이 많았다. 음지에서 잘못 형성된 한국의 음주 문화는 그를 여의도로 이끈 또 다른 이유였다. 조 후보에겐 평생 소망이 하나 있다.

대학 교양강좌에 음주 문화에 대한 강의를 마련해 한국의 술문화를 건강하고 올바르게 바꾸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소망 실현에 대한 믿음으로 30여년 가까이 웨이터를 한 조 후보는 자신의 일에 대해 한 올도 감출 것이 없다며 편견과 맞서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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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당장 오늘 달면 삼키고 내일 쓰면 그냥 뱉어버리죠. 오늘의 동지가 곧 내일의 적이 돼 버리는 정치를 보면 참 답답해요. 이번 탄핵도 그저 황당무계합니다. 모든 국민이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잖아요. 여야가 선의적 경쟁을 위해 견제하는 그런 모습이 아닌 완전히 안하무인격이었죠. 과연 그런 것이 정치인가요?"

그는 음주 문화와 꼭 빼닮은 현 정치 세태를 꼬집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것이 진짜 정치냐고 이의를 제기한 조 후보는 무엇보다도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갈 지자 춤을 추는 정치인들에게 소외된 서민을 대신해 쓴 소리를 내뱉고 싶다는 그는 '진짜 정치'에 목말라 있었다.

"로또 복권이 당첨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 말은 안 해도 속으로 절 비웃기도 하겠죠. 그래도 계속 끝까지 도전하겠습니다. 소외된 많은 이들에게 우리 같은 사람도 나라를 위해 뭔가 주체적으로 참여해 일할 수 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싶습니다."

'자신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다. 조 후보는 '이제 시작'이라며 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여의도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 다짐했다. 직접 맨 몸으로 뛰며 유권자들과 만나는 선거운동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힘 있게 말한 조씨. 그의 다짐과 희망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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