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여기자가 뭘 할 수 있지?"

종군특파원 카트린느 장틸의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

등록 2004.03.29 23:40수정 2004.03.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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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 ⓒ 갑인미디어

우리의 역할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역할은 자신의 신용과 명예, 삶 전체를 저울에 올려놓고, 전쟁과 분쟁으로 입은 세상의 상처에 펜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 알베르 롱드르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알베르 롱드르의 글귀로 시작되는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한덕화 옮김·갑인미디어·2003)는 종군특파원 카트린느 장틸의 삶과 일에 대한 기록이다.


세상의 상처에 펜을 가져다대다

장틸은 고백한다, 처음 종군특파원이 되었을 때 악을 징벌하고 선을 지지하며 세상을 구원하는 이상을 가졌다고. 그러나 "뉴스를 전하는 스튜어디스" 생활 10여년 동안 세상은 점점 더 타락한다. 전쟁이 주는 잔인한 공포와 직업의 허탈감으로 매번 '다시는 분쟁 지역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때로는 '저널리즘은 훨씬 안전한 이 곳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달래보기도 한다. 처음의 이상주의적 시도는 철저히 실패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틸이 기어이 전쟁터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만났던 '친구들'에 대한 기억('핍박받는 약자와의 연대의식'이라고 거창하게 표현될 수도 있는) 때문이다. '봉봉(사탕)'이라는 프랑스어만 할 줄 아는 소녀 쉬린,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죽어가면서 그의 발목을 부여잡던 아프가니스탄 병사, 전투에 나가기 전 항상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던 시아파 아말 전사, 레바논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오면 초조해 하며 걱정해 주던 이웃 여자들, 모두가 그의 친구들이다.

장틸은 세상이 그가 보아온 수많은 진실들-이스라엘 병사에게 살해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 의약품 금수 조치로 죽어간 이라크의 병자들, 병에 걸린 르완다의 난민들-을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의 레바논 침공 대신 월드컵 축구 소식이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전쟁의 상황과 책임 규명 대신 시청률을 올리기 좋은 선정적인 장면만을 내보낸다. 그나마도 강대국의 알력 관계에 따른 이중적 잣대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죽음보다 이스라엘 사망자의 모습이 더 길게, 더 자주 보도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잠깐이라도 '친구들'의 이야기를 텔레비전에 내보내기 위해서 그는 계속해서 전쟁터로 나가고,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사를 쓴다.

"나는 그저 기자일 뿐"


그냥 '종군기자'라고 하면 보통 남성을 일컫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에 의하면 그는 '여성' 종군 기자다.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장틸 또한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편견에 부딪힌다.

그는 '전쟁 소식을 여기자들이 다루면 기사의 무게가 떨어진다'는 한 보도국장의 말을 생생히 기억한다. 남자 기자가 집안일로 출장을 못가겠다고 하면 자상하고 모범적인 아버지라는 칭찬을 듣지만, 여자기자는 "치마 두른 것들은 다 똑같다"는 말을 듣는다.

장틸은 그러나 취재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유리한 점들이 많다고 말한다(물론 어려운 점은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실제로 그는 종교적·문화적 이유로 남성들을 만날 수 없는 회교국가 여성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다. 남자 기자들이 알아낼 길 없는 베일에 가려진 여성들의 투쟁 의지, 정치적 의견을 그는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장점을 누릴 기회도 있다.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정치인은 '자기들보다 못한' 여기자들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 바람에 중요한 내용들을 쉽게 털어놓고, 마초 군인들은 자발적으로 보호 본능을 발휘하곤 한다. 당연하게도 장틸은 현장에서 자신은 여자나 남자,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기자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카트린느 장틸의 호소

그는 획일화된 세상에서 그 '기준'에 벗어난 보도를 하는 것은 '자신만의 법칙과 위계 질서를 내세우는 미친 반항아'나 '마지막 무정부주의자'쯤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또한 장틸은 알고 있다. 망각과 맞서 싸우며 열정을 다 바치는 것이 특파원의 임무이자 존재 이유라는 것을.

카트린느 장틸은 누구인가

1981년 프랑스 제일방송(TF1)에 입사해 1991년부터 이라크, 알제, 발칸 등 아랍권 전문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전 사담 후세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피에르 밀 상(92년), 알베르 롱드르 상(98년) 등을 수상했다.
그리하여 장틸의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는 호소한다. "매번 '이해를 못하겠다'거나 '너무 복잡하다'는 똑같은 말로 논의를 피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에 정말 팔레스타인 수용소에서 약자들이 외부와는 거의 단절된 채 죽어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복잡한 문제였을까?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슬픈 얼굴을 상상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힘들고 복잡한 것이었을까? 그러지 말고 조금만 노력해보자"고 말이다.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

카트린느 장틸 지음, 한덕화 옮김,
갑인공방(갑인미디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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