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의장, 구배(九拜) 올리며 눈물 '글썽'

[현장] 동화사 찾은 정 의장... 등 돌리는 민심 잡을 수 있을까?

등록 2004.04.04 17:57수정 2004.04.0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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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일 동화사 대웅전에서 정동영 의장이 구배를 올리기에 앞서 두 손을 꼭 쥐고 서 있다.

4일 동화사 대웅전에서 정동영 의장이 구배를 올리기에 앞서 두 손을 꼭 쥐고 서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세칭 '어르신 정국'으로 곤경에 처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4일 대구를 찾아 '성난' 노심(老心)을 추스렸다.

이날 정 의장의 대구 방문은 지난달 26일 개구리소년 합동영결식 참석차 대구를 들렀을 때와는 사뭇 다른 무거운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정 의장은 이날 오전 팔공산 동화사를 찾아 자신의 발언 실수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구배'(九拜)를 올렸다.

이날 정 의장의 동화사 방문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자신의 '말 실수'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스스로도 지친 마음을 차분하게 달랜다는 취지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4일 오전 11시 20분쯤 동화사에 도착한 정 의장과 김명자 전 장관·김성호 의원·박영선 대변인 등은 바로 대웅전으로 이동, 부처상을 향해 아홉번 절을 올렸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구배를 올리는 동안 정 의장의 눈가에 눈물이 흥건히 맺히기도 했다.

정 의장은 구배를 올린 후 대웅전 앞 뜰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화사 주지 지성 스님의 안내로 주지가 기거하는 동별당으로 이동했다.

용서의 구배 올린 정 의장, 눈물 '글썽'

동별당에서 정 의장은 지성스님에게 삼배 절을 올리며 인사를 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지성스님이었다.


지성스님 "요즘 힘드시죠."
정동영 의장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이렇게 절을 찾아 힘과 지혜를 얻곤 합니다."
지성스님 "잘 오셨습니다. 팔공산이 원래 기가 세서 예로부터 정기를 받으면 일이 잘 풀린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도 팔공산에서 수도를 했다고 해요. 삼국이 신라를 통일할 수 있었던 정신적 기반이 여깁니다. 기만 잘 받으면 앞으로 남북통일과 정치통일을 하고 국민도 잘 살 수 있도록 할 겁니다."


a 동화사 동별당에서 정동영 의장이 동화사 주지 지성스님과 환담을 나누기에 앞서 삼배절을 올리고 있다

동화사 동별당에서 정동영 의장이 동화사 주지 지성스님과 환담을 나누기에 앞서 삼배절을 올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지성 스님은 최근 정 의장의 문제의 발언을 염두에 둔 듯 상생을 위한 정치를 강조했다.


"정치가 평화롭기 위해서는 상생을 해야합니다.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고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것이 불교의 인과원립니다.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여도 있고 야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니면 아니다는 흑백논리는 안 됩니다. 앞으로 큰 일을 하셔야 하니 열린 마음과 가슴으로 전 국민을 포용해 주십시오"

지성 스님 "가슴 열고 전국민을 포용해달라"

"오히려 국민이 정치인 걱정하는 한국정치"
지성 스님의 뼈있는 한마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을 만난 동화사 주지 지성 스님은 '상생의 정치'를 강조하는 한편, 현 정치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지성 스님은 정 의장에게 "정치인들은 무릇 국민들을 걱정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치는 국민들이 오히려 정치인을 걱정하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성 스님은 "한국의 정치가 새로운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원숭이 해인 올 한 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지성 스님은 "원숭이라는 동물이 원래 머리가 좋고 가족적이고 부지런하지만 꾀를 부릴 때는 엄청 조화를 부리는 동물"이라면서 "올 한 해가 과거 어느 해보다 나라의 운명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해"라고 설명했다.

지성 스님은 이어 "특히 정치가 큰 기로에 서 있는데 바르게 이끌어서 환골탈태하는 모습으로 국민들과 대구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덧붙였다.
특히 정 의장이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법어를 거론하자 지성 스님의 말씀은 이어졌다.

지성 스님은 "보이는 만물은 불상이요, 들리는 소리는 요음(법문)"이라면서 " 진리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보고 듣는 것 밖에 진리가 없고 그래서 산은 산이고 물은 그래서 물이다"고 말했다.

지성 스님은 이어 "불교에서 깨달음의 경지는 상대적인 것을 초월한다. 그래서 너가 있고 내가 있고, 중생이 있고 부처가 있으며 그 모든 것이 함께 있다"면서 "결국 적과 내가 둘이 아니고 밝음과 어둠이 둘이 아니다"면서 상생을 거듭 강조했다.

