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남소연
- 3주간 지속됐던 촛불 문화제에는 참석했는지요.
"토요일이라 못 갔어요. 성당의 미사봉헌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언론을 통해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 지난 3월 12일 탄핵 가결되던 날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참으로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역사적 퇴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퇴행 속에서도 교훈이 있습니다. 다수의 폭력, 제2의 유신, 새로운 쿠데타라고 생각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들이 자신의 실체를 스스로 공개한 것이라는 생각했습니다."
- 87년 6월항쟁과 비교할 때 2004년 촛불시위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근원적 바탕은 같습니다. 그러나 질적 변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87년 당시 군부독재에 맞선 시위는 경찰의 폭압과 최루탄, 연행, 이한열 군의 죽음 등 참으로 아주 살벌했던 때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 투쟁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잔잔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17년간의 기간에 엄청난 문화적 진전이 이루어졌고 그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쁘고, 감격스럽고…. 전 세계인에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7년 당시 명동성당에 몰려온 1만여 명의 시민 청년학생들은 오자마자 화염병을 만들고 돌도 던졌습니다. 성당 자체가 방어라고 해도 방어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만큼 신변보호가 절박하고 위험했습니다.
그때에 수녀님들, 신자들, 신부님들이 촛불기도회를 열면서 이분들에게 호소했습니다. 화염병보다 더 강한 촛불의 힘을. 성당이나 불당, 또 제사 지낼 때 우린 다 촛불을 밝히지 않습니까? 촛불은 내면의 마음, 곧 종교심의 발로입니다. 경건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촛불집회를 보면서 저는 종교는 이미 건물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광화문 한복판에 나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촛불집회는 장엄한 기도입니다."
- 광화문 촛불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대한민국 미래와 나라사랑에 대한 표현이며 불의한 정치인에 대한 꾸짖음입니다. 종교적 메시지로는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문제는 촛불집회를 둘러싼 정부당국의 낮은 해석입니다. 범국민행동 지도부에 대한 검찰의 긴급체포영장 발부는 매우 유아적 대응입니다. 이미 국민들은 성숙한 시민문화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조중동, 내 머리와 눈이 흐려질까봐 아예 안 본다"
- 명동성당 측에서 범국민행동의 '촛불탑 탄핵무효운동'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명동성당도 70년대·80년대·90년대, 그 이후의 상황이 각기 다릅니다. 70년대는 긴박한 상황으로 성당이 '박해받는 이들의 피난처' 역할을 했습니다. 저도 명동성당이 열린 공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부활절을 앞두고 미사봉헌 등 많은 교회전례행사가 있으니 명동성당 측의 입장도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어쨌든 이것이 우리 교회, 그리고 명동성당의 한계가 아니겠습니까?"
- 명동성당의 이번 조치에서 보여주듯이 최근 가톨릭교회가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계입니다만 가톨릭교회는 원래 보수적이었습니다. 70~80년대에는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뜻있는 사제들과 수도자, 신자들이 함께 모여 활동했습니다. 당시에는 시대가 워낙 어렵기 때문에 그런 현실 투신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오시면 '좀더 열린 공동체가 되라, 좀더 근원적으로 바꿔라' 하고 꾸짖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