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쪽팔려라!"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돼지 구정물을 운반하던 그때 그 시절

등록 2004.03.28 17:30수정 2004.03.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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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인 우리집 넝쿨이에게 가끔 “넝쿨아, 너 여자 친구 있냐?”고 물으면 손사래를 치며 질색을 합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것이지요. 학교가 남녀공학이라 좋은 느낌을 갖고 있는 여학생이 있을 법한데 여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교복 차림새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넝쿨이는 모양을 별로 내지 않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교복을 벗지 않은 채로 저녁밥을 먹고, 심지어 어떤 때는 교복을 입고 잠자리에 들기도 합니다.

“집에 와서는 제발 교복을 벗어라”라고 아내가 닦달을 해야 마지못해 교복을 벗습니다. 교복이 완전 작업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춘기를 건너뛴 것인지, 아니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아예 없어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집 넝쿨이가 가끔 “쪽팔린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데 이를테면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서 가야 하는 경우, 이 녀석 입에서 “아빠, 쪽팔려서 가기 싫어요”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지 자기 생각을 그렇게 표현할 만큼 자신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정도라면, '그 속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쪽 팔린다”는 비속어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지만, 나도 녀석 말대로 쪽팔리게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35여 년 전, 초가를 벗기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개량하는 일이 한창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집은 아버지가 석유곤로, 벽시계 등을 파는 생활 잡화점을 운영하셨는데, 집 마당 뒤 뜰 안에 돼지 두어 마리를 키웠습니다. 여름철만 되면 돼지똥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했고, 한여름에도 파리 때문에 성가셔서 문을 열어놓을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우리집은 중학교 정문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되는 곳에 위치했는데,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늘 집집마다 다니며 돼지 구정물을 손수레에 싣고 와야했습니다. 그 시절, 신작로는 거의 비포장 길이었지요. 구정물을 손수레에 싣고 운전을 잘해야지 자칫하면 길바닥에 다 쏟아버리고 맙니다.


부모님께서 누나는 여자라고 이유로, 밑에 남동생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그 대상에서 제외시켜 장남인 내가 고스란히 돼지 구정물 운반자 노릇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때의 심정이 바로 “쪽 팔린다”였습니다.

돼지 구정물을 싣고 골목골목 누비다보면 내가 아는 여학생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날은 집에서 나갈 때 예감이 왔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예감은 거의 들어맞았습니다.

어느 때는 여학생이 한 둘이 아니라 떼거지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손수레를 끌고 가면 여학생들은 손으로 입을 막고 "키득키득" 하고 웃습니다. 나보고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한 수치심으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원래 숫기가 없고 내성적이기도 했지만, 그런 소심한 성격과 이성에 대한 묘한 호기심이 뒤섞여 내 얼굴은 금방 홍당무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속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말이 “아이구, 쪽팔려”였습니다. 특히나 이런 날에는 집에 돌아와 보면 돼지 구정물의 반은 쏟아져 있어 어머니께 꾸중을 듣습니다.

“너는 손수레를 어떻게 몰았는데 구정물을 다 쏟았냐? 어찌 만날 하는 일을 그리 못하냐?”
어머니는 남의 속도 모르고 혼을 내셨습니다.

“엄마, 우리집 돼지 안 키우면 안돼요? 돼지 안 키운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니고 만날 돼지 구정물 운전사 노릇 정말 싫어요. 나 내일부터 안 할 거예요.”

어머니께서는 내가 아무리 떼를 써도 들은 척도 안 하십니다. 그런 날은 애꿎은 돼지들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주로 암퇘지를 키웠기 때문에, 돼지가 웬만큼 자라면 종돈 돼지가 있는 집으로 몰고 가서 교미를 시켰습니다. 그 일은 아버지가 주로 하셨지만, 돼지가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꼭 데리고 가셨습니다.

뒤에서 아버지가 작대기로 돼지 잔등을 '툭툭' 치면서 돼지를 몰면, 나는 길 앞에서 돼지 사료를 솔솔 뿌리며 수퇘지가 있는 집으로 유인을 합니다.

그 시간은 정말 '쪽팔림'의 극치입니다. 돼지가 "꽥꽥"거리며 교미를 하는 걸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와 재밌게 구경을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보통 열 마리 이상을 낳습니다. 한두 달 젖을 먹여 키운 다음 이웃집에 팝니다. 아마 벌이가 짭짤했던 모양입니다.

그 시절에는 돼지를 집에서 주로 잡았습니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돼지를 잡으면 동네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생간을 안주로 술추렴을 하십니다. 돼지고기는 물론 즉석에서 다 팔립니다.

고기는 다 팔고 비곗덩어리만 남습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비곗덩어리를 프라이팬에 담아 기름을 냅니다. 젓가락으로 쿡쿡 눌러가며 기름을 짜내는데 돼지기름이 콩기름보다 더 고소했지요. 겨울철 돼지기름으로 김치를 볶아 먹으면 그 맛은 한마디로 끝내줬습니다.

쪽팔리는 어린 시절이 지나 이제 쪽팔리는 일은 없겠다 싶었는데, 요즘도 가끔 쪽팔릴 때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창피한 줄 모르고 TV에 나와 버벅거리는 걸 보면 괜히 내가 쪽팔립니다.

비교적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자리에 있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 있길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제도화된 거대한 세력이나 흐름에 맞닥뜨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조직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내 얼굴은 여지없이 홍당무가 되고 입에서는 “아이구, 쪽팔려라”는 말이 튀어 나옵니다.

아직 수련이 덜 되어서 그런 것인지, 원래 미숙해서 그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것조자 내 정체성의 한 단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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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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