지성스님은 또 "대구가 어렵다. 큰 사고도 많이 있었고 경제도 어려워 시민들이 많이 위축돼 있다"며 "대구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정 의장은 지성 스님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는가하면 "큰 말씀 잘 받들겠다" "앞으로 잘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정 의장은 특히 "(말 실수 때문에) 어르신들도 힘드셨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고통이 많았다"고 최근의 심경을 드러냈다. 정 의장은 "이 교훈을 밑거름 삼아 새 출발하겠다. 소외돼 어렵고 힘든 분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지성 스님과 정 의장의 만남에는 대구시노인회 임원들도 참석했다. 정 의장이 "아침 일찍 대구지역 어르신들과 만나 뵙고 용서를 구했다"면서 대표들을 지성 스님에게 소개했다.

정 의장 "개인적인 고통도 많았다. 교훈을 밑거름 삼겠다"

a 정동영 의장이 지성스님과 환담을 나누는 도중 침통한 심정을 드러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어르신들을 괴롭게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마음의 고통이 많았다"고 말했다.

정동영 의장이 지성스님과 환담을 나누는 도중 침통한 심정을 드러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어르신들을 괴롭게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마음의 고통이 많았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지성 스님은 대표들에게 "넓은 마음으로 잘 봐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노인회 손근하 (81) 남구지회장은 "신이 아닌 이상 실수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용서의 뜻을 비쳤다. 옆에 있던 다른 지역 대표는 "개과천선이라는 말도 있으니 잘하길 바란다"고 거들었다.

손 회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처음 정 의장의 발언을 듣고 격노한 것도 사실이다"면서 "하지만 자기 스스로 잘못된 말이었다고 사과하고 실수를 인정하는데 용서해 줄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했다.

정 의장과 지성 스님은 보도진과 당 관계자들을 물리친 채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정 의장 일행은 이날 오전 동화사 방문에 이어 오후에는 프로야구 개막전이 벌어지는 대구야구장을 찾아 지역 민심을 다독였다. 특히 이날 야구장 방문에서는 당초 예상했던 성난 민심의 표출과는 달리 사인 요청이 쇄도하는 등 환영 섞인 반응도 나타났다.

정 의장은 오후 1시 10분쯤 야구장에 도착해 유세차량에 올라 연설을 했다. 정 의장은 시민들에게 "오늘 아침 팔공산에 들러 어르신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 의장은 "용서를 구하니 새출발 하라는 격려의 말씀도 들었다"면서 "앞으로 더 힘을 모아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데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정 의장은 또 "지난 3월 12일 탄핵안 통과를 막지 못한 우리들도 죄인"이라면서 "힘을 합해 정국을 안정시키고 국민들이 아파하는 문제를 푸는데 온 힘을 다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구장 찾은 정 의장에게 '힘내십시오'...싸인요청 쇄도

정 의장의 말이 이어지자 정 의장의 거리유세를 지켜보던 일부 시민들은 "힘내십시오" "화이팅"을 연호하기도 했다.

이어 정 의장은 삼성 라이온즈과 롯데 자이언츠의 개막전을 관람하기 위해 3루쪽 관중석에 착석했다. 일부 시민들은 정 의장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라워 하면서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어떤 시민은 삼성측이 나눠준 야구공과 모자를 들고와 정 의장과 박영선 대변인에게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 의장 일행은 쇄도하는 사인 요청에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 의장의 대구 방문이 '어르신 발언' 등 최근의 잇단 악재로 등을 돌리는 대구의 민심을 잡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에 따라 지역의 밑바닥 민심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는 후보자들의 불안과 불만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3일에는 경북 영주의 열린우리당 후보가 정 의장의 사퇴까지 거론하고 나온 것은 이러한 불안한 정세를 탓이다.

영남권 재공략...등 돌리는 민심 다시 잡는다?

a 대구야구장 안에서 정동영 의장이 삼성 라이온즈 개막전을 구경하기 위해 야구장을 들른 대구시민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대구야구장 안에서 정동영 의장이 삼성 라이온즈 개막전을 구경하기 위해 야구장을 들른 대구시민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정 의장이 4일 오전 대구지역 후보자와 중앙당 관계자들과 긴급 대책회의를 연 것도 대구지역의 민심이 이반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 필요해서다.

박영선 대변인은 긴급 대책회의 후 브리핑에서 "사퇴 요구 발언은 화가 난 한 후보의 돌출 발언"이라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또한 "전국 정당을 위해 그동안 열린우리당과 정동영 의장이 공을 많이 들였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지역주의의 폐해가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특정 정당이 지배하는 대구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자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한편 정 의장은 4일 오후 대구 동성로 등 일대를 돌며 유세전을 벌이고 부산으로 이동한다. 또 5일 정 의장은 부산에서 선대위 상임위 회의를 가지고 오후에는 울산으로 이동한다. 이어 경북지역을 돌고 창원 등을 거쳐 영남권 민심 돌리기에 진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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