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집회 인사들 발언은 시한폭탄?

[취재수첩]'권여사 비하'는 약과..."죽이겠다" "정신병자" 막말난무

등록 2004.04.01 21:38수정 2004.04.0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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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24일 30여개 보수단체들 모임인 '북핵저지시민연대'가 대구U대회 미디어센터 앞에서 "언론과 방송은 북한에 대한 편향보도를 중단하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03년 8월 24일 30여개 보수단체들 모임인 '북핵저지시민연대'가 대구U대회 미디어센터 앞에서 "언론과 방송은 북한에 대한 편향보도를 중단하라"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달 21일 광화문 동화빌딩 앞에서 열린 '노 대통령 탄핵지지 문화한마당' 중 나온 '노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 학력 비하 발언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MBC '신강균의 사실은'에서 이날 문제의 발언내용 중 일부를 내보낸 이후 일부 보수언론은 이를 '음모론' 등으로 몰아가면서 호되게 비판하고 나섰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1일자 사설을 통해 각각 'MBC, 영부인 학력비하 방송 진상 밝혀라'와 '사실 왜곡한 짜깁기 방송'이란 제목으로 방송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밖에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CBS 최철 기자를 비롯, 진중권씨 등도 '사실은' 방송에 대해 질책을 한 바 있다.

이와중에 문제의 발언을 한 송만기씨는 방송이 나간 뒤 네티즌들의 비난여론으로 "투신하고 싶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송씨는 자신의 고통을 언론에 호소하며 당시 자신의 발언 전문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행사 시작 30분전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기자로서, '사실은'의 방송 내용은 다소 논란의 소지도 있지만 비판의 화살은 송씨 뿐 아니라 그날 행사에 참가한 발언자들에게도 향해져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날 현장에선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발언들이 계속됐기 때문에 문제는 '시한폭탄'처럼 내재돼 있었다.

이번에 논란이 된 특정인사에 대한 비하 발언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집회 등 열린 공간에서 '확인되지 않는 왜곡된 사실'이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의 입에서 실제 사실인양 마구 튀어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날 행사뿐 아니라 지난 해 이후 10여 차례 이상 '우익집회'를 취재한 경험이 있는 기자는 당일 송씨가 발언했던 내용을 포함해 그 동안 들어왔던 우익인사들의 과격한 발언들을 간단히 소개한다.


송만기 "정동영은 쇼쟁이, 유시민은 정신병자"

송만기씨는 지난 3월 21일 행사에서 '문화한마당' 사회자였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직접 불렀고 '아! 대한민국', '아름다운 강산' 등을 청중과 합창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굉장히 흥분된 상태에서 진행됐다. 노 대통령과 탄핵반대자들에 대해 집중 성토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오후 2시 30분께 처음 마이크를 잡은 송씨는 간단히 자신을 소개한 뒤 곧바로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노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6가지 이유를 말하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참고로 송씨가 그날 현장에서 말한 6가지 이유를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사족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리를 해보면 실업자 문제, 이혼율, 경제파탄과 막말 등이 섞여있었던 것 같다. 송씨는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탄핵을 지지한) 국회의원들을 욕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 지역에서 가장 돈 많고 공부 잘하고 잘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를 대표해 탄핵을 했다. 3·12 탄핵 가결되는 날 우리당 쇼하는 것을 봐라. 정동영은 9시뉴스 앵커하던 쇼쟁이였고 유시민은 신성한 국회의원 선서식에 면바지 입고 나간 정신병자다. 나는 평소에 청바지 입고 나가는데 오늘은 여러분 보려고 이렇게 나왔다.(그는 재킷을 걸친 캐주얼 정장 차림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카메라 들이대니까 "아!"라고 절규했다. 그게 뭐 하는 짓인가. 그 쇼를 보고 젊은이들은 측은해 해서 여론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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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막말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송씨는 문제의 발언을 시작했다.

"남상국(전 대우건설 사장)씨를 누가 죽였나?(청중 '노무현!') 노무현? 어, 그래. 한 나라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남상국씨 실명을 거론하며 죄인 취급했다. 바로 이것이 자살로 이어지게 했다. 간접살인이다. 말로 사람을 죽였다.

