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벚꽃들 좀 봐"

벚꽃 휘날리는 봄날, 저무는 해를 보며 고모님을 생각합니다

등록 2004.03.29 08:58수정 2004.03.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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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윤성효

아내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습니다. 진해 군항제를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간식거리며 옷가지들을 챙겼습니다. 집을 나서니 사방이 벚꽃입니다. 연분홍 빛깔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안민 고개에 올라서니 창원 전체가 벚꽃에 묻혀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진해 벚꽃보다 이곳 창원이 더 안 나을까. 저 벚꽃들 좀 봐. 얼마나 보기가 좋아."
"꼭 벚꽃 보자고 가는 건 아니잖아요. 여러 가지 재미난 것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차는 진해 중원 로터리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는 해군사관학교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거북선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소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시간 삼십분이 넘게 걸립니다. 정문에 들어서니 동상이 보입니다. 이인호 소령의 동상입니다. 육군에 강재구 소령이 있다면 해군에는 이인호 소령이 있습니다. 두분 다 월남전쟁의 영웅들입니다.

우리 가족은 거북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거북선에는 여러 무기들이 있었습니다. 현자총통과 지자총통은 대포처럼 생겼습니다. 장병겸도 보입니다. 배 밑으로 공격해 오는 적을 막는 데 사용하는 갈퀴 모양의 무기입니다. 적선에 던져 끄는 데 사용하는 사초구도 보였습니다. 그밖에 징, 꽹과리, 북… . 정말이지 거북선은 군함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다시 우리는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제황산 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공원 입구에 풍선 파는 사람이 보입니다. 아내는 작은 아이에게 피카츄 풍선을 사줍니다. 아이는 풍선을 연처럼 날리며 좋아합니다. 공원에는 함선 모형을 본뜬 진해탑이 있습니다. 진해탑 전망대에 오르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시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산 쪽으로 작은 집들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습니다.

"혹시 저곳이 고모님 살고 있는 동네 아니에요?"


제가 바라보고 있는 동네를 가리키며 아내가 말했습니다.

"맞아."
"그럼 찾아 뵈어야 하지 않겠어요?"
"안 계셔."
"안 계시다고요?"
"고향으로 돌아가셨어. 사촌 형이 부도를 냈어. 집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 갔어."
"어머나, 그래요. 저번에 찾아 뵈었을 때 몸이 몹시 불편하시던데… ."


우리는 제황산 공원을 내려왔습니다. 중원 로터리에는 품바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네가 가위춤을 추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밀짚모자를 썼습니다. 얼굴은 내내 우스꽝스런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가위 소리에 맞춰 여인네의 짤막한 다리가 쉼 없이 움직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몹시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제 머리 위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저는 야시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여러 물건들이 제 눈길을 끕니다.

그때 고모님도 그러셨습니다. 군항제가 열릴 때면 고모님은 야시장에서 인삼을 팔곤 하셨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모님은 이곳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내일도 모래도 고모님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게, 벌써 하루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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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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