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악시 볼처럼 발그스레한 '개복숭아'

내게로 다가온 꽃들(38)

등록 2004.04.01 15:37수정 2004.04.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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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숭아-복숭아꽃을 복사꽃이라고 하니 이것은 '개복사꽃'이겠죠?
개복숭아-복숭아꽃을 복사꽃이라고 하니 이것은 '개복사꽃'이겠죠?김민수
숲의 봄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요? 키가 작은 오밀조밀한 꽃들은 활엽수들의 이파리가 나기 전에 서둘러 봄을 맞이하고, 생강나무나 산수유같은 나무들은 꽃을 먼저 피우며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키가 작은 숲의 꽃들은 활엽수들의 이파리가 나기 전에 꽃을 피우지 못하면 햇볕을 충분히 쬐지 못해서 꽃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보다 먼저 서둘러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산수유나 생강나무처럼 이파리보다는 꽃을 먼저 피우는 것들은 아직 가시지 않은 꽃샘추위를 대비하느라 이파리인지 꽃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김민수
숲 속의 작은 꽃들이나 산수유, 생강나무보다 조금 늦게 봄을 맞이하는 듯 하지만 멀리서 보아도 연한 초록 빛 외에 은은한 꽃으로 숲을 물들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개복숭아가 그 중 하나입니다. 복사꽃이라고 해도 되는 꽃, 꽃의 모양새만 보아서는 복숭아꽃과 전혀 다르지 않은데 열매를 자잘하게 맺어 개복숭아가 되었습니다.

식물의 이름 앞에 '개'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기준을 삼는 식물에 비해 품질이 낮거나 모양이 다른 경우에 쓰인다고 합니다. 개복숭아 말고도 개구릿대, 개망초, 개양귀비, 개여뀌, 개연꽃, 개다래 등 어찌보면 조금 천대받고 홀대받는 듯한 이름들입니다.

개복숭아의 열매나 그 외 '개'자가 들어가는 식물들이 맺는 열매들이 사람들에게는 별 볼일 없는 열매일지 모르겠지만 산짐승들에게는 여전히 좋은 먹거리들입니다.

김민수
봄의 길목은 아주 짧습니다. 겨울인가 싶으면 봄이고, 봄인가 싶으면 여름으로 넘어갑니다. 짧은 것이 긴 여운을 남기는 묘미를 봄은 아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석양이 지는 순간, 해돋이를 하는 순간 그리고 새벽 미명에 아주 잠깐 바다가 푸른 빛을 내는 순간 모두가 짧습니다.

특히 여명의 바다에서 푸른 빛은 대략 1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 바다에 사는 분들도 놓치기 쉬운 풍경이거나 보지 못한 풍경일 수도 있습니다. 그 짧은 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은 욕심에 하도철새도래지를 서성였습니다. 철새들이 불청객의 방문에 후두둑 날고, 올망졸망 작은 새싹들이 봄을 준비합니다.


지난 가을에 피었던 꽃들의 흔적도 있고, 새봄을 맞이하는 흔적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도철새도래지는 아침 안개가 피어오를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화도철새도래지를 찾은 날도 내심 그 아침 안개를 볼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아닐지언정 매일 다른 풍경을 내어놓는 자연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민수
하도철새도래지를 천천히 돌아 근처에 있는 수풀이 우거진 야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곳에는 사람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덩굴식물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개복숭아가 새악시의 부끄러운 볼 마냥 붉은 빛으로 은은하게 피어있습니다.


'아, 저게 자연이구나!'

제주의 자연은 볼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인간의 욕심으로 매일매일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어딘가는 포크레인에 의해서 파헤쳐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장의 편리와 쾌락을 위해서 개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갑니다.

단지 자본의 논리로 자연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저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다소 한가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제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입니다'라고. 그것에 반해서 제주를 찾고 또 찾고, 이 곳에서 삶의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이 여타 다른 도시와 같아진다면, 그때 제주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지금과 같은 매력이 그때도 있을까요?

김민수
복숭아꽃을 보면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이 흥얼거려집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복숭아꽃은 복사꽃이라고들 합니다. 어찌 보면 이 이름이 더 예쁩니다만 막내에게 "이게 복사꽃이야" 하니 "어떤 꽃을 복사했어?"합니다.

김민수
복사꽃이 가득한 과수원에 들어서면 온 마음까지 발그스레 물들 것 같았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복사꽃이 지고 나서 복숭아가 열리기 시작하면 '언제 익을꼬'하며 기다리다 못해 채 익기도 전에 따 먹고는 배탈이 나기도 했었습니다. 복숭아가 잘 익으면 야밤에 동네 개구쟁이들과 복숭아 서리를 해서는 뒷동산에서 나눠먹던 기억들도 눈앞에 선합니다.

"야, 벌레먹은 복숭아 많이 먹으면 예뻐진다더라."
"참말이가?"
"그래, 그런데 니 복숭아 먹다 벌레 몇 마리 먹었을 때가 가장 징그러운지 아나?"
"글쎄…. 한 마리? 두 마리?"
"아이다. 반 마리다."

그렇게 키득거리며 서리한 복숭아를 먹다가 과수원 주인이 "이놈들!" 하면 숨이 턱에 차도록 도망을 칩니다. 그러다가도 과수원 근처에서 놀다보면 맛은 참으로 좋은데 조금씩 물러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을 골라주기도 하셨습니다.

김민수
그런데 꽃이 너무 예뻐 하늘이 시샘을 부리는 건가요? 왜 그리도 아름다운 순간이 짧은 지…. 꽃비가 한 번 내리고 나니 이내 화사한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꽃비를 맞은 후 발그스레한 꽃잎도 바랬습니다. 이제 저 꽃이 피었던 자리마다 작은 복숭아들이 열리겠지요?

아름다운 순간 가는 것을
슬프다고 하지 마라
더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서 가는 길이니
시샘하는 듯한 꽃비와 봄바람에 지는 것도
복사꽃의 아름다움이려니
아름다운 순간 가는 것을
슬프다고 하지 마라
<자작시/복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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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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