권양숙 여사가 국모자격이 있나?('없어!' 등 욕설 섞인 반응이 청중에게서 나옴) 만약 내가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되겠나? 앞선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YS 여사 등은 이대출신이었는데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여자가 국모로서 자격이 있나?(청중들은 역시 앞과 비슷한 반응) 국모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인가? 만약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권양숙 여사가 어떻게 할까? (이 즈음 '국모라고 하지마', '국모는 무슨 XX년이지' 등의 말이 청중 앞쪽에서 튀어나왔다. 곧바로 송씨는) 뭐라고? 그래, 맞아, XX년! 박수"


송씨는 이런 식으로 청중의 반응을 유도했다. 사실 기자는 이 대목에선 '참나!'라고 혀를 차며 '해도 너무 하는구나'라고 허탈함을 느꼈다. 반면 송씨는 "나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지만 그래도 교양인이니까 욕은 안 한다. 내가 여기서까지 욕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송씨는 이후에도 "조·중·동을 존경한다. 신문은 여당 편만 들 필요가 없다" "회사에서 경력자를 왜 뽑는지 안다면 열우당이 자격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무경험 신인을 총선에서 찍어야 하나"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또 마무리 부분에서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이 자리에 왜 나왔나? 자살사주, 죽음을 방조한 노무현을 탄핵해야 한다. 이는 살인이다. 남상국과 안상영씨 모두 살인이다. 탄핵 반대하는 촛불행사 초는 어디서 났나? 그거 다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다."

3월 21일 탄핵지지 문화한마당에서 참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3월 21일 탄핵지지 문화한마당에서 참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강이종행
"헌재가 우리 요구 들어주지 않으면 (헌재 재판관) 죽이겠다"

문제는 송씨 뿐 아니라 이날 행사를 이끌었던 박찬성 북핵저지시민연대 대표와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 독일인 의사 폴러첸씨 등도 사용언어와 정도의 차이만 있는 비슷한 말을 쏟아냈다는 점이다.

"어제(3월 20일) 경찰에서 13만명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가 보기엔 5만명이다. 이거 열린우리당이 한총련 등을 동원한 거다. 다 돈으로 사야하는 수많은 초는 뒤에서 누군가 도와준다는 증거다. 이 정권과 김정일이 내통하고 있다."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들 아니겠나. 대통령 자격 없는 노무현은 탄핵돼야 한다."

"전날 촛불시위에 많은 젊은이들이 나온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어제의 질서정연함과 군대식 정돈, 대규모 재정이 지원된 모습을 통해 이를 조정하는 세력이 있음을 느꼈다. 누가 데모 조직하는데 도와줬는지 궁금하다"


기자는 지난해 3·1절 국민대회를 시작으로 10여 차례 이상 우익집회를 취재했다. 지난해 8월 대구 U대회에서 북측 기자단과 우익인사들과의 충돌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었고, 지난 3·12 탄핵가결 당시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 우익시위도 목격했다.

이들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외면하는 정부'를 비판하는 등 나름대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주장도 펼쳤지만 행사마다 여지없이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발언들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주장은 펼쳤지만 그를 뒷바침할 논리와 증거는 없었다.

"김대중과 김정일이 공모한 6·15 선언이 적화통일의 길을 열어놓았다고 판단하고 이의 무효를 선언한다. (중략) 김정일에게 불법 비자금을 갖다 바쳐 핵개발을 돕는 한편 애국세력을 탄압하고 친북 반역세력을 비호하는 김대중 정권하의 반역 혐의자들을 반드시 법정에 세울 것이다."(2003년 8.15 국민대회 결의문)

"노무현 탄핵의 열망은 실현됐다. 이제 우리는 헌법재판소로 가서 재판관을 설득해야 한다. 만약 안 된다면 죽이겠다"(2004년 여의도 3·12 탄핵찬성 집회, 신혜식)

"4·15 총선이 김일성 축하파티가 되면 안 된다. 빨갱이가 얼굴이 빨갛다고 해서 빨갱이가 아니다. 좌경세력들이 빨갱이인 것이다. 지난주 촛불행사 중 교보문고에서 젊은이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주면서 참석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2004년 3·27 '탄핵지지 나라사랑 문화 한마당', 송인영 국사모 회장)


이런 말들이 계속된 행사에서 박찬성 대표는 거의 매번 "오늘 많은 외신과 언론사들이 와 있으니 여러분이 잘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우익들은 언론보도를 전제로 행사진행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펼쳐지는 행사는 대중들에게 공개돼도 된다는 것 아닌가.

송씨가 방송으로 인해 원치 않는 고통을 당하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은 없지 않지만 그 아닌 다른 사람의 발언이 방송에 나갔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이는 그날 현장에서 송씨가 '권양숙씨 학력비하 발언' 뒤 "내가 이런 말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말한 것이 그리 크게 들리지 않았던 까닭이다. 또 송씨만을 비판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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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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